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국립 대만대학교를 보고, 다시 공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디화제로 향했다.
디화제(迪化街)
타이완에서 가장 큰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재래시장으로, 타이베이 북서쪽 단수이강 근처 다다오청(大稻埕)지역에 위치해 있다.
100년이 넘은 가게들이 즐비하며,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영지버섯 등 진귀한 식재료부터 각종 한약재, 건어물, 차까지 없는 게 없다.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타이베이 초창기의 건축 양식이 남아 있어, 단순한 쇼핑거리라기보다는 잠시 타임슬립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사실 한국에서 대만 여행을 계획할 때, 디화제는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옛날 분위기 나는 쇼핑거리겠지’ 하고 넘겼던 것.
하지만 막상 와보니 완전히 오해였다.
디화제는 그야말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거리였다.
70~80년대 홍콩 영화를 좋아하거나, 빈티지 감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그건 바로 나!)
타이베이 로컬의 삶이 느껴지는 거리를 천천히 걷고 싶거나, 특색 있는 기념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거리 곳곳에는 독특한 중국풍 원단가게와 한약재 상점이 가득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재 냄새에 이끌려 디화제를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가게 주인이 시식용 젤리나 과자를 나눠주기도 한다.
그걸 하나씩 맛보며, 거리를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는 또 귀여운 소품으로 가득한 소품샵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나란 참새...)
가게 안에는 엽서부터 액세서리, 그 외 아기자기한 티백을 잔뜩 판매하고 있었다.
평소 커피파인 나지만, 달콤한 파인애플과 복숭아 향이 섞인 과일차에 눈이 돌아갔다.
결국 가방은 기념품으로 터질 듯하고, 지갑은 가벼워졌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든든했다!
디화제를 거닐다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당을 발견했다.
바로, 하해성황묘로, 디화제를 대표하는 관광명소이다!
하해성황묘는 이름답게 원래는 성황을 모시는 사원이지만, 이곳이 진짜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다.
‘연인을 맺어주는 신’ 월하노인(月下老人) 덕분이다.
이곳은 연인을 맺어주는 것으로 매우 유명하여,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나는 대만에 오기 전 이곳을 TV 프로그램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처음 봤다. TV 속에서 하해성황묘를 본 그 순간 “아! 이거다!” 싶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내 짝, 이제 대만의 신에게라도 맡겨보기로 했다.(웃음)
대만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몰라서, 옆 사람을 유심히 보고 대충 따라 했다.
일단 월하노인 앞에서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었으니…
나에게도 뭔가 '시그널'이 오겠지, 언젠가는?
이 얘기를 친구에게 하자
“근데 그 신은 대만신이잖아. 중국어로 해야 신이 알아듣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친구야, 너 T 맞지?)
... 그런데, 여전히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정말 중국어로 기도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원 한쪽에는 ‘평안차(平安茶)’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한 잔 받아 들고 벤치에 앉았다.
맛은 평범한 대추차였지만, 이름이 ‘평안’이라 그런지 왠지 마음이 잔잔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지금 이 시간이 오래 기억되길 바랐다.
해가 저물 무렵, 다음 목적지인 다다오청(大稻埕)으로 향했다.
디화제를 방문한다면 다다오청까지 함께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걸어서 금세 닿을 만큼 가깝다.
가는 길에 들른 치파오 가게와 빈티지숍에서는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유리 트레이를 발견했지만,
사장님이 안 계셔서 결국 구입을 포기했다.
아직도 그게 조금 아쉽다.
다음번에 타이베이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하루 종일 디화제 골목을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다.
안녕, 디화제.
이제 다다오청으로 —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