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에도,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발을 쉽게 만지려고 애를 쓸 일도 없었지만, 돈을 준다고 해도 거절했을 거다. 20대인 내 발레 선생은 발레 교실 바닥을 밟고 누르고 쓸고 다닌 내 더러운 발을, 회원들의 더러운 발을 맨 손으로 감싸 발바닥이 탱탱이 펴지도록 매만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앉은 채로 스트레칭이 끝나면 근력 운동하는 시간. 복근과 허벅지 근육, 나이 탓인지 잘 펴지지 않는 무릎, 부족한 유연성 이 모든 조건들로 나는 누워서 양다리를 들고 있는 것도 힘들어했었다. 다리가 벌어지고 몸 쪽으로 쏟아지려고 하면 발레 선생이 나타나 내 발을 두 손으로 감싸며 지지한다.
'배 잡으세요, 안 그러면 허리 다쳐요. 허벅지 안 쪽을 바깥쪽으로 돌리셔야 해요. 턴 아웃'
발레 선생의 주문이 참 많다.
내 발레 학원은 주문 많은 집이다. 누구나의 발레 학원도 그럴 테지만.
1번 발 (first position): 발바닥, 뒤꿈치, 발가락을 바닥에 용접한 듯 고정하고 흔들리지 않게 선 채 뒤꿈치부터 무릎, 허벅지를 모두 붙인다. 단, 허벅지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다리는 모두 바깥쪽으로 돌려 턴 아웃시킨다. 엉덩이는 평평하게, 허리는 굴곡 없이, 배를 잡고, 갈비뼈를 닫고, 키는 커지되 허리는 짧게, 어깨는 펴고, 팔은 겨드랑이에서 달걀 한 개 정도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두고, 양손은 아래로 가볍게 떨어 뜨려 곡선을 유지하고, 목은 길게, 턱을 들고, 시선은 오른쪽을 본다.
발레 입문 반에서 처음 배우는 1번 발을 하면서 발레 선생이 귀가 따갑도록 읊어주신 것들. 줄줄이 늘어놓았지만 아마도 내가 잊은 게 더 있을 텐데, 너무 많아 외울 수가 없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갈비뼈를 닫은 채 어떻게 복근을 잡는지 터득하는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는데, 사실 아직도 잘 되지 않는다. 다리 모양이 벌어진 내 신체구조상 1번 발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동작이지만 잔소리에 부응해 어떻게든 해내려는 노력을 보인다. 그 많은 회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고도 내 옆에 와서 허벅지 안 쪽 근육을 콕콕 찌르는 발레선생님.
'말캉말캉하면 안 되는데, 안쪽 근육 써요! 턴아웃!'
'배 어디 갔어요? 엉덩이는 언제까지 그렇게 편하게 계실 거예요? 갈비뼈 닫으세요!'
발레 선생의 잔소리를 모두 수용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내 몸은 뒤로 넘어가기 일보직전이다. 더 신기한 것은 뒤로 넘어가기 일보직전인 내 등 뒤에서 발레 선생님이 언젠가부터 손으로 나를 받치고 계셨다.
'자, 넘어가죠? 배 잡아야 안 넘어가요. 배!'
최대한 잔소리를 모두 몸에 담고 온갖 근육을 다 짜내 동작을 한 후 뒤꿈치를 바닥에 붙이고 시선처리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이 정도면 되겠다 싶지만 곧이어 마지막 남은 잔소리가 나지막이 울린다.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겨드랑이 사이에 있던 달걀은 다 깨졌어요. 그렇죠?'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같은 동작을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일관성 있게 지도하고 고쳐주는 내 발레 선생.
영어 전공자랍시고 젊을 때 영어 가르치던 내 모습을 회상하면, 제자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에 고개가 숙여지는데.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같은 실수를 하면 짜증을 섞어 가르쳤었고, 고쳐줘도 또 틀리는 성인 학생에게는 무심함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의 내 발레 선생처럼 최선을 다해 가르친 적이 없던 것 같다. 단지 내가 제자보다 먼저 배워서 가르친다는 것을 넘어, 사명을 가지고 가르치는 발레선생.
나이를 떠나 존경하고 배울 점이 많은 발레리나.
잔소리쟁이 내 발레선생
나는 그녀가 좋다.
내가 발레를 사랑하는 이유 중 큰 파이를 차지한다.
이 힘든 과정들을 대 여섯 살에 시작해 몸으로 익혀낸, 무대 위의 발레인들을 그래서 더 존경한다.
그들이 발레에 쏟은 열정과 시간의 발톱만큼이라도 견디고 인내해보려고 한다.
나에게는 내 호흡과 내 몸에 집중할 수 있는 바닥과 거울이 있으며, 잔소리쟁이 발레선생이 있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입사하는 신입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 같고, 왠지 의견을 내면 안 될 것 같은 눈치를 보게 되었다. 능력을 인정받는 횟수가 줄어든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세상과 멀어지는가 보다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마음을 접었다. 열심히 하지 않기로, 남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로, 나서지 않기로,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기로.
아직은 분홍색 타이츠와 레오타드 입기가 부끄러워 검은색 현대무용 바지만 고집하는 내가, 새로 산 검은색 현대무용 바지를 입고 가면 '어디에서 사셨어요? 회원님 옷이 너무 예쁜 거야.'라고 발레 선생이 알아봐 준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더니 나이들은 것은 확실하고 아이가 된 것도 맞나 보다. 예쁘다고, 잘한다고,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남이 알아봐 주는 것이 중요한 나이가 된 것이다.
쪼그라든 자신감, 발레에서만큼은 펼칠 수 있어 좋다.
'너무 힘들어 토할 것 같아.'
그렇지만 이렇게 끌리는 이것을 내 삶에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