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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Jul 29. 2019

나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싫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TV에서는 아나운서들이, 인터넷에서는 신문사 기자들이 심심하면 한 번씩 '소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박근혜 정부 말미에 귓구녕에 뭐 박은 것마냥 눈 감고 귀 막는 식의 속 터지는 국정 운영 때문에 유난히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부각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 좋다. 소통. 국어사전에는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서로의 대화가 매끄럽게 잘 이어지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잘 전달된다는 좋은 뜻이다. 근데 이상하게 요새는 이 '소통'이라는 단어가 밑도 끝도 없이 이 곳 저곳에서 남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다.


그냥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만 해도,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이 SNS나 유튜브 같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혹은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붙는 단어가 '소통'이다. "오늘 여러분들과 소통해요~". 다못해 인스타그램에 시답잖은 글에 해시태그 몇 개만 달아도 매크로 답변으로 '사진이 예뻐요~ 소통해요~'라며 밑도 끝도 없이 소통을 권유한다. 요새 뜨는 인터넷 개인방송만 봐도 그렇다. 방송 시작 후, 혹은 방송이 끝나기 전 시청자들의 채팅을 읽으면서 떠드는 시간마저도 '소통 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뭔가 껄끄럽고, 불편하다. 소통이라는 단어를 저렇게 써도 되는 걸까 싶다.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것뿐인데 굳이 '소통'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한다고 '소통'한다고 하지는 않지 않던가. '노가리 깠다' 라던지 '수다 좀 떨었다'라고 말하지. 뭔가 알게 모르게 '소통'이라는 단어가 본질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부 셀럽들이 대중들과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마치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사람들이 친히 일반인들과 이야기한다.' 하는 건방진(?) 단어로 변질되어 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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