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마흔인데 발레 해도 될까요?

by 발레 언니

바쁜 부서로 발령받아 운동을 하지 못하니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힘들었다. 배는 점점 힘이 없어졌고 어깨는 굽었으며 목선은 무너져 두 턱이 생기기 직전이었다. 팔, 다리가 길고 겉으로 보기에는 마른 체형인 나를 보고 뺄 살이 어디 있냐고들 했지만, 살 문제가 아니었다. 마른 몸에 붙은 얼마 되지 않는 살들은, 마치, 가뭄으로 메마른 나뭇가지에 진흙을 누가 삽으로 퍼서 툭툭 던져놓은 그 꼴이었다. 중력의 힘을 그대로 받아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올 것만 같은 힘없는. 스마트폰에 어플을 내려받아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달라붙어 한 동작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플라잉 요가, 폴댄스, 줌바 운동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여전히 필라테스는 유행이었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나는 마음속에 불만이 커져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네 학원을 뒤지기 시작했다. 앗, 내가 다니던 학원이 코로나로 경영난을 겪다 폐업했다. 내가 일에 치여 운동하지 않는 동안 학원은 경영난을 겪었고, 내 몸은 지방난을 겪고 있었다. 머뭇머뭇하다가 학원이 없어지고 곧 내 몸에 얼마 남지 않는 근육도 없어지겠구나 마음이 급했다.


일단 일보 후퇴.


요즘 핫한 여배우들은 발레를 배운다고 한다. 발레는 왠지 깡마르고 팔다리가 긴 아름다운 여성이 인형처럼 나풀나풀 음악에 따라 몸을 맡기는 무용이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여자의 몸에 발레가 좋다니까 호기심이 생겼다. 마른 것은 일단 합격, 팔다리도 기니까 이것도 합격. 딸을 보내려고 했던 발레 학원에 '4세부터 60세까지 발레를 배우는 곳'이라고 붙여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아직 60살은 아니니까 받아줄지도 몰라, 하고 무턱대고 전화를 걸었다. 한편으로는 60살이 되는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저절로 손가락이 버튼을 터치하고 있었다.


'저, 마흔인데 발레 해도 될까요?'

교양미가 철철 넘치는 원장님은 발레복을 갖출 필요는 없고 발레슈즈만 챙겨 오라고 나를 환영했다.


발레 학원에 처음 갔던 날, 필라테스와 달리 발레 수업은 80분이 한 사이클이었다. 장을 볼 때도 단위 가격을 보는 버릇이 있는 나는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필라테스는 50분에 3만 5천 원이니까 분당 580원, 발레는 80분에 2만 5천 원이니까 분당 310원. 필라테스보다 싸다. 일단 계산기 측면에서는 합격이다.


호흡, 긴장 완화, 근육운동, 스트레칭을 하는 데만 30분이 흘렀다. 입고 온 옷은 이미 흠뻑 땀으로 젖어 있었고 나뿐만이 아닌 다른 회원들도 바닥에 누워 헥헥댔다. 10초만 쉬고 이어지는 바 (barre) 30분, 센터 20분. 수업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도 '끝난 줄 알았죠?'라며 '마지막으로 가볍게 점프 스물네 번만 뛰고 끝내요.'라는 깡마르고 팔다리가 긴 발레선생님의 주문에 겨우 배 튕기기 비슷한 점프를 뛰어내고 거의 기어서 발레 학원을 나갔다. 손과 발을 고정한 채 점프를 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 두 시간 내리 낮잠을 잤다.


발레리나의 마른 몸은 모두 근육으로 가득 차서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힘이 세다고 한다. 그 말을 이제 충분히 이해했다. 발레의 조건은 마른 것도, 팔다리가 긴 것도, 예쁜 것도 아니었고 근육이 필요한 예술이자 운동이라는 것. 가만히 서서 상체는 단 1도도 흔들리지 않은 채 한쪽 다리를 옆으로 차 귀 옆에 붙이는 데에는 복근과 다리 근육, 호흡의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필라테스를 시작할 무렵인 3년 전, 발레를 만났다면 지금의 내 몸은 어땠을까 상상을 했다.

시간을 붙잡고 싶다.

발레를 열심히 하고 한 시간을 의자에 앉아 일하고 일어났을 뿐인데 내 몸의 근육은 재빠르게 짧아져있었다.

마음이 급하다, 발레 선생님의 10분의 일이라도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인발레반 회원들이 나에게 주는 자극도 상당하다. 눈치 보며 학원에 들어왔는데, 내 나이가 많은 게 아니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지만 40대 후반, 50대 중반 회원님들이 다수였고 타이츠, 레오타드, 랩스커트를 갖춰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 발레에 진심인 그 언니들의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


아직은 1번 동작 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고 발레수업에 다녀오면 체력이 소진되어 낮잠은 필수지만, 같은 반 회원님들의 모습을 보며 발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싶은 자극이 샘솟는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무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을 체감하는 이 나이.

나를 무대 중앙으로 환영해 준 발레.


몸이 굳어서 생각만큼 잘 따라가지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이 생각뿐이다.

발레, 내 마흔 이후의 삶은 너와 함께 나풀거리고 싶다.


이렇게 쭈뼛쭈뼛 발레 학원 문을 열었다. 눈치 보느라,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느라, 다른 사람이 혹시나 나를 쳐다볼까 봐, 주목받는 것이 부끄러워 식당에서 단무지 추가도 못하면서 의지할 데라고는 바 (barre) 하나와 내 몸뿐인 발레 학원, 전신 거울이 벽 한쪽을 가득 채워 360도 방향에서 모두가 나를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어설프게나마 동작을 해냈다.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다, 단지 실수 없이 해내고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큰 틀을 깼다.


누가 허락해서 될 일도, 누군가 허락하는 일도 아니었던, 오로지 나만이 허락할 수 있었던 일. 그래서 가능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