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쁠리에, 쑤쓰, 앙바, 앙아방, 앙호, 알라스콘”
뒤꿈치를 들고 발바닥의 4분의 1도 안 되는 발가락과 메타타살만에 온몸을 지지한 채 서서 폴드브라를 한다. 살랑바람만 휙 불어도 곧 쓰러지겠다만, 발레 선생은 한 가지를 더 주문한다.
“아직 내려가지 마세요, 양옆으로 길게 더 뻗어요, 알롱제. 턱 들어요. 이제 살며시 내려와요.”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속도만큼이나 뒤꿈치를 빨리 바닥에 내리고 싶지만, 고관절과 허벅지, 종아리, 발목, 뒤꿈치 근육을 모두 쓰고 서서히 착륙한다. 갈비뼈를 닫아 몸 안에 가뒀던 복근도 마저 풀어주면 그제야 숨을 돌린다.
나는 스물아홉 살이다, 스물넷에 항공사 승무원이 되어 중동에서 살다가 청혼을 받고 돌아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았고, 지금의 직장을 15년째 다니고 있는 스물아홉. 계산이 맞지 않는다, 실제 나이는 마흔을 넘어섰지만, 첫 아이를 낳은 서른 이후의 나를 부정하고 있으니 나는 스물아홉 살이 맞다. 그냥 그렇다고 해두자.
여전히 스물아홉, 세상 일에 끼고 싶은 것도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세상은 ‘나잇값을 하시는 게 어때요,’, ‘이런 건 젊은 분이 하시는 편이 낫겠어요.’, ‘후배들 하라고 하고 그냥 계시죠.’라고 자꾸만 나를 밀어내는 것 같다, 아니면 눈치 빠른 내가 스스로 물러났거나.
잔뜩 주눅 들어 찌그러든 나를 어쩌면 좋을까, 마지막으로 한번 펼쳐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발레다. 마룻바닥에 매트를 깔고 둘러보면 피부부터 광채 나는 20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삐죽빼죽 짧은 머리가 난 30대, 삶의 그늘이 보이는 40대와 검버섯 핀 5, 60대 회원이 보인다. 호흡 정리, 근력 운동, 스트레칭으로 몸과 뼈에 열을 올리고 나서 바워크를 한다. 1번 동작부터 5번 동작, 롱드잠, 줴떼, 빠쎄, 바뜨망 같은 기본 동작을 줄줄이 하면 센터 워크로 들어가 씨쏜느, 쑤뜨뉘 같은 점프와 턴, 즉 발레리나다운 동작을 한다. 매트를 펼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발레의 순서. 이 순서를 새치기하면 몸이 망가지고 제대로 되는 동작이 있을 리 없다. 프로 무용수들도 기본 동작부터 다잡기 위해, 그리고 다치지 않기 위해 이 순서를 매일 반복한다.
엄격하리만큼 질서와 예의를 강조하는 발레, 너무 늦게 시작한 나머지 순서를 무시하고 바로 바뜨망에서 다리가 휙휙 귀 옆으로 올라가면 좋겠다는 욕심에 상체를 무리하게 흔들면 이내 음악을 끄고 다가오는 발레 선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체 망가졌어요, 갈비뼈 닫으세요, 배 잡으세요, 엉덩이는 언제까지 편하게 계실 거예요? 골반부터 허벅지를 바깥으로 돌리세요, 턴 아웃, 근육 쓰세요, 어깨 내리세요. 다시, 처음부터.”
그래, 서둘러서 될 거였으면 발레리나의 발톱이 그 모양일 리 없지. 그녀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디고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았을까, 다시 마음부터 가다듬고 발레 선생의 잔소리를 수용한다. 고관절부터 허벅지, 무릎, 발목까지 바깥으로 돌려 턴 아웃, 엉덩이를 내리고 배를 잡고 갈비뼈를 닫아 등을 곧게 세우고, 겨드랑이에는 달걀 한 개가 들어갈 공간을 둔 뒤 팔에는 힘을 빼고 양 볼을 든다는 느낌으로 턱을 들어 시선은 관객을 향해 지긋이 바라본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음악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대신 발레 선생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바닥에 깔린다.
“잘하셨어요, 그런데 겨드랑이에 달걀은 다 깨졌어요. 팔꿈치 들어요.”
