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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58. 예스허지 버스투어(2)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예류에서 스펀으로


예류의 뜨거운 햇볕에 지친 나는 시원한 망고 스무디 한 잔과 에어컨 바람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서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스르륵-잠이 들어버렸다.


“이제 스펀에 거의 도착했어요.”

가이드님의 목소리에 간신히 눈을 뜨니, 창 밖 하늘에 까만 점들이 흩어져 있었다.

멀리서 천천히 떠오르는 풍등이었다.


“우와! 라푼젤에 나오는 장면 같아요.”


서하의 감탄이 이어졌다.

어른인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이렇게 내 정신연령은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웃음)


저 멀리 날아가는 풍등들



풍등에 소원을 적다.


버스에서 내려 가이드를 따라 풍등을 날리러 갔다.


스펀


좁은 철길 위에는 이미 각국의 여행객들이 모여 저마다의 소원을 적고, 풍등을 날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공중에서 떠 다니는 풍등들이 묘하게 어울려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우리는 이미 '예스허지 투어'를 시작할 때

단색 풍등을 날릴 것인지, 4색 풍등을 날릴 것인지 골라두었기 때문에 직접 풍등 가게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여행 회사와 연계된 풍등 가게에 가서 준비된 풍등에 글씨만 쓰면 됐다.


풍등 색에 따른 의미들


그리고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팁인데,

붓에 먹물을 푹! 찍어서 바로 글씨를 쓰면 먹물이 줄줄 흘러서 예쁘게 안 써지니까,

먹을 묻힌 후에는 꼭 먹물통에 붓을 한번 쓸어서 먹물양을 조절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글씨를 예쁘게 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글씨


원래 악필인 나에게는 그런 팁도 소용이 없었다ㅎ


몇 글자 쓰지도 않는데, 손에 먹물을 묻혀버렸다. 하지만 손에 먹물이 묻어도 괜찮다. 가게 앞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수 있으니까.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


글을 다 쓰고 “저요!”하고 손을 들자, 직원분이 오셔서 내 풍등을 착착! 접더니, 철길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직원에게 나와 풍등을 인계하셨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모두들 한국어 패치가 장착된 분들이었다.

어쩜, 다들 한국어를 그렇게 잘할까?


내 풍등을 올릴 순서가 되자, 직원분은 능숙한 솜씨로 내 핸드폰의 카메라 기능을 켰다.

그런데 갑자기 “뒤로, 올라가요~!”라고 외쳤다.

어리둥절해서 일단 위로 올라가니, 눈앞에서 바로 기차가 지나갔다. 와아!

이렇게 가까이에서 기차를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코 앞에서 본 기차


기차가 지나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이곳은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신속, 정확’하게 포즈를 취해야 했다.

다행히 포즈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직원분께서 능숙한 한국어로 “쁘이, 볼 하트 만세, 갸루하트!” 등 포즈를 연달아 외쳐주니, 나는 그대로만 따라 하면 완벽했다.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의 직원답게 센스와 노련함이 돋보였다!


직원분의 지시로 만들어진 나의 풍등 포즈(?) 4종 세트


기념사진을 다 찍고 나자, 직원분은 라이터로 풍등에 불을 붙였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마치 불을 다루는 마법사 같았다�

능숙한 손길로 풍등을 빙글빙글 돌리며 바람을 읽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풍등 날릴 때의 팁!

직원분이 "하나, 둘, 셋"하는 순간 바로 손을 놓아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풍등이 제대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공중에서 불에 타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눈앞에서 내 소원이 활활 타버리는 모습...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내 소원, 부디 모두 이루어지길


내 풍등은 다행히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점점 작아지는 풍등을 바라보며, 내 소원뿐 아니라, 이곳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더위를 식혀준 땅콩 아이스크림


풍등을 날리고 돌아오자, 가이드님이 땅콩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셨다.

스펀에서는 닭날개 볶음밥도 유명하지만, 나는 시원한 땅콩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사실 이 '예스허지 투어'는 점심 식사 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닭날개 볶음밥으로 허기를 때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침 식사를 했고, 닭날개 볶음밥도 먹어봤으니, 패스!


땅콩 아이스크림


땅콩 아이스크림은 얇은 전병에 돌돌 말려있었다.

전병 덕분에 아이스크림 흘릴 걱정 없이 깔끔하게 먹을 수 있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땅콩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자 온몸이 식는 기분이었다.

아이스크림 하나로 잠깐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북적이는 스펀 거리 산책

스펀 거리


풍등에 쓸 소원을 미리 생각해 둔 덕분에 모든 과정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스펀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좁은 거리는 마치 축제 현장 같았다.


스펀 거리


재미있는 점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든 “부자 되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은 꼭 하나씩 있었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사람들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도 부자가 돼서 맨날 여행만 하면서 살고 싶다!


풍등 날렸으니까 내 소원도 이루어지겠지?


스펀


다음 여행지를 향해


시간이 되어 집합 장소로 향했다.

길가에는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관광버스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가이드님은 "여기 상인분들 다 부자예요. 영업 마감하면 다 외제차 타고 나가세요."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왠지 농담이 아닐 것 같았다. 관광객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돈을 얼마나 많이 벌겠어?

아, 장사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너무 세속적인가?ㅎ)



그렇게 스펀에서의 체험을 마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허우통으로 향했다.

진과스와 허우통 중에서 오랫동안 고민하여 선택한 곳인 만큼 기대가 컸다.





스펀, 안녕!

다음에 또 놀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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