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백해무익하다. 한 뼘 남짓한 종이 쪼가리가 몸을 망친다는 것쯤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하다못해 세 살 먹은 꼬마조차도 본능적으로 담배가 몸에 안 좋다는 걸 아는지, 담배 무는 시늉이라도 하면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질색팔색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누구보다도 담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을 다 큰 어른들이 뭐 그리 좋다고 심심하면 한 번씩 그 종이 쪼가리를 입에 문다.
문득 우리 집 근처 병원의 나이 많은 의사가 생각난다. 그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환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열감기를 앓는 꼬마부터 가래 섞인 기침을 뱉는 할머니까지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환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한바탕 진료를 끝내고, 조금 시간이 남을 때쯤이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담배 한 개비를 태운다. 아마도 그런 자투리 시간에 담배 한 개비를 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의사가 흡연하는 그 모습은 뭐라 형언하기 힘들었다. 가장 담배와 거리가 멀어야 할 사람이 본인과 가장 양극단에 위치한 물건을 가까이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어색하기만 했다. 마치 무단횡단을 하는 경찰을 보는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던 이미지가 한순간에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담배를 가장 멀리해야 할 사람이 가장 가까이하고 있는 그 순간을 마주하며 '대체 담배가 뭐길래...' 싶은 생각에 한참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애당초 담배를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중, 고등학생 때도 학교 근처에서 몰래 숨어서 피는 양아치들을 보면서, 뭐 좋다고 저걸 저렇게까지 열심히 피워대나 싶었다. 얕은 호기심에서라도 담배를 피우고 싶지는 않았다. 피시방에서 게임이라도 할라 치면, 피시방 안을 가득 메운 매캐한 연기가 목구멍에 들이차는 게 불쾌했던 기억이 있어서였을까. 담배는 혐오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넌 절대 담배는 입에 대지도 말아라."
아버지는 군대에서 처음 담배를 입에 대시고, 30년이 넘게 담배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셨다. 밥 한 끼 먹고 담배 한 대,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줄담배, 그냥 심심해서 한 대 피우는 식으로 징글맞게 담배를 피우셨다. 끊으려는 의지가 없으셨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내가 담배 못 끊으면 성을 간다. 야, 사나이의 자존심을 걸고 담배 끊는다."며 금연을 호언장담하셨다. 하지만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이셨다.
"사나이의 자존심으로 끊으신다면서요?"
"엉? 허허..." 아버지는 실없이 웃으실 뿐이었다.
그랬던 아버지를 옆에서 보고 자라면서, 담배라는 것은 참 독한 것이구나 싶었다. 가뜩이나 절제력도 약한 내가 행여 담배를 입에라도 물면, 영영 끊을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 친구들이 옆에서 피는 모습을 보면 왠지 나도 피고 싶은 욕구가 들 때도 있었지만, 끊지 못하고 있을 내 모습이 선해서 차마 한 대만 달라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시험공부를 할 때도, 외국에서 유학을 가 있을 때조차도 담배 하고는 인연이 없었다. 남들은 호기심에서 한 번쯤은 입에 댈 법도 한데, 나는 그런 호기심조차도 거세당한 것처럼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보다도 더 강한 무엇인가는 나의 흡연 욕구를 미친 듯이 자극했다. 23살 때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9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뭐 빠지게 고생하고집에 올 때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시큰거리는 발목과 욱신거리는 허리를 붙들어 잡고, 통근버스에서 기절한 듯이 자고 나면, 머릿속이 씻겨나간 것처럼 공허해졌다. 그리고 일하던 내내 참고 있었던, 밀려오는 피로감은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도 적응되지 않았다. 뭣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지. 남들은 조금 편한 곳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아가면서 일하는데, 나는 왜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해야 하는 걸까. 내가 투입한 막대한 노동력에 비해 돌아오는 것은 7만 원도 안 되는 쥐꼬리만 한 일급이라는 사실에 미칠 듯이 허무해졌다.
그런 허무함을 맨 정신으로 견디기에는 버거웠다. 뭔가 다른 것으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인터넷의 검색창에 '맛있는 담배'를 치며 합법적인 탈출구를 모색하고 싶었다. 고작 담배 따위로 이런 허무함이 채워질 수 있을까. 아니, 채워지지 않아도 좋다. 그냥 본능적으로 담배를 찾을 뿐이었다. 부모님도, 친구도 채워줄 수 없는 그 모호한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지우고 싶었다.
"어... 아이스 블라스트 하나요."
"1 미리로 드릴까요? 6 미리로 드릴까요?"
"어... 6미리요."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아, 네."
잠깐 신분증을 쓱 훑어보더니, 비닐이 칭칭 둘러싸인 각진 담뱃갑을 내밀었다.
처음으로 산 담배. 뭔가 신기했다. 집에서 책상 위에 놓여있던 아버지의 담뱃갑 이후로, 내가 내 돈 주고 산 담배. 조심스레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길게 숨을... 어억, 뭐야, 이게. 미칠 듯이 기침이 나왔다. 뭔 맛이야, 이게...
다시 한번. 쓰읍. 허연 연기를 내뿜었다. 도무지 맛을 알 수가 없다. 몇 모금 피지도 않고서, 땅바닥에 담배를 내던졌다. 뭐야, 이게. 밀려오는 두통과 어지러움보다도 개 맛대가리 없는 담배에 짜증이 솟구쳤다. 이걸 왜 먹는 거야?
하지만 그렇게 처음 입에 댄 담배는, 지금까지도 달고 살고 있다. 솔직히 끊을 생각은 없다, 일하는 게 너무 힘들고, 이거라도 안 피면 일할 때의 그 피로감을 희석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끊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재미때문에라도 담배를 쉽게 끊지 못하겠다. 십 수년을 흡연자 옆에서 살아오신 어머니조차도 내가 담배 피우는 것에 별말씀을 하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