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거리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3)

by 홈PD

닿을 수 없는 너와의 거리

그만큼 외로운 이 거리

내 옆을 채우는 건 널 위한 빈자리


Vanilla Acoustic의 'Lonely Drive'라는 노래 중 일부이다. '리'라는 라임을 가지고 어쩌면 이렇게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노래를 그려냈는지 들을 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조금씩 멀어졌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느끼게 되는 상대와 나와의 거리는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를 능가하는 것만 같다. 어떻게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거리임을 깨닫고 좌절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하고 만다.


지나간 사랑이 늘 아련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 사랑이 닿을 수 없는 서로 간의 거리 그 어디쯤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심리적인 거리를 가지고 있다. 동일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서 시간적 혹은 사회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거나 판단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심리적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정도나 수준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심리를 설명해주는 이론이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 : CLT)'이다.


예를 들어 최근 개봉한 영화 중 하나를 보러 가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 영화를 이미 봤다는 친한 친구는 영화가 별로였다고 한 반면, 인터넷 감상평은 괜찮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이때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친구의 말보다는 인터넷에서 본 글이 더 신뢰가 가기 마련이다. 친구의 추천은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일반인들의 감상평은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가족이나 친구 등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운 사람의 말은 구체적이지만 부차적으로 이해하고, 안면이 없는 인터넷 누리꾼은 심리적으로 멀기 때문에 추상적이지만 목표지향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더 객관적인 정보로 생각하기 쉽다.

어떤 영화를 개봉할 때 인터넷 후기나 시사회 감상평, 평점 등을 적극 활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홈쇼핑을 포함한 여러 쇼핑채널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많고 많은 상품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를 때, 고객들은 보통 타인의 상품평을 참고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상품평 및 구매 후기가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고, 실제 구매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홈쇼핑 PD들이 사전에 고객들의 상품평을 꼼꼼히 살피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도움이 될만한 상품평을 선정함과 동시에, 고객들이 무엇을 구매의 주요인으로 삼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탓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는 상품의 홍수 속에서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객들에게는 타인의 상품평만큼이나 신뢰성을 주는 지표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친밀도가 높은 대상의 이야기가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아도 무시하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보.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아?” 할 때 무심코 "당신은 가만히 있어봐” 같은 말을 내뱉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에게는 가르쳐도 여자 친구나 와이프에게 운전은 못 가르친다'는 현상이나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내 자식 공부는 못 가르친다'는 현상들도 이런 심리적 거리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친분 없는 사람의 얘기가 더 객관적으로 들린다고 해서 친한 사람의 얘기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인 것 같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닐 텐데, 왜 우리는 종종 친밀한 사람을 소홀히 대하는 우를 범하는 것일까.


저마다 자신의 심리적 거리감을 조금만 더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노력이 '닿을 수 없는 너와의 거리'를 '닿을 수 있는 우리의 거리'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면 음울하게 비에 젖은 퇴근길 이 거리도 조금은 덜 외로워질 것만 같다.

이전 02화에펠탑의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