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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7. 칭징농장을 거닐다.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차는 한참을 달리고 달렸다.


잠깐 눈을 붙였다.

목덜미가 뻐근해질 무렵, 부스스 눈을 떴다.


창밖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산세가 깊은 고개를 넘고 있었다. 마치 강원도 대관령이 떠오르기도 했고, 예전에 TV에서 봤던 볼리비아의 죽음의 도로가 생각나기도 했다. 아찔한 산세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출발 전에 가이드 아저씨가

"차멀미해요? 혹시 멀미하면 우리 멀미약이랑 구토봉투 있으니까 이야기해요.”

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아저씨는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다행히 나는 멀미 체질은 아니라, 괜찮았다.




드디어, 칭징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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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 적응될 무렵, 드디어 칭징농장에 도착했다.

이번 투어에서는 칭징농장 입장권이 별도 구매라, 현장에서 직접 표를 구입했다.


농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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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언덕에는 양들이 삼삼오오 모여 풀을 뜯고 있었고,

그 위로는 이미 절정이 지나 떨어진 벚꽃잎이 분홍빛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피지 않은 벚꽃이,

여기선 이미 졌다는 사실이

같은 봄인데도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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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해발 1,750m에 위치한 고산지대다.

매년 5월~9월 평균 기온이 15도~23도 정도로,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3월은 생각보다 제법 쌀쌀했다.

경량 패딩을 입고 갔음에도 산바람이 불면 "으-추워!' 하면서 어꺠를 으쓱하게 될 정도였다.

어쩐지 가이드 아저씨께서 나에게 외투를 빌려주시겠다고 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저 멀리 높은 고산 능선들이 펼쳐졌다.

마치 스위스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을 옮겨놓은 것 같은 풍경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완전 가성비 스위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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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몰이쇼와 마상쇼가 있었지만,

나는 딱히 큰 관심이 없어서 조금만 구경한 뒤, 다시 산책로로 나왔다.


꼭 뭘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걷기만 해도 충분했다.

이국적이고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 차올랐다.




후추맛 샹창, 그리고 생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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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근처 노점에서 소시지를 하나 주문했다.


내가 고른 것은 후추맛 소시지(黑胡椒香肠).


대만이든 중국이든 길거리 음식에서 무슨 맛을 먹을지 잘 모르겠다면

오리지널(原味)을 시키거나, 후추맛(黑胡椒)을 시키는 게 안전한 선택지이다.

내가 생각할 때 가장 무난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맛이라고 생각한다.


짭짤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질 때

생마늘 하나를 곁들이면 느끼함도 사라진다


너무 맛있어서...

결국 하나 더 주문했다.




스카이워크, 또 다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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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상쇼를 안 보고 일찍 내려왔더니, 차량 탑승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칭칭농장 맞은편에 있는 스카이워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IMG_8559.JPG?type=w773 이곳이 대만인가? 스위스인가?

이곳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신선한 바람, 따뜻한 햇빛.

그리고, 고요한 고산의 풍경까지...


투어에서 만난 외국인들과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가볍게 대화도 나눴다.

"혼자 왔니?"

"친구는 어디 갔니?"


덕분에 오늘 하루종일 원 없이 중국어를 할 수 있었다.(웃음)

아무리 중국어를 전공했어도, 한국에서는 중국어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중국어 실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의사소통하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한국에서 내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길가에서 피어난 다육이들


칭징농장을 떠나, 올드 잉글랜드라는 유럽풍 건물에도 잠시 들렀지만,

내부 입장은 제한되어 있어 큰 인상은 남지 않았다.


대신, 길가에 잡초처럼 자란 다육이들을 보고 엄마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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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좋아하는 다육이 사진을 몇 장 찍어, 메신저로 보내드렸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다육이들 너무 예쁘다. 한국올 때 다육이 잎사귀 떼어가지고 와. 화분에 심게.'


...역시 우리 엄마다.

동식물 밀반입이 얼마나 무서운 처벌을 받는데...,

농담으로 사람을 아찔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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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정말 꽃이 많다.

길거리의 작은 꽃조차 싱그럽고 사랑스럽다.


아름다운 대만, 싱그러운 자연의 힘.

행복한 감정이 마음 깊숙이 차올라,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직 여행 2일 차인데,

벌써 이런 벅참을 느껴도 되는 걸까?

그래도 괜찮다.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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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차량은 다시 타이중으로 향했다.

2시간 정도 달려, 도심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일월담과 칭징농장을 오롯이 담은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참 감사한 분들이 많다.

나의 영원한 지지자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

맨날 티격태격하면서도 여행 간다니까 쿨하게 용돈을 투척한 우리 오빠, 올케언니.

내 영원한 사랑인 우리 조카 1호, 2호.

오롯이 나만 생각하며 힐링하고 오라고 응원해 준 외삼촌.


퇴사하면서 내가 못난 꼴을 많이 보였는데, 퇴사하는 날 여행자금에 보태라면서 돈을 쥐어주셨던 p선생님. 나의 소울메이트나 다름없는 소중한 친구들

여행 전날까지 나의 여행을 응원해 준 소중한 ㅇㅈ선생님, ㅈㅇ선생님, ㅅㅎ선생님.

4월에 다시 만날 테니까 즐겁게 여행 잘하고 오라고 응원해 준 무용 선생님.


모두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소중한 내 힘의 근원이다.


내가 사람들을 통해 힘을 얻고, 용기를 얻듯,

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림이 되고 싶다.



‘아름답고 슬기롭게’가 나의 인생철학이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름답고 슬기롭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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