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딱히 어떤 이유나 계기가 있어 김치찌개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김치찌개라면 사족을 못 썼던 것만 기억난다. 그렇다고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김치 먹는 것을 좋아했던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괜히 밥상에서 '반찬 가리지 말고 김치 먹으라'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애꿎은 배추김치만 밥 위에 올려놓고선, 비빔밥이라며 휘적휘적 저어서 양념 빠진 흰 배추만 먹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뭐 하는 짓거리냐며 귓방망이를 후리시던 아버지의 불호령은 덤이었다.
어쩌면 김치찌개를 좋아했던 것은 김치의 그 벌거스름한 몰골을 보지 않아도, 아버지가 말하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김치의 자극적인 양념과 식감이 물과 소금, 그리고 감칠맛을 내는 간장과 버무려져주황빛을 내는 연한 국물이내 입맛에 잘 맞았는지도 모른다. 돼지고기의 기름이 잘 우러져 나온 김치찌개는 나로 하여금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김치를 먹을 때마다 입에서 삼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감사한 존재였다.
그런 김치찌개를 나는 너무도 사랑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날이면,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기 위해 김치찌개를 먹었고, 가끔 몸살이 나서 이부자리에 드러누워 있을 때에도 무의식적으로 김치찌개를 찾았다. 김치찌개는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하지만 밖에서 남이 요리해주는 김치찌개는 어딘가 깊은 맛이 모자랐다. 굳이 표현하자면 '아 잘 먹었다. 근데 내가 뭐 먹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주로 싸구려 백반집이나 분식집에서 먹는 김치찌개를 먹고 나면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사실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는 끓이는 데 그렇게 거창한 재료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별난 요리법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슈퍼에서 몇 천 원에 파는 김치 한 봉지와 국거리용 돼지고기를 냄비에 넣고 팔팔 잘 끓인 다음에, 소금 반 숟갈에 국간장 두 숟갈과 고춧가루 조금을 넣고 휘휘 저을 뿐이다. 이토록 담백하게 끓여낸 김치찌개를 나는 너무도 사랑했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김치찌개를 엄마는 드시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고기를 먹지 못하는 선천적인 이유때문에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를 드신 적이 없다. 엄마는 돼지고기든, 소고기든 입에 넣는 것부터 고역이라며,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코를 찌르는 게 너무 역하다고 하신다. 그래서 양념갈비 같이 고기 특유의 향이 양념에 파묻히는 그런 고기는 어찌어찌 입 근처에 가져가실 수는 있지만, 문제는 씹어서 삼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더라도 고기의 특유의 그 식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가 없다고 한탄하신다. 차라리 '비건'(채식주의자)들처럼 뚜렷한 신념이라도 있어서 고기를 '안' 먹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섭식장애로 고기를 '못' 먹는 것이 엄마도 답답하다고 하소연하신다.
"엄마, 그래도 김치찌개 같은 건 국물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아?"
"아니, 고기가 들어갔는데 어떻게 먹겠니."
"그러면 간은 어떻게 맞춘 거야? 맛도 모르는데."
"그냥 대충 감으로 하는 거지, 뭐. 눈대중으로 보면 어떻게 해야 맛있겠다 감이 오는 거지."
엄마는 가볍게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런 엄마의 자랑 아닌 자랑을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엄마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안타까움이 동시에 새어 나왔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당신은 드시지도 못할 김치찌개를 단순히 나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끓이셨을 것이 아닌가. 그제야엄마가 끓인 김치찌개가 맛있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