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발레반에 모인 사람들

by 발레 언니

상사의 괴롭힘을 주된 이유로, 앞만 보고 바쁘게 사느라 지친 몸, 그리고 쇠약해진 마음을 가지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그저 거품처럼 사라지고만 싶었다. 나를 걱정하는 사무실 동료들은 달리기나 그림 같은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회사를 잠시 잊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발레였다.


성인 발레반에는 누가 있을까, 몇 명이 있을까, 나잇대는 어떨까, 돈이 많이 드는 취미일 것 같은데 옷은 어떻게 입고 가지?


너무 지쳐있던 나는, 남의 시선을 지독히도 신경 쓰는 성격을 잠시 잊을 만큼 바닥을 쳤었는지 위아래 까만 옷을 대충 챙겨 입고 천 슈즈를 손에 달랑 든 채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오전 시간에 오는 분들은 가정 주부, 프리랜서, 대학생이었다. 학원을 오래 다니다 보니 개인사를 아주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교수, 박사, 의사도 있었다.


사실 나는 몸치다. 가장 신체 활동이 활발하던 초, 중, 고 때에도 100미터를 22초에 달리던 운동신경이 없어도 너무 없던 마르고 힘없는 사람이다. 발레를 시작하고 삶에 활력을 얻어 눈빛이 빛날 때 즈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회원에게 아주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말을 들었다.

'ㅇㅇ씨 너무 열심히 한다. 많이 늘었어요. 몸에 근육도 있고 힘도 있고.'


크롭탑과 사이클링 쇼츠를 입고 발레 한 날, 아마도 공복에 오전 수업을 듣다 보니 복근이 조금 드러났었나 보다. 이로써 활력과 눈에 생기를 한 단계 더 올렸다. 위아래 헐렁한 검은색 옷에서 몸에 달라붙는 옷에서 근육과 뼈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운동복으로 점점 가볍게 입었다, 수많은 회원들 사이에서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나를 그렇게 더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정적이길 원하고 땀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는데 발레를 시작하고 달라진 것이 몇 가지 있다.

한 자세로 컴퓨터를 오래 하거나, 하루 종일 가만히 있는 것이 전부였다가 지금은 이대로 발레를 하면 다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고 근육을 풀다가 학원에 간다. 저녁 식사를 거하게 먹고는 운동을 할 수 없어서 가벼운 식사나 채소로 이른 저녁을 먹는다. 몸무게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키가 커졌다거나 목 선, 다리 라인이 정돈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다.


검색어도 달라졌다.

애플 뮤직, 유튜브, 영화, 드라마, 인터넷도 모두 'ballet'를 검색해 음악과 영상을 듣고 본다.


SNS를 하지 않지만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계정을 만들었다.

치과의사였던가, 나보다 인생 경험이 많았던 그분의 피드에 인상적인 글이 있었다. 성인 발레반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그 피드가 대신할 수 있었다. 이분의 계정을 찾을 수가 없어 기억나는 대로 적는다.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멀쩡히 한 자리씩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안 그러면 한 달에 수 십만 원 하는 학원비를 부담할 수 없음) 발레를 너무나도 못 하고 있음'


그렇지, 맞지.

발레 레슨비는 회당 3만 원

토슈즈, 작품을 한다면 플러스알파

천 슈즈로 시작해도 신다 보면 발에 맞는 것을 찾게 되고 켤레당 4~5만 원 하는 것으로 눈이 올라간다.

몸이 드러나는 레오타드만큼 발레가 잘 되는 복장은 없기 때문에 2-3만 원 하는 입시용, 기본 캐미솔부터 3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것까지 레오타드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한 두벌 가지고는 주 3-4회 레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도 옷장을 채우는 것은 시간문제다.

관절 부상을 막기 위해 상체, 하체, 무릎, 발목 분리형 워머뿐 아니라 몸 전체에 열을 올리는 전신 워머도 필요하다. 여기에 전적으로 개인 취향이지만, 시폰 스커트를 하나씩 두르다 보면 이것 또한 레오타드만큼 고가의 것도 있다.


수명이 짧은 토슈즈 교체비용, 작품반 의상, 콩쿠르 참가비용, 이를 위한 개인 레슨을 더한다면 정말 위의 피드대로 사회에서 멀쩡히 한 자리씩 하고 있지 않으면 스스로 감당하기 벅찰 수도 있는 '돈'이 드는 취미인 것은 확실하다.


'사회에서 너무나도 멀쩡히 한 자리' 하고 있던 나는, 내년이면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시한부 백수로서 남은 시간 동안 '발레를 너무나도 못 하고 있는' 성인 발레반 회원이 되지 않기 위해 발레에 더 공을 들여야겠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발레 하려면 몸을 건강하게 잘 가꿔야 한다. 사실 '발레를 너무나도 못 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이미 뿌듯하긴 하다.


잠시 직장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 시간, 발레를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었을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므로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기는 했을 테지만 할머니가 될 때까지의 플랜을 짤만큼 마음에 쏙 드는 것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발레를 하다 생긴 햄스트링과 장요근 통증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뼈 때리는 말을 했었다, '나이가 있는데, 가만히 있어도 아픈 게 당연하죠.' 나이가 있어 아픈 게 당연한 내가, 사이드 데벨로페를 감히 올해 목표로 삼아봐야겠다.


이렇게, 성인 발레반에 모인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빠져 도전을 감행한다. 그렇게 모두 모여, 발레를 너무나도 못 하고 있다. 우리는 잘해보려고 그러고 있는 거다, 잘 해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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