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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64. 다안삼림공원 산책하기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좋은 일을 하면 배(倍)로 돌아온다.


지난밤 대만여행 카페에서 한 분이 급성 장염에 걸렸다는 글을 보았다.

마침 숙소도 가까웠고, 한국에서 챙겨 온 지사제가 떠올라, 아침부터 서둘러 약을 가져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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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메인역 인근의 어느 길-


과거 상하이에 살 때, 나 역시 장염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낯선 곳에서 아픈 일이 얼마나 서러운지 너무 잘 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즐겁게 여행하러 온 곳에서 아프기까지 하면 마음이 더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저 내가 대만에서 매일 행복하듯, 그분도 이곳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온음료 한 병과 함께 약을 건넸다.

그분은 고맙다며 건망고 한 팩을 내어주셨다.

보답을 바란 일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간식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좋은 일을 하면 배로 돌아온다.’

그 말이 오늘은 유난히 실감 났다.
크게 의미 두지 않았던 일이, 누군가의 미소와 감사의 말, 그리고 달콤한 건망고로 돌아왔다.

왠지 오늘 하루는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든든한 피단죽 한 그릇


아침 식사로, 화롄에서 만난 타이베이 친구가 추천해 준 피단죽을 먹기로 했다.

그 친구가 했던 말은 “피단 맛있어요, 꼭 먹어보세요.”였는데,


그 시커먼 피단을 감히 통째로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았다 — 잘게 다진 피단이 토핑으로 들어간 피단죽.


구글맵에 ‘피단죽’을 검색하니, 숙소 근처에서 딱 한 곳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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狀元及第大腸麵線廣東粥 - No. 2-55, Section 1, Kaifeng St, Zhongzheng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0


소고기죽을 시키며 피단을 조금 추가했다.

작은 그릇으로 주문했는데도 양이 넉넉하고 토핑이 듬뿍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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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대만 스타일의 죽


호텔방으로 돌아와 따뜻한 피단죽을 한 입 떠먹는 순간—

“오! 맛있어!”

잘게 다져진 피단 덕분인지, 걱정했던 특유의 쿰쿰한 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도 나지 않고, 맛있기만 했다.


다음에 또 피단을 먹게 된다면, 그땐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다안삼림공원 산책하기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잠시 웹툰을 보다 천천히 숙소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생각 끝에, 늘 마음 한편에 두고만 있었던 다안삼림공원으로 향했다.


common-icon-places-marker-x2-20180920.png%7C25.029659,121.536287&center&zoom&scale=2&path&visible&language=ko&client=gme-nhncorp&signature=GAw6KZ_Blsws8_hnbHIio5TF2pU= 다안 삼림 공원 - No. 1號, Section 2, Xinsheng S Rd, Da’an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6


다안삼림공원은 레드라인 지하철을 타면 바로 닿는 공원.

융캉제나 국립대만대학교와도 가까워, 동선 짜기에도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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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수국들


공원에 도착하니 수국이 한창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만난 수국.

온화한 대만의 기후 덕분인지, 한 달 동안 대만 곳곳에서 정말 많은 꽃을 만났다 —
벚꽃, 등나무, 카라, 그리고 오늘의 수국까지.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꽃을 따라 떠나는 대만 여행’도 꽤 매력적인 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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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수국들


공원에는 다양한 품종의 수국이 피어 있었다.

색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

그 풍경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다 채워졌지만, 다안삼림공원은 사실 ‘탐조 명소’로도 유명하다.


연못 근처에는 커다란 하얀 새들이 모여 있었고, 그 모습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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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하는 할아버지와 새들-


하지만 나는 붓꽃과 연꽃을 보러 갔다가 커다란 새가 훌쩍 날아오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도망쳐버렸다.

꽃은 좋지만, 새는 여전히 무섭다.





수국을 원 없이 봐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다가와 “저 언덕에 특별한 나무가 있어요.”라고 하셨다.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곧 그분이 그저 친절한 현지인이란 걸 알았다.
아저씨의 조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가자 새하얀 꽃이 흐드러진 이팝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IMG_4139.JPG?type=w966 다안삼림공원 내 이팝나무


정말, 공원 안에 단 하나뿐인 이팝나무였다.

한국에서는 흔한 가로수지만, 대만에서는 보기 드문 나무인가 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차이’를 알아간다.




이 날은 요양원 같은 곳에서 단체로 소풍을 나왔는지 많은 어르신들께서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계셨다. 공원에서 산책하며 재활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인지, 공원 내에는 핸들 보조대 같은 것들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일부 어르신들께서 핸들 보조대를 잡고 천천히 걷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외할머니도 꽃 좋아하고,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시는데-

한국에 가면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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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안삼림공원을 나와 융캉제와 국립대만대학교 사이에서 잠시 갈등했다.


그리고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간다.’라는 기존 계획대로

천천히, 국립대만대학교 쪽으로 발걸음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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