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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Feb 01. 2020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해 준 당신에게

불과 18일 전까지 나는 혼자였다

나는 모태솔로였다. 정확히는 26년 14일 동안 연애 한 번 해보지 못 한 사람이었다. 자는 그랬다. 왜 그 나이 먹고서도 연애 한 번 못하냐고.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쓴웃음을 짓곤 했다. 그리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도 몰라... 씨발..."이라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연애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주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커플이 되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다는 감정에 뒤이어 왠지 모를 패배감이 곰팡이처럼 피어올랐다. 짜증이 났다. 나 자신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일까. 외모든, 성격이든 딱히 모나지 않다고 생각해오던 나로서는 커플이 되기 위한 경쟁시장에서 항상 패배자가 돼야만 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번번이 나를 외면하려는 듯한 여자들의 눈초리와 행동들은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그리고 이내는 '대다수의 여자들은 나를 싫어한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옷도 잘 입어보려고 애썼고, 행동이든, 말버릇이든 고쳐버려고 애썼다. 하지만 친구들은 냉소적으로 "너 같은 마른 애들을 누가 좋아하겠냐?"며 대꾸했다. 운동이든 뭐든 살부터 찌우라는 날 선 충고들을 애써 귀담아들으며 살기를 몇 년, 버티고 버티다 지친 심신은 걸레짝이 되어버렸고, 이나 내 자신을 혐오하게 됐다.


예전부터 그랬다. 나는 남녀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여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며,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박살이 나버렸고, 내가 좋아하던 여자는 나보다 훨씬 잘 생기고, 근사한 남자와 연애했다. 그런 일들이 한 번, 두 번 반복되자, 남녀관계라는 것에 염증이 나버렸다. 어차피 이뤄지지도 않을 일에 혼자서 심하게 몰입하고, 집착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 달라졌다. 아니 송두리째 바뀌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과 18일 전에 그 막연했던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서로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나랑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이 왔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주인공들이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키스하면서 읊조릴 것만 같은 그런 말을 한참을 쏟아내고서야, 비로소 커플이라는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연애를 한다고? 영원히 혼자일 것만 같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녀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는 날에도 현실감각이 생기지 않았다. 왠지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만 같고, 자고 일어나면 개꿈 꿨네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그녀를 마주하고, 서로를 안아주고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


"이거 꿈 아니지?"
"응, 꿈 아니야."
"고마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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