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드디어 시작된 타이중 반나절 투어.
오늘 내가 예약한 투어는 타이중의 고속철도역인 신우르역에서 출발하는 타이중 반나절 투어이다.
신우르역까지는 타이중 기차역에서 구간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순하게 타이중 역에 가면 구간차를 바로 탈 수 있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 계획은 내가 역을 도착함과 동시에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응? 무려 25분 연착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출발 시간까지 간당간당할 것 같았다. 마음을 조리며 기차를 기다리느니, 곧바로 역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기차역이라 근처에 택시들이 많이 정차하고 있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예상 밖의 상황이었지만, 이런 기회에 타이중 택시도 타보는 거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나,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당황해하고, 쩔쩔맸던 나인데,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오니, 오히려 멘털이 단단해지는 것 같다. 여행이 항상 내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조금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신우르 고속철도역에 도착해서도 모임 장소를 찾아 한참을 헤매야 했다. 업체 측에서 라인으로 모임 장소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분명 지각했을 듯싶다. 출발 시간 5분 전, 간신히 투어팀을 만날 수 있었다. 가이드 아저씨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9인승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얼마 전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도 소개되었던 무지개 마을이었다.
무지개 '마을'이라고 해서 꽤 큰 규모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높은 건물 사이에 작고 귀여운 단층 건물들이 몇 채 놓여있었는데, 가이드 아저씨께서 그곳이 무지개 마을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는 고작 15분의 자유시간을 주었다. 내심 “제대로 구경도 못 하겠네.”라고 투덜거렸데, 막상 둘러보니, 그 정도면 충분할 정도로 굉장히 아담한 규모였다.
건물 전체에 그려진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다. 벽 앞에 서서 셀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같은 차량을 탔던 한국인 한분이 “사진 찍어드릴게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대화를 나눴다. 그분 역시 혼자 여행을 오셨다고 하여 오늘 하루 여행 짝꿍이 되기로 했다.
이 무지개마을은 사실은 재개발이 들어가며, 철거가 예정된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의 거주민이었던 황융푸 할아버지께서 건물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면서 마을을 철거로부터 지켜냈고, 더 나아가 이 마을을 타이중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만들어냈다. 할아버지는 내가 꼭 만나 뵙고 싶은 인물 중 한 분이셨는데, 안타깝게도 2024년 1월, 할아버지께서는 101세의 연세로 별세하셨다고 한다.
비록 할아버지께서는 별세하셨지만, 이 마을에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그림에서 할아버지의 마을을 향한 사랑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 사람의 열정은 이 세상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무지개 마을에서의 짧은 시간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타이중 시 중심으로 들어갔다.
궁원안과(宫原眼科)는 이름 그대로 과거 안과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아이스크림 및 초콜릿, 디저트 가게이다. 이 건물은 일본인 안과의사인 미야하라 타케쿠마(宫原武熊)가 1927년에 지은 것으로 일본지배 시기에는 타이중에서 가장 큰 안과병원이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이 패망하면서 궁원안과는 보건소로 활용되었고, 그 후 한 제과업체에서 이 건물을 매입하여 디저트 가게가 되었다고 한다.
엊그제 처음 타이중에 도착했을 때 이 앞을 지나가면서, 꼭 한번 오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그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엔틱하고 아름다웠다. 높은 층고와 가게 안에 놓인 여러 엔틱풍의 장식품들이 마치 영화 <해리포터>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판매하는 제품들 역시 얼마나 예쁜지, 너무 사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앞으로 아직 갈 길이 멀었기에 일단 꾹 참아야 했다.(아직도 20일도 더 대만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짐을 늘릴 수 없었다.)
이제 몇 년만 더 있으면 궁원안과도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그때쯤에 다시 한번 타이중에 오고 싶다. 옛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는 옛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는 타이중, 대만 사람들의 지혜로움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무지개 마을에서부터 여행 짝꿍이 된 한국인 친구와 나란히 줄을 서서 메뉴판을 정독했다. 베스X라빈스 31은 울고 갈 만큼 메뉴가 다양해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르는 게 너무 어려웠다. 앞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주문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보통은 아이스크림 세 덩어리와 토핑 3가지를 넣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봐도 나 혼자는 다 먹을 수 없는 양이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스크림 두 덩이와 토핑 2가지 만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과 와플컵 가격이 200TWD. 토핑은 아이스크림 수에 따라 무료로 제공된다.)
곧바로 패션후르츠와 철관음 맛의 아이스크림, 그리고 조그마한 치즈케이크와 펑리수가 나왔다. 한 입 먹어보니 고소하면서 은은한 차맛이 나는 철관음 아이스크림과 새콤한 패션후르츠 아이스크림이 너무나 맛있었다. 스스로의 탁월한 선택이 굉장히 뿌듯해서 여행 친구에게도 한 입 먹어볼 것을 권했다. 친구도 나에게 본인의 아이스크림을 조금 나눠주었다. 나 홀로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궁원안과만큼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와서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나눠먹는 게 좋을 것 같다. 차에 탄 사람들끼리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으면서 차 안에 감돌던 어색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번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고미습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