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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Aug 17. 2019

고시텔은 지옥이다

창문 없는 감옥

20살 때, 서울의 모 학교에 여름 계절학기를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왕복 3시간을 통학하기는 너무 힘들 것 같고, 보증금 없는 저렴한 월세방을 구하려고 부동산을 오가기에는 시간부족했다. 한 달 정도만 대충 집 비슷한 곳에서 살자는 생각으로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학교 근처 고시텔을 찾기 시작했다.


찾는 데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월세가 저렴하고, 학교에서 가까운 고시텔' 딱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족했다. 하루 종일 학교 일대 고시원들을 돌아다닌 결과, 월세 25만 원에 밥도 주고, 김치도 주는,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고시텔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밥을 준다는 게 식사를 준다는 건 아니고, 공용 부엌에 있는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먹을 수 있다는 뜻이만, 그게 어디냐 싶었다. 그 날 저녁, 주인아주머니를 만나 저녁에는 웬만하면 빨래 돌리지 마라, 애완동물은 키우지 마라 등의 기본적인 주의사항을 듣고 나서, 덮고 잘 이불과 옷가지 몇 개, 그리고 노트북 하나를 들고 고시텔 복도 맨 끝의 작은 방에 입실했다.

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고시텔에 대한 이미지는 노량진 고시생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미친 듯이 공부만 할 것 같은, 낭만 아닌 낭만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지옥 같은 곳이었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었던 '타인은 지옥이다'에서 고시에서 살던 주인공이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과 부딪힐 때마다 서서히 미쳐버리지 않던가. 굳이 같이 사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좁아터진 안에 아무것도 못하고 갇혀있노라면 정신병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대부분의 고시텔의 경우 한 층에 적게는 열 개, 많게는 스무 개 가까이 되는 방들을 배치한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방들을 만들려면, 방 하나에 2~3평 남짓한 공간밖에 생기지 못한다. 책상, TV, 옷장, 침대 같은 가구를 때려 박고 나면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만한 공간밖에 남지 않는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방을 다닥다닥 붙여 만들다 보니, 창문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문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 창문이 없다. 방 안에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의 허연 빛 밖에 없다. 전등불을 꺼 버리는 순간,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돼버린다. 그런 방에 들어온 순간, 방에 들어와서 쉴 수 있다는 안락함과 즐거움보다는 외딴섬에 내던져지는 듯한 공포와 무기력감이 먼저 밀려들어다. 뭔가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밀어 넣은 것 같기도 했다. 오히려 감옥만도 못하다. 거긴 햇빛은 드는 창살이라도 있지 않던가.

창문 없는 방이 사람에게 주는 심리적 고통들은 사람을 심히  말려 죽인다. 일단 햇빛이 들지 않으니 방의 불을 끄고서, 자고 일어나도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핸드폰 시계로 3시 47분 이어도 이게 오후인지 새벽인지 잠결에 깨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낮엔 깨있고 밤엔 자는 기본적인 사람의 생체리듬이 망가지고, 낮과 밤이 바뀌다 못해, 하루 종일 깨있거나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일도 생겼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살았다. 스스로를 창문 없는 감옥으로 밀어 넣은 결과는 미칠듯한 무기력함과 우울함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게임이고 공부고 나발이고 의욕이랄 게 생기지 않았다. 계절학기 수업도 중간고사 이후에는 잘 나가지 않았다. 반타작도 못한 중간고사 점수에 수업이랍시고 들어봐야 C+이라는 생각에 아침마다 울리던 핸드폰의 알람도 꺼버렸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이불속에 파묻혀 대 앞 선반에 박혀있는 손바닥만 한 TV만 을 넣고 다.


문득 이렇게 더 살다가는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에만 곰팡이가 피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곰팡이가 시꺼멓게 드리워질 것만 같았다. 계절학기가 끝나자마자,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고시텔에서 짐을 챙겨 들고 본가로 돌아갔다. 돌아갔다는 말보다도 '탈출'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햇빛조차 들지 그곳에서 더 이상은 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끔 주변 친구들 중에 이런저런 시험 준비나, 모자란 보증금 때문에 고시텔에 들어가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정말 입에 학을 떼고 경고한다.


"야, 거긴 시발 사람 사는 데가 아니야,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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