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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Oct 27. 2019

혼자 술 먹는 게 뭐 어때서요

혼자서도 잘 먹습니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술 마시면서 오르는 취기와 그 취기 속에서 사람들끼리 미친 듯이 떠들면서 텐션을 끌어올리는 그 분위기를 좋아한다. 별 것도 아닌데도 괜히 낄낄거리면서 웃고 떠들고, 한 명, 두 명씩 술에 취해서 헛소리하는 걸 듣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술에 취해서 시뻘게진 얼굴로 젓가락이라도 하나 떨어뜨리는 그 모습이 마냥 재밌기만 하다. 가끔은 술에 기대서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무거운 이야기나 마음에 담아두고 살던 묵직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자기네들 인생을 한탄하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사정들을 하나, 둘 꺼내다 보면, 어느새 테이블 한 편에는 초록 병이 가득 세워져 있다.


"쨘 하자. 쨔안~"

쓰고 텁텁한 소주를 입 안 한가득 털어 넣는다. 무의식적으로 컵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식어빠진 매운탕을 한 숟갈 떠먹는다. 안주라고는 쫄아든 국물에 생수만 줄곧 부어서, 밍밍해져 버린 매운탕뿐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소주를 들이부었다.

"형, 많이 마셨는데 괜찮아?"

"엉? 괜찮아, 괜찮아. 내일 출근 안 해. 이럴 때나 마시는 거지, 언제 먹겠냐. 흐흐."

사실 나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뇌를 거치지 않고,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말실수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억지로 희미해진 정신을 붙들어 잡고 있을 뿐이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친구들조차도 아마 내일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야, 그래도 이렇게 마시니까 좋긴 하다야."

"그러게, 다들 나이 먹고, 바쁘니까 술 먹을 시간도 없네."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만나서 먹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야, 난 맨날 혼자 술 먹고 있어. 너네가 시험이네, 알바네 하면서 시간이 안 되니까 못 만나는 거지. 난 불러만 주면 바~로 뛰어나간다 이 말이야."

"아니, 형 인스타 보면 맨날 혼자 술 퍼먹고 있더만. 대단해, 진짜."


사실, 나도 내가 이렇게 술을 자주 먹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술이 고플 일이 점점 늘어났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허구한 날 직장 상사한테 깨지고,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먹고사는 일에 지치고, 날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집안 사정에 악에 받쳐서 술을 먹어댔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들을 불러 술을 먹었다. 퇴근하는 길에 나름 친한 친구들에게 "술 ㄱ? 한 잔 조지러 가자." 하면서 꼬드기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친구들은 어느새 한 놈, 두 놈 연애를 시작했고, 연락이라도 하면 죄다

"아, 나 여친이랑 데이트 중ㅎㅎ ㅈㅅ 담에 ㄱ" 하면서 퇴짜를 놓았다. 비단 여자 친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도 있고,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해야 돼서 약속을 잡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지ㅎㅎ" 하면서 씁쓸하게 혼자 집에 들어와야 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술을 먹었다.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빈 손으로 집에 들어가기는 뭐했다. 친구들이랑 먹을 때처럼 부어라 마셔라 진탕 퍼먹을 수는 없어도, 나 혼자서라도 오붓이 술잔을 적시고 싶었다. 그래야 오늘의 스트레스와 설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5년 넘게 쓴, 한쪽 다리가 고정이 잘 되지 않아 휘청거리는 접이식 식탁을 펴놓고, 집 근처에서 사 온 양념구이 막창이나, 회 만 원어치를 식탁 위에 곱게 펼쳐놓았다.


술은 소주 한 병에 토닉워터 한 병을 사 왔다. 생소주는 도무지 혼자서는 먹지 못하겠더라. 밖에서는 시끄러운 분위기에 휩쓸려서 정신없이 먹을 수 있어도, 소음이라고 해 봐야 노트북 돌아가는 소리밖에 없는 우리 집에서는 소주가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맥주를 섞어먹자니, 소맥은 영 뒷맛이 텁텁했다. 안주보다도 맥주로 배를 채우는 것 같아 편의점에서 토닉워터를 사 와 섞어먹었다. 굳이 토닉워터가 아니어도 좋다. 매실주스나, 핫식스를 섞어 먹어도, 소주 특유의 그 씁쓸하고,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먹다 보면 칵테일을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알딸딸해지다 보면 조금 쓴 음료수를 먹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은 소주가 영 당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는 게 망설여지고, 뱃속에서 왠지 모르게 소주를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청하 두 병을 다. 소주 특유의 씁쓸한 맛이 나지도 않으면서, 목구멍을 기분 좋게 넘어가는 식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두 병쯤 먹으면, 알딸딸해져 기분 좋게 침대에 드러눕기도 좋아서 가끔은 청하를 마셨다. 


식탁 한 편에는 유튜브나 인터넷 개인방송을 틀어놓았다. 조용한 원룸에서 시끄러운 뭐라도 있어야 술 먹는 기분이 들었다. 청승맞게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방에서 혼자 술을 먹는 것은 왠지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 같아, 모니터 너머로 유튜버들이 쉴 새 없이 떠드는 멘트들을 말동무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남들이 보면 외로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적적함이 싫지만은 않다. 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막차 시간에 쫓겨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행여 막차가 끊겨 택시라도 타게 되면, 쏟아지는 야간 할증요금에 미터기를 하염없이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술집에서 나와서 친구들과 헤어지며 '집까지 언제 가지' 하면서 추운 거리를 비틀비틀 걷지 않아도 된다. 혼자 먹는 술이 그리 쓰지만은 않은 이유다.


물론 가끔은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을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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