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구피'라는 물고기를 키운 적이 있었다. 물고기라 해봐야 손가락 두 마디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물고기였지만 말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디에선가 정말 작은 새끼 구피 몇 마리를 흰 비닐봉지에 담아 가져왔었다. 콧대를 비닐에 바짝 붙여야지 꾸물꾸물하는 게 보였던 작은 구피는 한 두 달만에 꽁무니에 제법 크고 아름다운 검붉은 무늬를 치장하고서 우리 집 거실 탁자 위의 유리병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잠을 뒤척이던 차에 늦은 밤, 화장실을 가기 위해 거실의 불을 켰을 때였다. 탁자 위의 유리병은 고요한 소용돌이에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검붉은 꽁무니의, 지난 몇 개월 동안 탁자 한 구석을 메우던 구피가 자기 몸집에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무언가를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었다. 새끼 구피였다.
불과 며칠 전에 자기가 낳았을 자식새끼였으리라. 적게는 수 십 개, 많게는 수 백개의 알을 낳았을 구피는 그가 만들어낸 모든 피조물들을 도로 자신의 위장에 욱여넣었다. 몇 날 며칠을 배 속에 담아놓았던 무수한 알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막 유리병을 기어 다녔을 새끼 구피들을 마치 자신을 위해 풀어놓은 사료인 것 마냥 맹렬히 추격하여 아가리에 집어넣었을 구피를 보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태어난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은 새끼 구피는 살기 위해 헤엄쳐야 했다. 오로지 먹잇감을 잡아먹기 위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뒤를 쫓는 저 거대한 생명체가 자기를 낳은 어머니라는 것은 채 알지도 못한 채, 새끼 구피는 처절하게 헤엄쳐야만 했다. 그런 구피를, 어린 나는 눈에 보이는 밥그릇에 대충 생수를 부어 허겁지겁 국자로 퍼내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릇을 들고, 아직 새벽잠에 빠져 있던 아버지를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붉은 꼬리를 흔들며 유영하던 그 구피는 유리병 바닥에 거꾸로 누워, 꺼지지도 않은 배때지를 내밀며 숨을 다했다. 그 날 이후로 다시는 물고기 같은 것들은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