‘이 정도, 이만하면, 이만큼, 지금까지 했으면 됐다.’라는 범위가 없는 발레에서는 마치 고양이의 발걸음처럼 아는 길도, 가본 길도, 이미 해본 것도, 살금살금 조심스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발레 수업을 마치고 차로 돌아와 약속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열어 목적지를 검색했다, 여러 경로 중 선택을 앞두고 고민이다. 추천경로, 최소시간 경로, 무료 경로, 유료경로, 최단 거리, 편한 거리 우선 경로. 이날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최소시간 경로를 누르고 내 시간을 작은 기계 하나에 맡겼다. 그리고는 내비게이션이 말하는 대로 운전대를 움직였다. 돌아보면 사실, 이날뿐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단거리 경로, 최소시간 경로를 안내하는 무언가에 맡겼다. 그리고는 세상이 말하는 대로 나를 움직였다.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빠르다는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옆 사무실 후배보다 당연히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아래층 동료보다 더 인정받고 싶어서, 같이 시작한 동기보다 앞서나가야 할 것 같아서, 기본을 거스르고 최단 거리로 달려왔던 내 시간.
그간 나의 시간을 돌아보면 줏대 없이 새치기로 끼어든 것들에 유난히 흔들림이 많았던 것 같다, 내 삶은 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대쪽 같았다고 믿었는데. 이기고 싶었던 경쟁, 더 많이 갖고 싶었던 욕심, 질투와 미움, 작은 일에 마음 썼던 연약함, 나를 흔들던 괴롭힘. 어쩌면 약했던 내가, 이런 새치기들이 내 앞에 끼어들도록 허용했나 보다. 목적지에 성큼 다다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앞서서 결국 내 소중한 시간은 중심을 잃고 말았다. 동작을 모두 마무리했지만 겨드랑이와 몸통 사이에 두어야 했던 공간을 무시해 눈에 보이지 않는 달걀이 깨졌듯이. 복근을 잡아 상체를 움직이지 않게 해야 했던 기본을 지나쳐 내 몸이 흔들렸듯이.
순서에 엄격하고 새치기를 용납하지 않는 발레에서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손동작 하나를 하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기초 동작을 빨리 해치우고 발레리나다운 동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최소시간, 최단 거리 경로를 선택하려고 하면, 또는 단계를 뛰어넘어 보려고 하면 이미 발레는 없고 춤도 아닌 엉거주춤 만 남을 뿐이다. 닳고 넘어져 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몸이 깨닫는다. 순서를 지켜야 그다음이 만들어지는 몸짓, 발레가 알려준 정직함이다.
남들은 쉽게 가는 길이 나에게만 구부러진 급경사인 듯 어려워 보였다. 결국 내 마음이 구부러지고 경사진 험한 언덕이었던 것을 발레 스튜디오에서도 그랬듯, 내 삶에서도 다치고 상처받고 부서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사람살이도 새치기는 없었다. 내가 새치기를 하면서까지 지나치고 무시했던 것들이 과연 얼마나 많았을까.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섯 발가락과 발바닥에 고르게 힘을 분산하고 복근을 잡아 마치 내 다리를 바닥에 나무 심듯 흔들리지 않게 선다. 준비되었을 때 오른 다리를 파세 동작으로 올려 왼 다리로만 선다. 보이지 않는 낚싯줄이 내 정수리를 고리에 엮어 매단 느낌으로 턱을 든다. 바에서 한 손을 놓아 본다. 다른 한 손을 마저 놓아 보지만 다시 나는 흔들린다, 그러면 다시 바를 잡아 처음부터 순서를 다시 읊는다. 정수리를 천장으로, 턱을 들고, 어깨 내리고, 갈비뼈 닫고, 배를 잡아, 엉덩이 내리고, 허벅지는 턴 아웃, 다시 빠쎄.
발레 스튜디오에 ‘나’라는 나무를 심는다, 흔들리면 처음부터 다시, 또 흔들리면 그래도 처음부터. 또다시.
작은 동작 하나를 하면서도 땀을 비 오듯 쏟는 발레에서 내 삶을 본다, 더 들여다보고 싶다. 늦게, 너무 늦게, 마흔이 돼서야 시작한 이 발레 안에서. 바람도 없는 이곳에서도 이렇게 흔들리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발레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