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취미 발레의 끝은

by 발레 언니

주 2회에서 3회로, 그것도 모자라 4회로 수업을 늘렸는데 내 실력은 늘지 않은 느낌에 조바심이 났다.

특별하지 않은 내 스케줄을 늘어놓고 빈 시간대를 동그라미 한 다음 그 동그라미에 수강할 만한 발레학원 하나를 더 등록했다. 그렇게 1주일에 여섯 클래스를 듣기 시작했다.


앞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있다가 오래된 회원들 간의 대화가 귀에 들렸다. 일주일에 두 번 발레 하러 오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란다. 발레에 한 번 빠지면 다른 운동은 못한단다. 속으로 나도 공감했다.

'저와 같네요.'.


한 올의 머리카락도 빠짐없이 흰구름 색깔인 회원님과 눈이 마주쳤다. 흰구름 회원님은 마치 '못 보던 얼굴인데 처음인가? 누구?'라는 눈빛을 보냈다. 낯은 가려도 예의 하나는 아주 바른 나는 어르신임이 분명한 그분의 눈빛에 상냥하게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등록했어요.


스튜디오 바닥 재질, 벽에 붙은 거울의 개수와 위치, 오디오 시스템, 음악, 그 안을 채우는 회원들, 선생님까지 모두 달랐다. 프라페는 바워크마다 해서 익숙했지만 쁘띠 바뜨망을 함께 구성한 적은 거의 없어서 내 기억 속의 '잔발 치기', 쁘띠 바뜨망 시간에는 그저 외발 버티기로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새로운 순서의 매트 운동, 바 워크, 센터 구성에 눈동자를 바삐 움직이느라 몸살이 날 지경이었지만 이곳에서의 발레도 역시나 내 마음을 뜨겁게 했다.


난생처음 발레 학원에 갔을 때 취미 발레반 회원들의 연령대에 놀랐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 연령대의 폭이 더 다양했고 70대 회원님을 뵙고는 예전의 기억은 이미 교체되었다.


낯가림이 심한 성격 탓에, 누군가 말을 걸까 봐 수업 종료와 동시에 사르륵 문을 빠져나와 차에 안착한 뒤 집으로 오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 여 회원들과 인상 깊은 70대 회원님. 그들에게 취미 발레는 어떤 의미이며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매년 3월이면 콩쿠르의 계절이 시작된다. 전공생들 뿐 아니라 일반부가 참여하는 콩쿠르도 수 없이 많은데, 그를 위해 작품 선정, 안무, 의상, 연습에 연습이 이어진다. 우리 학원에도 전공하는 아가들부터 중, 고생들은 늦은 밤, 주말 할 것 없이 무대 의상을 입고 리허설에 열심이다. 나와 레벨 차이가 있어서 수업에서 그리 많이 겹치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서너 살 나이가 더 많은 취미 발레반 회원들 몇 분도 콩쿠르를 준비하고 있었다.


발레를 배우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일반부 콩쿠르라는 신세계.

취미 발레의 끝은 콩쿠르 참가인가.


새로 등록한 학원에서 무사히 수업을 마친 어느 날, 한 회원님이 나에게 다가와 토슈즈 반 일정을 알려주며 그 수업에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아직 익숙해지려면 무사히 마치는 몇 번의 수업을 더 겪어야 하는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또 스르르 문을 열고 차를 향해 바삐 걸어갔다.

- 아, 토슈즈요? 제가 힘이 부족한데 토에 설 수 있을까요.


사실 토슈즈를 신어보고 싶다. 토슈즈에 천을 손수 바느질해서 내 발에 맞게 길들이고 싶고, 공단 리본 끈도 달고 스트레치 리본 끈도 달아 신고 up 하고 싶다. 하지만, 내면에 '어디까지 욕심 낼 거니'라고 묻는 질문에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다.


취미 발레의 끝은 토슈즈 클래스인가.


