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쓰차오 녹색터널에서 택시를 타고 달려간 안평수옥(안핑 트리하우스).
안평수옥은 안평을 대표하는 옛 건축물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소금 공장, 소금 창고로 쓰이던 곳이라고 한다.
수옥(樹屋)이라는 이름답게 건물이 온통 뱅골보리수로 휘감겨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캄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와트를 연상하게 했다.
안평수옥을 방문하면 안평수옥 바로 앞에 위치한 덕기양행부터 관람할 수 있다.
덕기양행은 영국의 무역상이 건설한 안평오대양행 중 하나인데, 이곳에서 설탕, 아편 따위를 수출, 수입했다고 한다. 건물 내부에는 당시 실제 사용하던 화폐나 무역선 미니어처 등이 전시되어, 과거 타이난이 무역으로 번성했던 도시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덕기양행을 나와 안평수옥으로 들어갔다.
안평수옥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오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타이완에 머무는 동안 정말 다양한 크기의 뱅골보리수를 잔뜩 보았는데, 단연코 이 안평수옥의 뱅골보리수가 압권이었다. 인공적인 것은 세월과 자연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한가롭게 안평수옥을 거닐었다. 폐문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관람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안평수옥을 나오자 기념품과 음료를 판매하는 안평가배관(安平咖啡馆)이 있어서 그곳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
뱅골보리수 밑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유롭다.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앉아있는 새소리만 들리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한국에서는 이 시간대면 한창 열심히 일을 할 시간이었다.
평소대로였다면 컴퓨터에 머리를 박고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있을 시간에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놀고 있다니, 어린 시절에도 해본 적 없는 일탈을 한 기분이었다.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통쾌했다.
얼음 조각 하나를 으그적 씹어버렸다.
입안 가득 시원함이 감돌았다.
안평수옥에서 안평고보(질란디아요새)는 도보로 약 1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하지만 안평수옥에서 깜빡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안평고보(질란디아요새)에 4시 50분에 도착해 버렸다.(폐문시간은 5시)
아쉽지만 안평고보(질란디아요새) 관람은 포기하고 대신 안평노가(옛 거리)를 지나 타이난 도심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타이난 여행에 있어서 안평은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필수 코스이다.
타이난을 대표하는 유적지 대부분이 안평에 위치해 있고, 타이난의 옛 모습을 여전히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식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안평노가 이곳저곳에는 맛있는 타이난 전통음식들을 판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부둣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해산물(특히 굴)과 관련된 음식을 잔뜩 판매하고 있었다.
"손님,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한 여자가 나에게 과자를 잔뜩 내밀어서 얼떨결에 받아버렸다.
"이게... 뭐예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자, 그녀가 친절하게 웃으며 과자를 한 주먹 더 나에게 건넸다.
"안평 새우 과자예요. 맛있으니까 드셔보세요."
"고맙습니다."
안평노가를 걸으며 새우 과자를 오독오독 먹었다.
"어! 맛있다!"
모양은 뻥튀기인데, 맛은 우리가 잘 아는 새우x맛이었다. 정말 짭짤하고 맛있었다.
새우 과자를 먹으면서, 발 닫는 대로 걸었다.
부둣가로 향하는 팻말이 보여서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애당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어인부두에 도착하자 짭짤한 바다냄새가 났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 멀리 지고 있는 아름다운 노을 사진을 몇 장 찍어 가족 단톡방에 보내주었다.
-타이난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어요.
곧바로 엄마에게 답장이 왔다.
-나나야, 정말 하고 싶었던 여행이니, 마음껏 즐기고 오렴.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오렴.
항상 응원한단다.
'응원'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코 끝이 시큰해졌다.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
어쩌면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마음이 힘들고 외로웠을 때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가 있었더라면 나는 조금 덜 외롭고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 가족들의 사랑은 왜 꼭 이렇게 떨어져 있을 때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걸까.
거리를 지나가는 타이난 사람들이 보였다.
부모와 아이가 정겹게 손을 잡고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 다정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가족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포근한 내 방 침대,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떠들며 먹던 과일들, 귀여운 내 조카들...
곧바로 가족 단톡방에 오늘 찍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답장을 썼다.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