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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발랄 Jun 25. 2021

발랄한 여자의 일생, 여자의 가슴

열여덟, 남자 친구가가슴에 살포시 손을 대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2000년의 여름 무더운 밤 새벽 2시, 부모님께는 독서실 간다고 말하고 한강변에 김 모 군과 나온 이발랄(18)양의 가슴은 쿵쾅댔다. 대외적으로 얌전한 우등생이었던 이발랄양의 부모님은 이발랄양의 깨발랄한 과거를 아직도 모른다. 수줍게 손을 잡고 강변을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둘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김 모 군의 손이 이발랄양의 가슴 위로 조심스럽게 닿는 순간…


“안돼.”


이발랄양은 김 모 군의 손목을 단호하게 잡았다. 김 모 군은 키스를 하며 속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혀는 되고 가슴은 안 되는 건 뭔데… 아직 20세기를 살던 이발랄양은 어땠을까. 가슴을 허락하는 건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라고 새침하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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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 21년이 지났다. 그동안 이발랄양(aka. 나)은 뭘 했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서 존버하며 서른아홉이 되었고, 여러 가지 선택적인 그리고 비선택적인 방황 끝에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해서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헥헥) 시간은 날 산후조리원으로 데려왔고, 이곳에서 아직 욱신거리는 고관절을 문지르며 나는 때 아니게 20세기 한강변에 서있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가슴의 터치가 떨림이었던 소녀 이발랄의 시절을 말이다. 만져도 되나 안 되나 망설임 가득했던 그 가슴의 터치를.


아기를 낳으면서 맘카페에서 미리 알려준 출산 과정에서 겪게 되는 쇼킹한 일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아기를 낳는 날 아침 간호사가 사타구니 털을 민다거나 하는 그런 것.) 그런데 내가 미처 마음의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침마다 누군가가 와서 침대에 누워있는 내 가슴을 덥석덥석 만진다는 것이다!


“(만지작만지작) 젖이 좀 찼어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과 함께.


“아… 네?” 하는 나의 당황스러운 대답과는 상관없이,


“아직 안 찼네. 애기 난지 얼마 안돼서 그래요. 괜찮을 거예요.” 세상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아무런 일 아니라는 듯이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건 실례가 아닌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건 상대가 행위에 대한 인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고, 내 가슴을 만진 그녀는 다른 산모들을 돌보러 나가버렸다. 나만 홀로 남아 놀란 내 가슴을 쓸쓸히 여미고 있을 뿐이다. 이곳 산후조리원에서의 가슴은 여자의 가슴이 아니라, 엄마의 젖인 것이고, 언제든지 만져서 젖이 차있는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곳인 것이다. 가슴을 만지는 행위에는 당연히 어떠한 설렘도 없고, 그냥 건조한 확인 절차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12시간 된 밥솥을 열어서 밥이 아직 남았나, 하고 보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밥솥에 밥도 별로 없었다)


서른아홉 해 동안 여자의 가슴을 안고 살았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젖이라니요… 내 가슴을 젖이라고 부른 일이 있었나? 내 기억에는 없다. 옷가게에 가서 옷을 살 때에도, 심지어 브래지어를 사러 갔을 때에도 점원이 “고객님 젖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지 않았으니까.


