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의 교훈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2)

by 홈PD


"세 번은 만나봐라."


마흔을 훌쩍 넘기도록 싱글 라이프를 고수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자식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부모님 입장에서 매우 큰 효도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내가 불효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대충 하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 늘 혼자 갑갑해하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세 번은 만나보라는 아버지 말씀에 충실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상대에게 애프터 신청을 해서 몇 번 더 보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 속에는 첫인상이 안 좋았던 대상은 몇 번을 더 보아도 비슷하더라는 나름의 경험이 들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녀가 소개팅 자리에서 몇 초 만에 상대의 호감/비호감 정도가 결정된다는 요즘의 세태를 고려해보면, 세 번'이나' 만나는 것은 시간낭비이자 돈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왜 '세 번을 만나보고' 결정하라고 하시는 걸까?




파리의 명물 '에펠탑'은 건립 초기에 시민들로부터 투박하고 천박하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한다.(에펠탑이 도시의 흉물로 천대받던 시절이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철거 위기까지 맞았던 에펠탑은 무선 전신 전화의 안테나로 이용되면서 어렵사리 위기를 넘기고, 한 해 두 해 명맥을 이어가더니 결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고 말았다. 아직도 에펠탑을 흉측하다고 여기는 파리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소 의외인 에펠탑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는 '에펠탑 효과'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했지만 대상에 대한 반복 노출이 거듭될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는 현상을 뜻하는 개념이다.


처음에는 낯섦에 거부감을 느꼈던 사물이나 사람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차츰 익숙해지고 결국에는 처음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제거되기 쉬워지는 것이다.


드라마 등에 PPL(Product placement advertisement) 광고를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PPL 제품이 한 번 두 번 반복 노출되면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해당 제품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물론 과하지 않게 물 흐르듯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TV에 등장하는 비호감 연예인을 자주 접하다 보면 처음에 가졌던 거부감을 더 이상 느끼게 되지 않는 현상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홈쇼핑 방송에 있어서도 자주 노출이 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는 상품이 많다. 특히 생소한 브랜드의 상품인 경우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론칭 방송 시에 미지근했던 고객들의 반응이 2회, 3회 방송 시에 뜨거워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첫 방송 시에 어느 정도의 반응이 있는 상품이어야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 방송에 고객의 반응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품은 2회, 3회 방송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판매실적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에펠탑이 아무리 초기에 흉물 취급을 받았다한들, 당시의 산업사회를 상징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내면에 지니고 있었기에 프랑스의 랜드마크가 된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대상의 낯섦에서 오는 거부감을 가진 상태로는 아무래도 그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그러한 거부감은 제거한 후 대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첫인상의 호감도는 단 몇 초 만에 결정될 수 있을지라도 그 대상의 내면까지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상대를 세 번 만나보라는 것도 그러한 뜻이었음에 틀림없다.

자주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친근감이 생기고, 친근감이 생기다 보면 대상을 사랑할 확률이 올라가나니, 답답한 것은 그저 어리석은 아들일 뿐이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을 따르기 전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애프터 신청을 한다고 해서 상대가 꼭 받아준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나 자신부터가 상대에게 세 번 만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는 아무래도 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에펠탑이 될지도 모르는데, 초기에 철거되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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