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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May 13. 2019

햄스터를 잡아먹는 개미

반려동물 이야기 (2)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동생이 어디선가 햄스터 한 마리를 가져왔었다. 한 마리에 만 원도 안 되는 작은 햄스터였다. 아버지는 당연히 '뭔 쥐새끼를 데려왔냐'라고 질색하셨다. 동생은 강아지나 고양이는 못 키우더라도 햄스터는 털이 날리는 것도 아니고 크게 신경 쓸 것도 없으니 그럭저럭 키울 만하지 않겠냐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그 햄스터는 '꼬맹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부터 거실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분홍색 케이지 속에서 열심히 쳇바퀴를 굴려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다. 사람을 제외한 어떤 포유류가 우리 집에서 살아간다는 게 실감이 되지 않았다. 가끔씩 해바라기씨 같은 걸 케이지 틈 사이로 들이밀 때면 쪼르륵 달려 나와 우물우물 먹이를 삼킬 때면 내가 뭔가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했다. 이따금씩 거실 바닥에 앉아 햄스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나를 알아보는 것처럼 케이지를 붙잡고 깡충 뛰고 있는 걸 볼 때면, 구피 같은 멍청한 놈들과는 달리 이 놈도 나를 인지하고 있구나 하는 기특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햄스터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걸 체념한 것 마냥 케이지 구석진 곳에서 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점점 살이 찌는 것 같아 먹이 통에 양배추나 상추 같은 채소를 넣어줘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아버지는 뒷 산 어디에선가 가져온 나무를 깎아 장난감처럼 만들어 케이지에 넣어주기도 하셨지만, 햄스터는 처음 보는 물건에 조금 흥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구석진 곳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학교 급식실 구석진 곳에서 은색 식판에 맛없는 급식을 기계적으로 먹고 있던 때였다. 동생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오빠, 꼬맹이 죽었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애가 하루아침에 죽을 리가 없었다.

"개소리ㄴㄴ 갑자기 왜 죽음?"
                                       "진짜야ㅠㅠㅠ 아빠가 죽었대..."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햄스터가 새벽 사이에 죽었다는 상황 자체도 이해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 순간만큼은 너무도 생소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예전부터 뉴스에서, 그리고 신문 기사에서 숱하게 봐왔던 단어였지만, 우리 집 꼬맹이의 죽음은 그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머리가 멍해졌다.


7교시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고 동생은 울고 있었다. 거실 한복판의 분홍 케이지에는 아직도 죽은 꼬맹이가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 치워내지 못한 것일까. 아버지는 어디로 가신 걸까. 꼬맹이가 이빨로 갉아낸 빛바랜 케이지 창살 사이로 꼬맹이가 보였다. 숨이 다한 몸뚱이 위로 개미 떼가 우글거렸다. 일사불란하게 한 줄로 횡단하는 개미 떼를 보면서 역겨움이 솟구쳤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먹고살기 위해 죽은 몸뚱이 위를 횡단했던 것이리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생명이 다 한 몸뚱이 언저리에서 꺼내 먹어야 할 영양분이 뭐가 있다고 그들은 일렬종대로 꼬맹이의 몸 위를 오르내렸다. 다가구주택의 개미들에게는 그저 맛 좋은 고깃덩어리로 인식되었으리라. 산 자가 죽은 자를 잡아먹는, 잔인하리만큼 냉정한 작은 생태계의 순환을 그 날 우리 집에서 억지로 목도해야만 했다.

진작에 양지바른 곳에 묻혔어야 할 꼬맹이를 왜 아버지는 두고 나가서 이런 험한 꼴을 보였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는 조용히 들어와 죽은 꼬맹이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다시 밖으로 나가셨다. 남들은 개나 고양이를 화장까지 해서 바래다준다지만, 우리는 그럴 여력도,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꼬맹이는 우리 집에서 영영 떠났다.

아버지는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오셨다. 잔뜩 술에 취해서는 말이다.

"내가 씨발... 어? 꼬맹이를... 요 뒷 산에 묻고 왔단 말이다! 어? 씨발 것아. 저 짝 철장에서 딱 꺼내니까 그렇게 가볍더라. 잉? 속이 텅텅 비어부렀다고. 알긋냐? 씨이발." 그 날 새벽은 유난히 아프고 시렸다. 쏟아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욕설과 모진 말들은 나로 하여금 다시는 반려동물 같은 것은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했다.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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