내 가슴은 꽤 오랜 시간 동안 A컵이었다. 가슴은 뭔가 민감하고 비밀스러웠고, 브래지어의 A컵처럼 콤플렉스로 살짝 둘러진 그런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성장기에서는 다들 대놓고 티는 내지 않아도 가슴이 더 컸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슴이 큰 친구를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가슴이 커져서 외국인들이 클리비지라고 하는 가슴골을 갖고 싶었다. 허리는 잘록하고 가슴이 크면 옷발을 잘 받고, 왠지 근사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내 가슴은 드라마틱하게 커지지 않았다. 그래서 살이라도 찌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고 남들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임신 전까지는 나름의 날씬한 분위기를 가져가고자 했다. 마릴린 먼로와 같은 S라인이 될 수 없으니 오드리 헵번처럼 살이라도 찌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달까. (튼실한 다리 굵기론 그것도 불가.) 내 가슴사이즈가 나의 매력을 반감시키진 않는지 고민도 했었다. 나의 매력을 말해보라면, 근사한 가슴에 멋진 몸매라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유쾌하고 발랄한 성격과 쓸모없는 독서로 축적된 지적인 두뇌와 다소 공격적인 유머감각 정도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내 가슴에 반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내 가슴은 (이제 와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더 커지면 좋겠으면 싶은, 가끔 뽕브라나 살까 고민하게 되는 그런 인체의 부위였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내 젖은 어떨까? 내 젖은 아프게 붇고 있었다. 출산 후에 가슴은 돌덩이처럼 부었고, 열이 났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밤새 제왕절개 수술부위 통증과 젖몸살로 끙끙대던 나는 정말로 살기 위해 물어물어 같은 건물에 있던 가슴 마사지를 예약했다. 마사지를 받자 돌덩이 같았던 가슴이 서서히 풀려갔다. 돈 8만 원이 정말 아깝지 않았다. 내 인생에 정말 잘한 소비 10위 안에 넣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누워있는데, 무척 나른한 목소리를 지닌 마사지사는 젖꼭지를 꼬집으며 의미심장하게 소곤거렸다. “이건 엄마 꺼가 아니야, 아기 꺼지… 아기 밥통이지…” 먹을지 말지 및 먹을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아기라는 것이다. 이건 이제 작지만 소중한 나의 가슴이 아니라, 이제 아가의 젖이라는 것이다.


조리원 방에 앉아있자 전화벨이 울렸다. 아기를 보내도 되겠냐는 전화였다. 병원에서는 유리창에서만 대면하던 아기를 이제 본격적으로 품에 안을 시간이 온 것이다. 아기를 대면하는 기쁨도 잠시, 아기는 배가 고파서 입을 쩍쩍 벌렸다. 조리원 선생님이 아기를 안고 와서, 젖 물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수유쿠션에 아기를 눕히고, 등을 펴고, 아기와 엄마의 배꼽이 만나게 하고, 엄마의 유륜까지 아기가 덥석(!) 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하나하나 신경 쓰며 자세 잡기가 쉽지가 않다.


“꼭지만 물리면 아파요.”


자세를 잡기 위해 어느덧 내 가슴은 처음 만나는 이모뻘 되는 선생님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선생님은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기에게 내 젖을 물게 했다. 처음 만나는 촉감에 아기도, 나도 서먹했지만 아기는 곧 젖을 빨기 시작했다.


“다행이네요. 잘 빨아서.” 조리원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네요.” 나도 웃었다.


“엄마 유두가 모양이 좋아요.” 그리고는 역시나 순식간에 나가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내 유두는 언제 본거지? 유두가 좋다는 건 뭔가? 진짜 좋은 건가? 아니면 으레 하는 칭찬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젖을 빨고 있었다. 본능적이고 기계적인 움직임. 누군가 살기 위해 내 젖을 빨고 있었다. 낯설고, 기쁘고,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기는 내 젖이 어떻다 저떻다 평가하지도 않았고, 먹는 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가슴이 크고 작고는 관심이 없었다. 열심히 젖을 빨고는 녹초가 되어서 잠이 들었다.


이발랄씨는 젖을 다 먹은 아기를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 문득 보니 가슴이 풀어헤쳐진 채였다. 유두가 좋다는 얘기가 그녀의 귀에 울렸다. 가슴이 작다는 얘긴 많이 들었어도 유두가 좋다는 얘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서른아홉 해 만에 알게 된 사실. 그렇게 이발랄양의 풋풋했던 가슴은 아가의 젖이 되었고, 그녀는 가끔 자신의 유두를 보며 가끔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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