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백팩을 멘 트레이닝복 차림의 한 여학생의 걸음걸이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멀리서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무용 전공생이구나.'.
발레리나들은 머리카락을 그물망에 한 올도 빠짐없이 넣어 묶어 한눈에 구분이 가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이 아니어도 몸에서 품어내는 무용수의 아우라가 있다. 요즘 내 선망의 대상인 무용수를 발견한 이상, 그 여학생이 터벅터벅 걸음걸이를 마치고 한 건물로 들어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야에서 그녀가 사라지자 나도 이내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버릇, 습관, 말투, 시그니처, 쿠세, 쪼
모두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습관을 말할 때 쓰이는 단어. 차이가 있다면 시그니처는 그 사람만이 가진 상징적, 특징적인 점을 좋게 표현한 것이고 쿠세나 쪼는 통상 안 좋은 습관이니 고쳐야 할 점이라고 표현한 단어로 쓰인다. signature의 본래 사전적 의미는, '수표, 서류, 문서를 마무리할 때 신분증 형식, 구별된 방식으로 쓰인 사람의 이름'이다. 즉, 그것만 봐도 그 사람이라는 것 또는 그 사람만의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한 사람의 반복되는 행동이나 말버릇, 특징을 잘 알아차리는 편이다. 내가 만약 그 점을 겉으로 잘 표현할 수 있거나, 내가 만약 방송인이라면 성대모사로 소위 잘 나갈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을 할 정도다. 오랜만에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 최근 몇 년, 교수님들 강의에서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시그니처 혹은 쿠세가 있다.
어떤 교수님은 그것이 너무 강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빙고판도 있다. 교수님이 한 수업시간 동안 반복하는 말들을 빙고판에 적은 뒤 원 빙고를 먼저 완성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좋든 나쁘든 핫한 교수님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올해 총 여섯 명의 발레리나에게 지도를 받았다.
음악에 내 호흡을 맡기고 소란한 세상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준 발레리나
발레학원에 방방 뛰어가게 만든, 내 삶에 소소한 행복을 선물해준 발레리나
꾸준함은 재능을 이길 만큼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발레리나
내 엄지발가락의 위치와 왼쪽 턱 밑의 그늘 같은 디테일을 교정해 준 발레리나
준비, 시작, 끝맺음의 중요함을 깨우쳐준 발레리나
내 유연성을 10도 올려준 발레리나
글로 옮기고 나서 왜 그 선생님은 그 부분을 고쳐주셨을까, 왜 하필이면 그 부분을 강조하셨을까 생각이 든다. 발레리나들도 제각각 중요하게 여기는 챕터가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배우는 입장에서 나를 헷갈리게 한 적도 있다.
백 캄블레 동작에 앞서 호흡과 풀업을 정리한 뒤 손가락을 살짝 살랑이듯 나풀거린 후 뒤로 넘기라는 선생님에게 배우다가, 호흡과 풀업을 정돈하되 손가락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선생님이 나타나자 앙오에서 얼음이 돼버렸었다. 그랑 플리에에서 앙아방을 거쳐 알라스콩으로 올라올 때 한 번 멈추라는 선생님, 절대 멈추지 말라는 선생님, 이 역시 바워크 기본 동작에서 나는 얼음 했다.
'쿠세'라는 말도 사실 위 여섯 명의 발레리나 중 한 분께 들었다, 다른 선생님께 배운 동작을 보이면 '그런 동작을 쿠세라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아요.'라고 고쳐주셨다.
쿠세가 한 사람의 몸에 익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나는 안다.
대학생 때 닮고 싶은 언니가 한 명 있었다, 그 언니가 너무 좋아서 언니의 펜 잡는 버릇을 따라 했다. 그렇게 되니 언니의 갈겨쓰는 글씨체를 따라 할 수 있었다. 선망하던 한 직장 선배, 그 선배의 전화받는 말버릇이 나도 모르게 입에 뱄었다. 선배를 관찰하다 보니, 노력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선배의 흐물거리는 걸음걸이를 내가 하고 있었다.
지금 나를 지도하는 발레리나들도 아마 어느 발레리나를 닮고 싶어서, 선망하다가 그 버릇이 몸에 익었을 것이다.
자주 바뀌는 선생님으로 혼란스러웠던 수업시간, 지금은 수업마다 만나는 다른 발레리나의 지도에 맞게 동작을 맞춰하고 있다. 이렇게 하라는 선생님 앞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선생님 앞에서는 저렇게.
이도 저도 상관없이 나는 발레가 너무 좋으니까.
여섯 명의 발레리나.
모두 닮고 싶고, 모두가 선망의 대상이다.
내 몸에는 과연 어느 발레리나의 버릇이 쌓이고 있을까.
부디,
그 버릇이 쿠세가 아닌 시그니처로 자리 잡히기를 바라며, 내게서도 무용수의 아우라가 묻어나기를 바라며 오늘 수업에 입을 레오타드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