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반짝이는 일월담 위를 가르며, 우리의 배는 힘차게 나아갔다.
물보라가 꼬리처럼 따라오고, 물방울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일월담이 내게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아, 행복하다.'
따뜻한 햇빛, 상쾌한 바람, 그리고 얼굴에 닿는 물방울.
긴장으로 굳어 있었던 내 몸이 느슨하게 풀려갔다. 툭, 하고 내려앉는 어깨.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우리의 배가 이다샤오 부두에 도착하자, 신명 나는 음악 소리가 발걸음을 이끌었다.
광장 한편에서 타이완 원주민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민속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어떤 부족인지,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신명 나는 북소리와 노랫소리 속에 묘한 구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타이완 원주민의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나씨!"
가이드 아저씨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밥은 어떻게 먹을 거예요? 맛집 소개해줄까요?"
혼자 여행 중인 나를 유난히 챙겨주시던 아저씨.
배에서도 사진을 찍어주시고, 멀미 걱정도 해주시던 그 다정함.
이번에도 감사히 따르기로 했다.
먹자골목 초입. 전통주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장사꾼 아주머니가 시식용 술을 내밀었다. 한 모금.
쏴— 하고 알코올이 목을 때렸다. 쓴맛이 입안을 맴돌고, 뒤이어 증류주 특유의 단 향이 올라왔다.
한 잔으로 충분했다. 아주머니의 권유를 정중히 거절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술은 안 되겠네. 홍차 마시세요!"
가이드 아저씨가 웃으며 일월담 홍차를 추천해주셨다.
그리고는 노란 간판 가게에서 얼음 적게, 설탕 반으로 주문해주셨다.
한 모금 들이켜자, 술의 알코올도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나나씨, 찹쌀떡 좋아해요? 이 가게 찹쌀떡도 굉장히 유명한 곳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마수'라 불리는 찹쌀떡.
가이드 아저씨의 추천으로는 나는 땅콩 맛을 골랐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 위에 고소한 땅콩가루가 듬뿍 뿌려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인절미와도 닮은 듯 다른, 대만식 떡이었다.
가이드 아저씨가 알려준 곳에 가서 마수와 홍차를 즐기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한국은 아직 겨울인데, 여기선 벌써 봄이 온 듯.
바람에 떨어지는 벗꽃 잎을 바라보다 마수 하나를 먹었다.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차올랐다.
행복하다. 그리고 자유로웠다. 그동안 간절하게 바라오던 것이었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손바닥에 올려 사진을 찍고, X카오톡 프로필을 바꿨다.
대만 여행 중, 연락하지 마세요.
전 직장의 그 사람들이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냥 조금 후련했다.
시원한 홍차를 쭉-들이켰다.
마음속에 남아있던 작은 응어리까지 몽땅 씻어가는 기분이었다.
한참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휴식을 취했다.
단 것 뒤엔 짠 것이 땡긴다.(원래 단짠은 국룰이라고 그랬다.)
기억해둔 닭날개볶음밥 가게로 향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한참을 기다려서 내 순서가 되었다.
사람들이 대부분 안 매운맛을 구매하길래, 나는 일부러 약간 매운맛을 사보았다.
책에서 몇 번 보았던 음식이라 기대가 컸다. 닭날개에 쫀득한 찹쌀밥이라니,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타이완 원주민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광장으로 가서 노랫소리를 배경 삼아 닭날개밥을 한입 먹었다.
결국 몇 입 먹다 남겨버렸다.
다음에는 안 매운맛으로 먹어야지.
여행자는 이렇게 현지와 친해지는 법이다.
광장 한편에 앉아 타이완 원주민의 노래를 들었다.
중후한 음성으로 허밍이 이어졌다. 마치 외로운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그 노래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감정만큼은 뚜렷하게 전해졌다.
투어 마지막, 수이셔 부두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를 함께한 '성공 3호'의 모든 이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비록 나는 앞사람들에게 가려 얼굴이 나오지 않았지만, 정말 즐거웠다.
첫 투어부터 이렇게 즐겁다니,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욱 기대된다.
가이드 아저씨의 차에 다시 탑승했다.
시동이 걸리고, 다음 여정을 향해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눈부신 일월담의 윤슬이 반짝였다.
안녕, 일월담.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