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석사과정을 밟을 때, 과 막내였던 나는 무조건 밝게 행동하며 언니, 오빠, 교수님들을 따랐다. 그룹 과제, 발표, 시험도 모두 분위기에 휩쓸려 그저 열심히만 했다. 언니들이 서울 모처에서 스터디를 하자고 하면 일주일에 두 번씩 지방에서 올라와 한두 시간 스터디를 하고 다시 내려가거나, 시험기간에 합숙을 해야겠다고 하면 또 그렇게 먼 길을 올라와 함께 공부를 하고 언니들 집에서 몸을 구부려 잠을 청했다. 그 결과 두 번의 장학금 수혜와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사히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석사과정, 막내였던 나는 이제 우리 과 연장자에 속한다. 심지어 일부 교수님들과 '반갑다 친구야' 할 만큼 동년배이거나 조교수, 연구교수 중에는 나보다 어린 분도 많다. 조카뻘 되는 친구들의 입맛에 맞춰가며 그룹 과제, 그룹 발표, 그룹 회의, 시험을 하나씩 해치웠다. 이건 무사히 수료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온도차, 단어의 선택부터가 달라졌다. 비장하지만 '헤쳐나가기'라는 말이 맞았다.
첫 학기 시작과 동시에 딜레마에 빠졌다. 그룹과제, 소위 팀플은 사실 혼자 하는 작업에 비해 속도가 더디고 시간은 몇 배로 많이 든다. 서로의 기분을 해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야 해서 되도록 팀플이 없는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나의 철칙이었다. 그래도 대학원 수업에서 팀플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학교 방침이 있는지, 거의 모든 과목에 이것이 들어있었다. 팀플에서는 각자 맡은 역할만 해서는 부족하다, 서로 소통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거나 혼자만 앞서 나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일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팀원이 답답해서 내가 나서서 모든 일을 하면 결국 나만 녹초가 되고, 사실 혼자서 해낸 작업의 결과가 매우 뛰어난 경우도 드물기에 고통의 과정이다. 같이 열심히 하자고 서로 독려해도, '난 다른 과제가 있어서, 난 다른 시험이 있어서, 난 수업이 많아서, 난 몸이 안 좋아서, 논문 디펜스가 있어서, 알바가 있어서' 등등의 핑계로 무임승차하는 팀원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팀플 열차에 태워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야 하나'가 과제보다 더 큰 과제이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함에 있어 어디에 가치를 둬야 할까, 성적? 배우는 과정?' 막 학기까지 정답을 찾지 못하고 포스트잇에 이 질문을 그대로 적어 공부방 벽에 떡하니 붙여 놓았었지만 어느 정도 경로는 사실 1학기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 과정에 분명히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을 거야, 사람이든 교훈이든. 그걸 찾는 과정이 곧 배움이다. 나는 A플러스 학점보다 배움을 택하기로 했다. 학문을 배우고, 어린 친구들의 사고를 배우고 그것과 조화하는 것.
취미로 발레를 하면서 과연 이 취미활동의 끝은 뭘까, 고민했다. 땀 흘리면 그걸로 된 건가, 발레 친구를 사귀는 것? 콩쿠르에 나가는 것? 포인트 슈즈를 신는 것? 예쁜 발레복을 사는 것? 그저 나만 예쁘고 행복하면 그만?
발레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내 고민 주머니에는 무거운 짐들이 실렸다. 잘하고 싶어서 횟수를 늘리면 몸이 고장 났고, 살살하면 실력이 늘지 않았고, 발레 수업은 일주일에 고작 다섯 번 들으면서 레오타드는 옷걸이 숫자가 모자랄 정도로 자꾸만 번식 중이고, 발레로 집을 비우는 시간에 집에 남겨진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곧 직장 스케줄이 바뀌면 지금처럼 수업을 자주 들을 수 없으니 급해지는 마음까지. 그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과의 관계와 대화도 나를 힘들게 했다. 불편한 사람을 피해서 학원을 옮길까도 고민이 되었고, 내 기준에 밉상인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 시간을 피해 수업 스케줄을 조정했었다. 피하고 싶은 사람과 같은 바에 서게 되면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수업 중간임에도 다른 바로 피하기도 했다.
발레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서 좋아라 할 때는 언제고, 이래서 싫고 저래서 불편해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발레를 배움에 있어서 어디에 가치를 둬야 할까.
발레학원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언니에게 하소연했다, '시간 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 왜 이렇게 안 늘죠?' 지각을 하지도 않고, 완벽한 복장으로 누구보다 제일 먼저 스튜디오에 도착해 준비하는, 주 5회 수업을 잘 빠지지도 않는 언니는 대답했다. '취미로 하는 건데 조바심 낼 필요 없어요.'
그렇다, 취미라는 면죄부를 받고 발레에 다니면서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지.
스튜디오 안의 그 사람이 싫어서 피하는 것이 범죄는 아니다, 자책할 일도 아니다. 취미생활에서 두통을 얻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고통일 테니, 지혜롭게 피해서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자. 굳이 사회생활을 스튜디오에서까지 할 필요도 없다. 건강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은 남겨진 가족에게도, 내가 속한 회사에도 좋은 일이다. 유연하게 스케줄을 관리해보자.
발레를 배움에 있어서 가치를 둬야 하는 것은 다른 회원의 마음에 들도록 눈치를 보는 불편한 마음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조바심도, 내 시간으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이 느끼는 미안함도 아닌 바로 내 마음속 안녕과 건강이다.
답을 찾는데 오래 걸렸지만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