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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Dec 25. 2018

그 남자가 부산에 가는 이유

새벽 3시, 돼지국밥 먹기 가장 좋은 시간.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국밥에 환장한 놈이다. 요새는 정말 심심하면 한 번씩 국밥을 먹곤 한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혹은 그냥 국밥이 고파서 시도 때도 없이 국밥집 문을 열곤 한다. 순대국밥이든, 콩나물국밥이든 '가성비' 측면에서 항상 우위에 있어서인지 몰라도, 지갑 사정이 넉넉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국밥만큼 훌륭한 음식이 없다.

한 끼를 그럴 듯 하게 때우기에는 순대국밥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국밥을 먹지만, 집 근처에서는 유독 쉽게 먹기 힘든 이 있으니, 바로 '돼지국밥'이다. 국 어디에서든 순대국밥이나 콩나물국밥을 파는 곳은 정말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무리 한산하고,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골목이라도 허름한 국밥집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난히 돼지국밥을 파는 곳은 찾기가 힘들다. 심지어 '이런 것도 있어?' 싶을 정도로 별의별 것이 다 있는 드넓은 서울에서조차 돼지국밥을 파는 곳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돼지국밥 한 번 먹어보겠다고 인터넷에 '서울 돼지국밥'을 검색해봐도 한 번 갈려면 꽤 먼 거리를 가야 하는 곳에 있다. 돼지국밥만의 맛을 내기 힘든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돼지국밥 전문점은 찾기가 힘들었다.

21시 45분 서울을 떠나는 무궁화호

하도 돼지국밥 먹기가 힘들다 보니, 이왕 먹을 거라면 음식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한 번 먹어보자는 또라이(?) 같은 오기가 샘솟았다. 그리고 그 오기 하나로 밑도 끝도 없이 부산을 내려갔다. 어차피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1시간, 2시간씩 걸려서 갔다 올 바에야 겸사겸사 놀러 가는 셈 치고 부산에 내려가서 돼지국밥이나 먹고 오자는 어딘가 나사 빠진듯한 생각 때문에 부산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별안간 돼지국밥이 먹고 싶어 그 날 저녁에 배낭 하나만 들쳐 메고 서울역에 가리기도 했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부산으로 떠날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21시 45분 무궁화호를 탄다. 수업이 끝나거나, 일이 끝나고서 부산으로 훌러덩 떠나버릴 수 있는 가장 이른 기차이기 때문이다. 무궁화호 특유의 퍽퍽한 좌석에 기대어, 5시간을 쉼 없이 달리다 보면, 마치 고향처럼 익숙한 부산역 앞에 도착하게 된다. 정작 고향인 광주조차도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데 지인도, 친척도,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을 이렇게 자주 오게 될 줄이야. 익숙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반쯤 피곤에 감긴 눈을 비비고서 부산3번 출구로 내려온다. 모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들고, 부산역 앞 택시 승강장을 가득 채우던 택시들조차도 잠시 쪽잠을 자는 시각, 새벽 3시. 아무리 늦은 시각이어도, 이 곳 부산에 오면 입국심사를 거쳐야 한다. 새벽이지만, 부산역 앞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동안 돼지국밥의 육수를 끓이는 '신창 국밥'에서 국밥 한 그릇을 비워내야 한다.


새벽 3시, 국밥먹기 가장 좋은 시간.


이 곳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던  기억 부산에 처음 던 2013년 겨울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산에 는데 그럴듯한 음식은 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산까지 와서 씨앗호떡 하나 먹고선,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모를 아쉬움에 부산역 근처 하염없이 어슬렁거렸다. 어슬렁거리기를 몇십 분, 이내 부산하면 돼지국밥이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디서 봤는지는 몰라도 '여하튼 부산은 돼지국밥이 맛있다더라!' 하는 것만 기억났을 뿐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쭈뼛쭈뼛 의자에 앉아 돼지국밥 하나를 주문하고 메뉴판을 바라봤다. 심플하게 돼지국밥에 순대만 파는 듯했다.

밑반찬으로 부추와 깍두기, 양파가 접시에 담아져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돼지국밥이 나왔다. 양념이 되어 있는 부추를 돼지국밥 위에 올리고 휘휘 저어 잘 익은 깍두기를 올려 한 숟갈을 퍼서 입 안 가득 욱여넣었다. 여태껏 먹어보지 못한 담백한 맛이었다. 너무 자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밋밋한 맛도 아니었지만,  입 먹을 때마다 '아, 이게 돼지국밥이구나' 싶은 맛이었다.

2013년 12월 겨울,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처음 만난 날.

돼지국밥이 다른 지역의 음식들이나 소위 말하는 맛집들의 음식들처럼 모양새나 그 맛이 화려하지는 않다. 맛이 정말 기가 막혀서 다른 집들처럼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그런 음식도 아니다. 하지만 돼지국밥만이 갖는 단순하지만 진득한 맛, 화려하지 않지만 수더분한 국물 맛은 나로 하여금 부산을 방문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사람도 나이를 먹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수더분하고 진국인 그런 사람들이 좋아지고, 계속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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