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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5. 일월담으로 출발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본격 여행의 시작


타이중 적응기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본격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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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는 같은 방을 사용하는 대만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대만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 이름은 올리비아.

그녀는 자신의 대만 이름은 별로 예쁘지 않다며 영어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다음 여정지인 타이난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게 되었다.


"나나, 너 결제는 어떻게 할 거야?"

"현장에 가서 결제할 수 있어?"

"당연하지, 대신 여기 적힌 시간 안에 가서 꼭 결제해야 해. 안 그러면 노쇼 처리돼."

노쇼가 쌓이면 패널티가 생긴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다음 날 아침 꼭 기차표를 받으러 가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녀는 혹시나 방법을 모르면 라인으로 연락하라고 아이디까지 알려줬다. 대만에서 처음 사귄 친구가 이렇게 친절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다음날 아침.

간단히 왁스애플과 구아바, 커피로 끼니를 해결하고 서둘러 타이중역으로 향했다. 예약내역과 여권을 보여주자, 바로 기차표를 받을 수 있었다. 고작 티켓 하나 수령했을 뿐인데, 벌써 대만에 적응한 것 같은 뿌듯함.


타이난행 기차표를 수령한 후,

기차역 인근 호텔 입구에서 오늘의 투어팀을 만났다. 풍채 좋은 대만인 아저씨가 나에게 성큼 다가오길래 잠깐 긴장했지만, 알고 보니 오늘의 가이드 겸 운전사였다.

마음속으로 살짝 사과했다. '무서운 사람인 줄 알고 죄송해요!'

함께 투어하는 사람은 한국인 커플 한 쌍과 일본인 남자 청년.

우리끼리 조금 어색한 공기를 풍기고 있을 무렵, 가이드 아저씨가 유쾌한 소개로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그렇게, 오늘의 첫 여정 '일월담'을 향해 출발했다.




일월담에서......

IMG_8309.JPG?type=w773 이 나무가 빈랑나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날씨가 참 좋았다. 어제의 잿빛 하늘이 무색할 만큼.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타이중에서 일월담이 있는 난터우현까지는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었다가 다시 달리길 반복.

창밖에는 빈랑나무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드디어 '일월담' 팻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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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일월담


수이셔 선착장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소그룹 투어일 뿐, 하나의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다국적 단체투어였다.

가이드 아저씨는 '일월담' 비석 앞으로 우리를 데려가더니, 한 명씩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브이, 손하트, 볼하트, 만세 포즈까지.


순식간에 사진을 찍고, 어플로 보정한 뒤 곧바로 메신저로 전송해주셨다. 아마도 이것이 아저씨의 영업 노하우였던 듯하다.

기념 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일월담 풍경을 만끽하고 있을 때, 배 한 척이 선착장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나는 풍경이 잘 보이는 자리를 원했다. 배에 올라타서 직원에게 "어느 자리를 제일 추천하세요?"하고 여쭤보자, 키 작고 까무잡잡한 현지 직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머리 바람에 날려도 괜찮아? 그럼 야외 좌석, 오른쪽 추천해."

그 자리에 앉으니, 햇볕이 따갑긴 했지만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IMG_8436.JPG?type=w773 내가 탄 쾌속선


배는 금세 현광사에 도착했다.

사찰로 가는 길, 입구 근처에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했다.


'아포의 차예단'.

짭짤하고 달콤한 장조림 향에 홀린 듯 다가가자, 가이드 아저씨가 나를 만류하며 말했다.

"자유시간 끝나고 차예단 하나씩 줄게요. 지금은 사찰 먼저 보세요."


IMG_8364.JPG?type=w773 일월담의 아포의 차예단 가게


현광사로 가는 길은 돌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길은 험하진 않았지만,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길이었다.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질 쯤, 드디어 현광사에 도착했다.


사찰 앞에 서자, 발 아래로 드넓은 일월담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물안개가 은은하게 낀 풍경은 오히려 더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 한 장에 남기고, 다시 부둣가로 향했다.


배를 기다리며, 드디어 따끈한 차예단 하나를 건네받았다.

짭조름하면서도 달달한 맛. 어린 시절 중국에서도 먹어본 적 있지만, 이건 분명 달랐다.


IMG_8379.JPG?type=w773 달콤짭짤한 차예단


지금 이 장소, 이 타이밍, 이 기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

아주 맛있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 허기졌던 배가 어느 정도 채워졌다.

따뜻한 흰쌀밥이 함께였다면 더 좋았을까? 아니, 이만하면 충분했다.


이제 우리 배는 다시 출발해, 이샤다오 부둣가로 향했다.




이제야 진짜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다.

낯선 사람들과 나눈 미소, 새로운 도시, 따뜻한 차예단 하나까지.

이 모든 게 나의 여행을 조금씩, 찬란하게 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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