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여행 11일 차,
오늘은 가오슝에서 컨딩으로 떠나는 날이다.
지난번 신쭤잉역을 방문했을 때, 컨딩행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했으나
직원이 컨딩으로 가는 컨딩익스프레스는 당일 구매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혹시라도 버스에 자리가 없을까 봐, 아침 일찍 호텔 체크인을 하고 부랴부랴 신쭤잉역으로 갔다.
오전 9시 30분. 컨딩 익스프레스에 몸을 싣고, 드디어 컨딩으로 출발했다.
컨딩 익스프레스를 타면 가능한 오른쪽에 앉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가오슝에서 컨딩으로 갈 때, 오른쪽에 앉아야 바다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컨딩에서 가오슝으로 돌아올 때는 왼쪽으로 앉아야 한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움직여서 그런지, 버스의 덜컹거림에 스르륵 눈이 감겼다.
잠시 후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구글맵에서 내 위치를 확인해 보니 내가 탄 버스는 팡랴오를 지나고 있었다.
팡랴오의 특산품인 왁스애플을 손질하는 할머니를 지나고, 넓게 펼쳐진 시골동네를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동안 대만을 여행하면서 봐왔던 풍경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었다.
눈앞을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시골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속 한 구석에 꽉 막혀있던 것이 '뻥!'하고 트이는 기분이었다.
점점 코발트 빛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드디어 대만의 남부에 도착했구나!
"우와!!!"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바다 색과는 차원이 다른 푸르름이었다.
드디어, 내가 컨딩에 왔구나!
컨딩은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대만여행을 꿈꿨을 때부터 꼭 가고 싶은 곳이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은 대만 여행 가이드 책에서 컨딩을 소개하는 부분을 읽으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교통편도 불편하고, 풍경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대체 왜 이곳이 오고 싶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듯이, 나도 그렇게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컨딩이 좋았다. 어쩌면 이번 컨딩에서의 여정은 내가 왜 컨딩을 사랑하는지를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가오슝에서 컨딩까지 약 2시간 반을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컨딩 아치’에서 하차했다. 아! 바보같이 한 정거장 전에 내려버렸다. 구글맵을 살펴보니 내가 있는 곳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15분 남짓이었다. 그냥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기로 했다.
차도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도롯가.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주택들.
대부분의 식당들은 문이 닫혀 있었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에서 치히로가 처음 신들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인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묘하고 신기한 기분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길, 덜컹거리는 캐리어 바퀴 끄는 소리와 함께, 파도치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따라왔다.
햇빛이 따가웠다.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이곳이 대만 남부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따뜻한 컨딩의 공기를 만끽하며 도착한 숙소는 바닷가 바로 앞에 있었다. 숙소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고, 작은 정자 하나가 놓여있어서 그곳에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숙소 로비에 들어가자, 직원분께서 오후 3시에 체크인이 가능하니 그때 다시 오라고 했다. 나는 짐만 프론터에 맡기고 숙소 밖을 나와야 했다. 사실 컨딩부터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일단 오후 3시까지 무엇을 할지 고민에 휩싸인 나는 일단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컨딩대가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낮의 컨딩대가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문을 연 가게가 많지 않아서 어찌 보면 유령도시 같은 느낌이 강했다.
대부분 식당들은 다 브레이크 타임을 걸어놓던지, 아예 불을 꺼놓은 곳이 많았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군데만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배고프니까 허기를 달랠 겸 일단 그곳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가게는 목조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메뉴판을 보고 나는 잠시 내가 대만이 아닌 다른 나라가 온 것인가? 하며 깜짝 놀라버렸다. 어쩐지 손님이 나 외에는 서양 사람으로 추정되는 외국인들 밖에 없더니... 확실히 다른 가게들보다 가격이 비쌌다.
'어쩌지? 나가야 하나?'
음식 주문을 하기도 전부터 일단 지갑을 꺼내서 지갑 사정을 살펴보았다. 음,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 가장 저렴한 알리오올리오를 한 그릇 주문했다. 평소는 100 NTD에도 덜덜 떨면서 사용했는데, 한 번에 400 NTD(사실 그래봤자 2만 원도 안 한다.)을 쓰려니까 마음이 쓰렸다.
하지만 푸짐한 조개와 함께 맛깔나게 나온 탱탱한 파스타면을 보자, 일단 침부터 고이고, 아까의 그 쓰린 마음 따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그리고 게 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파스타를 맛있게 먹으며, 서둘러 다음 행선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의 목적지는 바로 서핑숍. 서핑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친구와 함께 갔던 양양 바닷가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꼭 배워보고 싶었던 스포츠 중 하나였다.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지만, 서핑으로 유명한 컨딩까지 왔는데, 서핑을 안 하고 가면 너무 서운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예약한 숙소는 컨딩 야시장 방면에 있었고, 서핑숍은 난완 방면에 있었다. 스쿠터를 타면 금방인데, 나는 스쿠터를 탈 줄 모르니 일단 가오슝으로 가는 컨딩 익스프레스를 잡아타고 난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