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

시간은 언제나 정의로웠다

by 최진영

"아 공부할게 많이 남았다고! 좀 가만히 두라고!!"


밤이 늦었으니 그만 자라는 엄마말에 소리부터 지르며 짜증 내던 고딩이었다. 공부하는 게 뭔 벼슬도 아닌데.. 그땐 그랬다. 그래도 엄마는 공부 잘하는 딸이 자랑스러웠고 귀했다.


행정고시 준비를 했지만 번번이 떨어졌고 엄마의 천재딸은 기대와는 달리 학원강사가 되었다. 똑똑하기만 하던 딸은 돈을 잘 관리하지 못했고, 엄마는 그저 하고 싶은 거 다하게 해주고 싶어서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결혼 적령기를 넘었는데도 결혼할 상대는 나타나지 않았고 어쩌다 보니 상전처럼 모시던 딸이 가장 늦게까지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내가 제일 불편한 너랑 이렇게 제일 오래 살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니?" 하시면서 농담반 진담반 웃으면서 이야기하신다.

나이를 먹으면서 언니와 동생이 다 시집을 가고 엄마아빠와 살다 보니 두 분이 안 계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고, 그제야 엄마 아빠의 건강이 걱정되고 더 오래 행복하게 사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늦게 출근하는 딸은 아침이면 엄마랑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수다를 떨었고 퇴근하면 학원이야기나 그날의 이야기들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그래. 딸 하나 남은 거 이렇게 그냥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시집 못 간 딸이 늘 걱정이었던 엄마가 어느 새해 아침에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이제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엄마랑 살자고.. 그래도 될 것 같다고.


그해 기적같이 신랑이 나타났고 5월에 결혼을 했다.


" 마지막으로 너까지 가고 나면 엄마가 너무 우울하고 허전할 것 같으니 매주 와서 하루 자고 가면 안 될까?"


그렇게 토요일마다 퇴근하고 친정에 가서 하루 자고 오기를 1년 정도.. 그 후에는 주말마다 가서 놀고 집에 온다. 제일 정 없고 이기적인 줄 알았던 동생이 매주 방문한다니 언니는 제부가 착하다고 이제야 동생이 철이 드나 보다고 뼈 있는 칭찬을 던진다.


꽃피는 봄이 오니 이번 주말엔 엄마 아빠랑 꽃구경 가자고 할까 생각한다.


내가 늦게 결혼하며 맘 졸인 시간들은 어쩌면 그만큼 부모님께 내가 돌려드려야 할 시간들이 많아서였을까? 엄마가 이제 같이 살아도 좋겠다 생각할 만큼 편해진 딸이 되고서야 신랑을 만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던 것 같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엄마아빠와 더 좋은 곳 다니면서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래서 철들지 않은 척 연기라도 해보려고 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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