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과거나 미래로 가서 엄청난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간계의 암울한 미래 따위 관심 없고, 과거로 돌아가 다시 바로잡고 싶은 연애의 사건들도 없다. 그저 이발랄씨의 바람은 아가가 잠든 시간을 최대한 길게 늘이고 싶은 것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처럼, 잠시 자리를 비운 현실에서의 5분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 동안 이발랄씨는 천천히 점심밥을 먹고, 꼼꼼히 세수를 하고 싶다. 너무 소박한가? 그럼 이건 어떨까. 샤워를 말끔히 하고, 멋진 옷(=밥풀 자국 없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택시를 타고 나가 청담동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런치를 즐기고 오는 거다. 설거지를 걱정하며 허겁지겁 깨끗이 비우는 것은 ㄴㄴ. 마치 내일도 올 수 있는 사람처럼, 음식을 최대한 음미하고 조금씩 남기는 허세를 부리며 먹는 거다. 오늘은 바질향이 좀 강하네요, 그렇죠?
하지만 현실은 비빔면도 감지덕지다. 그저께도 이발랄씨는 우는 아가를 업고 면이 붇기 전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이래서 아가 볼 때는 면을 먹으면 안 되는데 후회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건 거짓말이라는 걸, 나이 마흔에 알았다. 아가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다. 아가는, 놀아주던 엄마가 딴짓을 하는 걸 보며 엄마가 그렇지 뭐- 하며 한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하, 들켰네.
조금이라도 빨리 재우기 위해,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아기를 재울 때마다 쪽쪽이를 물린다. 그리고 10kg가 넘는 아기를 둘러업고, 집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닌다. 아기가 마침내 쪽쪽이를 물고 만족스럽게 잠들면 그제야 이발랄씨는 아픈 허리를 바닥에 대고 죽은 듯 조용히 쉰다.
졸졸졸 우르릉 쾅쾅-
때아닌 소음에 이발랄씨는 움찔한다. 누구야? 애기가 깨면 어쩌려고! 아니 이건, 이발랄씨의 배에서 나는 소리다. 아침 육아를 피자 한 조각과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벤티로 버티며 하다 보니, 이발랄씨는 배가 너무너무 고픈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 이제 결정의 시간. 이발랄씨는 쉼을 포기하고 먹기를 택한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며 이발랄씨는 아가의
입에서 쪽쪽이를 슬며시 뺀다. 후회할걸 알면서도, 쪽쪽이에 의존하는 아가가 걱정스러운, 마음 약한 엄마다. 마침내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가려는데-
“으아아아앙! (내 쪽쪽이 어딨어!)”
다시 발걸음을 돌이키며 역시, 육아 한정 타임머신 개발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이발랄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