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 생애 바뜨망을 해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간 내 삶의 방식대로라면 이쯤 해서 유턴하거나 좌회전 또는 우회전으로 꺾어 다른 취미를 찾아봤을 테다. 이번에는 달랐다.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발레는 나에게 이 생각을 던졌다.
내가 다니는 학원은 입문반 > 레벨 0 > 레벨 0.5 > 레벨 1 이렇게 수준별 수업이 있었다. 주 2회 수업을 끊고 입문반과 레벨 0 수업을 번갈아 들었는데 어느 날, 이상하게도 레벨에 의심이 들었다. 분명 레벨 0반인데 선생도 회원들도 나보다 두 단계는 더 앞선 것을 하고 있다는 의심.
출산 두 번과 나이를 핑계로 들자면 내 나이대는 암기력이 떨어진다, 바 워크와 센터 워크 순서를 전혀 못 외고 있었다, 레벨 0 반에서. 또 한 가지 내가 이 수준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근력 부족에 있었다. 결혼 전 한창 몸이 좋을 때에도 윗몸일으키기를 1분에 겨우 25개를 해냈던 체력이었으니까.
발레학원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갔다가 네 발로 기어 나온다는 취미 발레인, 그게 바로 나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기에는 너무나도 답이 뻔한 문제. 근력을 키우고 연습을 늘려야 한다는 것.
'아, 나는 안되나 보다. 맞아, 이 나이에 무슨 발레.'
얼마 전의 나라면 이렇게 뒤돌아 나갔을 텐데, 이번에는 방법을 찾아 고쳐내고 싶어졌다.
발레학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형 피트니스에는 각종 요가, 필라테스, 탄츠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주 2회 발레 하는 일정에 이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주 2회 추가해서 몸을 정비하기로 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추가 운동을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내 체력이 탄력을 받아 발레 시간에 더 여유롭게 집중할 수 있었고 스트레칭 각도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특히, 발레학원에서는 제일 뻣뻣하던 내가 일반 피트니스 센터의 탄츠 수업에서는 회원들로부터 '무용하셨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자신감도 높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 탄츠 선생이 수업이 끝날 때 즈음 나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발레 하셨어요?'
배우지 않은 사람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태가 난다며 팔, 다리가 길고 마른 체형이라 발레 하기 아주 좋으니 열심히 배우라는 탄츠 선생의 말에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 수업 막바지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하는 시간, 나는 칭찬받은 김에 더 씩씩하게 탄츠 동작을 해내고 팔, 다리를 마음껏 찢었다. 열심히 하는 아줌마에게 젊은 선생이 예의상 칭찬 한 마디 한 걸로 이렇게 신나 하다니.
'퍽'
허벅지 근육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여기서도 나는 두 발로 걸어 들어가서, 네 발로 기어 나왔다.
자고로 발레 스트레칭은 몸에 힘을 주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팔, 다리를 위아래로 길게 뽑아야 함을. '잘한다, 잘한다.' 하니 정말 그런 줄로 착각하고 발레 배운 태가 난다는 말에 정신이 나가서 마구 눌렀나 보다. 짧았던 근육이 버텨낼 리 없었다. 다음 날, 정형외과에서 햄스트링을 다쳤다는 진단을 받고 한 달 동안 운동을 쉴 수밖에 없었다, 소염제를 먹고 놀란 근육에 로션을 바르며.
한 달을 쉬고 다시 발레학원으로 돌아가 각 레벨반 선생에게 '저, 햄스트링 다쳐서 무릎이 안 펴져요. 스트레칭할 때 누르지 말아 주세요.'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야 했다.
다시 발레학원에 처음 왔던 그때의 막대기 상태로 돌아가, 회원들이 쭉쭉 스플릿을 할 때 나는 공중에서 무릎을 마사지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발레리나가 쓴 책에 이런 글이 있었다, 발레는 열심히 하되 몸을 혹사시키지는 말라. 시작한 지 6개월도 안돼 욕심부리다 한 달을 쉬었고, 다시 6개월 전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보 후퇴의 시간.
뼈로 느꼈다. 즐겁게 하자, 열심히 하자, 현명하게 하자. 단, 다치지는 말자.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몸이 뜨거워지기 전에는 절대 스플릿을 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웠다. 햄스트링 부상 후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태어나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프런트 스플릿이 자유롭게 된다. 안타깝게도 햄스트링을 다쳤었기 때문에 사이드 스플릿은 150도가량이 최대이다, 그래도 이렇게 늘린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발레를 잘하고 싶어서, 발레 수업을 따라잡으려고 다른 운동을 추가했다가 다쳤다는 내 말에 선생은 나를 신기해했다. 아마도 조용히 수업만 받고 학원을 벗어나는 내가 이렇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아 몰랐을 테니까. 이후 따라온 것은, 선생의 관심과 정성 어린 잔소리 릴레이였다.
'엉덩이 내리세요, 흉곽 닫으세요, 배 잡아요, 턴아웃, 팔꿈치 열어요, 턱 들어요, 미간에 주름 펴요, 마스크 속에서 인상 쓰지 마세요, 발가락 힘줘요, 풀업...'
끝이 없는 뿌듯한 그녀의 관심.
다치고 나서 깨달은 것은 인생도 발레도 마찬가지, 어차피 한 번은 꼬꾸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닥을 쳐야만 다시 돌아보고 '아차'하게 되는 나라는 사람. 발가락이나 발목이 부러질 정도로 다치지 않고 이 정도 부상에서 깨달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감사하다, 햄스트링만 다쳐서.
또 한 가지, 휙 돌아 포기하지 않은 내가 대견하다.
즐겁게, 열심히, 내 몸을 돌봐가며,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그래야 내가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다.
할머니 발레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