취미 발레반은 레벨이 나뉜다. 입문반,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여기에 번외로 파퀴타, 라일락 요정 같은 하나의 작품을 배우는 작품반, 천 슈즈가 아닌 토슈즈를 신고 발레 워크를 하는 토슈즈반이 있고, 개인 레슨이 있다. 또 나열하자면, 같은 수준의 회원을 몇 명만 모아 지도받는 소그룹이 또 있다. 이 경우, 주로 고급반 레벨 이상의 친분이 있는 회원들이 인원을 모아 선생님께 따로 지도를 받는 것이다. 나는 입문이나 초급은 넘어섰지만 기본을 몸에 더 익히고 싶어 입문과 초급반을 주로 듣고 가끔 중급반에 들어간다. 그날이면 잔소리쟁이 발레리나에게 한 소리를 듣는 날이다.

'아니, 왜 초급반에 들어와. 중급반에 가서 어렵더라도 레벨을 올려야 하는 시기예요.'


중급반에 가면 나는, 외줄 타기를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 줄꾼처럼 망가진 폴드브라를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다 시간을 보내기 마련인데 수업이 끝나서도 개운하지 않고 마음이 상해서 찌뿌둥하다.


기초반을 주로 열심히 다녀서인지 바워크에서의 나를 보고는 내가 아주 잘하는 것처럼 오해한 회원님들이 작품을 같이 배우자고 권유할 때가 있다. '회원님 많이 늘었던데, 토슈즈 왜 안 신으세요. 저랑 같이 작품도 해봐요. 발레는 작품이죠.'


열린 골반이라 턴아웃이 잘 될 뿐, 기본자세를 보면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뿐, 허우적대는 현재 수준으로 작품반은 어림도 없다. 30초짜리 아다지오 순서도 못 외는 내가 작품이라니.


2-3분 동안 이어지는 음악을 온전히 내 몸짓으로 채운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그 안에서 나는 음악과 함께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에게 권유한 회원님 말대로 정말 취미 발레의 끝은 작품일까.


꾸준히 하면 언젠가 내 몸에서도 무용수의 아우라가 뿜어지기를 기대하며 잔잔히 배우면 될 것을.

내가 조바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으로 회사를 등지고 난 뒤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있던 나에게 아직 숨이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거울을 바로 볼 수 있게 해 준 발레다. 거울에 비친 나를 바로 바라보고 나를 사랑하도록, 심지어 교습소 한가운데 설 수 있게 해 준 발레 덕분이다. 정신머리를 가다듬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발레란 시한부 환자에게 꽂혀있는 링거 호스와 같다.


우연히 로열 오페라 하우스 발레단 수업 실황을 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수많은 무용수들을 지도했고 또 하나, 무대 아래 피아니스트를 지휘했다. 잔잔한 웜업과 플리에부터 경쾌한 바뜨망, 탄듀, 우아한 론드잠, 아다지오 모든 동작을 피아노 연주에 맞춰 무용수들은 몸을 움직였다. 사실, 그곳의 지휘자는 선생님도 아니고 피아니스트도 아닌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였다. 그때부터 로망이 생겼다.


디즈니, 영화음악, 클래식 등 골라가며 여러 음악을 듣는 것도 발레 수업의 묘미이지만 피아노 연주와 함께하는 발레 클래스는 나에게 로망이다.


새로 등록한 학원 구석에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블루투스로 연결해 선생님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발레를 배워온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발레 클래스를 피아노 연주에 맞춰하는 것. 아마도 이 로망은, 나라는 사람의 취미 발레의 끝일 것이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날개 단 듯 자유롭게 춤추는 손가락처럼 내 몸도 그렇게 피아노 선율을 따라 가볍고 아름답게 춤추기를. 이것이 내 시한부 취미 발레의 끝이다.


그 끝을 언제 볼 수 있을지.

아련하지만 그것을 품으니 가슴이 뜨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