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떠올리면 찬란한 햇살이 짙은색 나무 바닥을 비치고 발레리나가 산들산들 춤을 춘다. 이런 장면을 누군가가 먼저 연출했을 텐데 궁금하다. 우리 발레학원에도 햇살이 비치긴 하지만 그곳은 영화에서 연출한 만큼 뽀얗고 화사하지만은 않다. 여름에도 에어컨을 잘 틀어주지 않아 탄성 마루가 끈적끈적해서 사우나실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겨울에는 약한 히터와 회원들의 격한 운동으로 한증막을 연상케 한다. 뿌옇고 습해서 수업이 끝난 직후에는 조금 불쾌한 공기가 느껴지기도 하니까.
어쨌거나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발레의 한 장면을 연출한 자는 이와이 슌지. <하나와 앨리스>가 큰 잘못을 했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인형같이 예쁜 앨리스에게 교복을 입혀 발레를 시켰고, 역시나 고정불변의 원리는 못 이긴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으니: 패션의 완성은 얼굴, 발레의 완성도 얼굴이었다.
누구나 선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있다, 그 낭만적인 순간.
발레를 조금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 걸, (이 레퍼토리는 브런치 글에서만 백 번쯤 우려먹은 것 같다.)
나이 먹는 것이, 몸이 굳는 것이, 순서를 까먹을 정도로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이 얼마나 서러우면 이럴까.
코 끝이 찡해지는 추위에 센티멘털해졌는지 음악을 듣는 내내 가사가 메트로놈처럼 관자놀이를 때린다, 탁. 탁. 탁.
- 아델은 나를 위해 대신 울어주고, 'I am so mad I'm getting old it makes me reckless'
- 최백호는 내 어깨를 토닥이고,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 유재하는, 서러움은 이제 그만 접어두고 나를 사랑하라고 어루만진다.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센티멘털에 빠지다 보니 하다 하다 웨스트라이프, 전람회까지 플레이하고는 더는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아 음악을 껐다.
여름 즈음, 올 해가 가기 전에 취미 발레 세계에서 극복할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깨부수어보기로 했었다.
- 알라스콩 폴드 브라에서 팔꿈치가 몸통 뒤로 넘어가지 않기 (O)
- 백 캄블레에서 배 내밀지 않고 배꼽 끌어올리기 (X, 배꼽을 끌어올리려고 하면 아직도 양쪽 허벅지 사이가 벌어진다.)
- 아라베스크 든 다리 90도, 발끝 wing 하기 (O, 그래도 아직은 선생님의 잔소리 피처링이 필요하다. '허벅지 들어요.' '발끝!' '무릎 떨어지잖아요!')
- 바 워크에서 만이라도 풀업, 서혜부 펴기 (X, 풀업은 영 감잡기 어려운 감 중의 감이다.)
- 사이드 데벨로페 2cm 올려보기 (O, 여름에 45도였는데 지금은 70도를 찍는다.)
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발레 글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가 1년이 되었고 내 삶에 발레를 담아 쓴 글을 차곡차곡 많이도 쌓았다. 발레가, 이것만을 주제로 쓰는 글이,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얻기에는 쉬운 대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나는 더 깊게 집중했고, 동시에 일상의 더 많은 구석구석을 발레에 투영하고자 했다.
하고 또 하고, 반복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든 건 아론 소킨과 발레가 유일하다. 현실에 부딪혀, 내 한계를 넘지 못해서, 부상으로 또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언젠가 발레를 추억으로 가슴 한편에 넣어둘 날이 올 텐데 그때 아쉽지 않도록 지금처럼 발레의 낭만에 대하여 기록해 보려고 한다.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해서 굴곡진 몸을, 발레에서는 철저하게 편평하게 만든다. 사방으로 납작한 몸을 길고 얇게 뻗어내며 만드는 동작으로 발레의 아름다운 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볼륨감 있는 몸에 현혹되어 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춤에 시선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발레에서는, 소위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추앙하는 가슴과 엉덩이를, '떼어 내면 좋을 투머치 액세서리'로 여겼던 것 같다.
'몸이 만들어내는 선, 발레의 아름다운 선'
레오타드, 스커트, 레그워머, 점프슈트 같은 액세서리를 마구 사들이며 맥시멀 리스트가 되고 있는 내가 선망하는 것은 아름다운 발레 선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진정 집중해야 하는 것은 내 몸이었다. 극복 리스트에 기록한 것 모두, 내 몸에 집중해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었음을 깨달았다.
내 손가락으로 두들겨 적은 글은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나를 이끈다. 이 나이에 발레라는 낭만을 품어도 될지, 그 끝을 모르고도 뛰어들었다. 이로써 나는 이미 세상 누구보다 낭만적인 여자가 된 셈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델의 노래처럼 나이 드는 것이 화나지만은 않고, 최백호의 노래처럼 서글프지만은 않으며, 유재하의 노래처럼 체념하지만은 않는다. 이렇게 한 해 더, 발레 할 수 있을 것 같은 깨달음이 나를 격동한다. 큰 울림과 낭만은 어울리지 않더라도 나의 발레는 비로소 더욱 낭만적인 순간이 되어가나 보다.
올해 한번 더 발레의 낭만을 열심히 쌓아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