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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Hyunjung Choi Mar 22. 2021

소리치고 연대하라

아시안 차별 반대 시위 현장에서 외친 목소리

연단에 선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한 명 한 명 또박또박. 


순정 팍

현정 킴

용애 유

순차 킴

델라이나 애슐리 야은

다오유 펑

폴 안드레 미쉘스.


지난 16일, 조지아 애틀랜타 한복판에서 머리와 가슴에 정조준된 총을 맞고 숨진 이들의 이름이었다.  그 테러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이들이 1500킬로 떨어진 뉴욕 맨해튼에서도 모여 그 이름을 함께 외친 것이다. 


나와 같은 이름, 또래, 얼굴...


사고 소식을 들은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뉴스에 눈을 떼지 못했고 매시간 업데이트되는 소식들에 분노와 슬픔이 교차되는 며칠이었다. 금요일 아침, 숨진 한인 한 명의 신원을 알게 됐다. 팔로우하던 흑인 인권 운동가 사이트에서였다. 


김현정, 51세, 두 아들을 키우던 싱글맘. 나와 같은 이름, 비슷한 연배의 익숙한 얼굴을 보노라니 사건의 실체가 더 바짝 다가온다. 아시아인, 여성이라는 2중의 마이너리티로 미국 땅에 사는 이에게 가장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똑같은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 맨해튼 유니언 스케어를 가득 채웠다. 사고 발생 후 맨해튼 중심가에 항의 집회가 열린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3월 19일 금요일 오후 6시, 젊음과 사랑이 넘치던 유니온 광장엔 팻말과 촛불과 꽃을 든 이들로 가득 찼다.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가슴이 무너지더라고요.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어서 여기 나왔습니다."


맨해튼에 사는 변호사 애나는 남편과 함께 시위 내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영어가 더 편한 한국인인 그녀는 옷장에 고이 간직하던 한복을 꺼내 입고 오늘 시위에 참가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정체성과 분노를 표하고 싶었다. 아내 옆에 선 남편도 함께 분노하며 언론에 대해 원망스러워했다.


"흑인 인권 시위와 비교해 주목도가 덜한 것 같아 슬픕니다. 아내만큼 저도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나도 그 언론을 통해 범인이 콜드 플레이를 좋아하던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부부는 3시간 넘게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젠장 우리는 여기 살아야 되거든>


베트남계인 지미는 퇴근 후 시위에 합류했다. 젊은 아시안으로 그가 평소 느끼던 분노를 푯말에 담았다. 보드 피플이었던 부모님이 정착한 곳은 캐나다였고 지미는 이 곳 맨해튼에서 직장을 다니는 중이다. 미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젊은 아시아 사람의 마음을 이번 테러가 흔들었다고 생각한다. 


워싱턴 하이츠에 사는 코비와 잭은 형제다. 흑인과 한국인의 피가 반반씩 흐르고 있는 그들은 지난해 흑인 인권 시위에 빠지지 않고 싸웠던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오늘 다시 아시안 증오를 멈추라는 시위에 나왔다.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서 약한 인종을 향한 부당한 일이 다시 또 벌어졌기에 기꺼이 출동한 것.

"지난 흑인 인권 시위에서 봤듯이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이런 비극은 계속 반복될 거야." 

형 코비의 말에 동생 잭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섹스 중독자라는 경찰의 발언


<그걸 증오범죄라고 해>


들고 온 플래카드의 의미를 물어보는데 제니퍼의 목소리가 떨린다. 8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백인 청년을 애틀란타 경찰이 '섹스 중독' 운운한 말을 되내며 울먹한다. 연쇄 살인 사건의 수사를 담당해야 할 경찰이 사건 당일부터 살인범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어느 중독자도 8명의 사람을 죽이지 않아. 범인은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하고 있고 경찰은 범인 입장에서 사건을 보고 있다는 증거야."


제니퍼는 죽은 이들에 대한 수사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놓지 않고 지켜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니퍼처럼 No Asian Hate 시위는 아시아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파워플했다. 브루클린에 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고등학교 선생님들 5명이 함께 소리치고 있었다. 모두 백인이었지만 아시안을 타깃으로 한 증오 범죄의 심각성에 공감해서 나왔다고 했다.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라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4년이 우리 사회에 숨어있던 증오와 혐오라는 잡초에 거름을 주었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연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kung flu, Wuhan virus, Chinese virus'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무능을 아시아에 전가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 비극이 시작되었다 싶어."


기하학을 가르치는 교사도 사라 선생님의 말을 잇는다.


"내 학생 중에도 아시아인들이 있는데 그들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든 미국인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해."


선생님들은 추운 날씨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미국인에 대한 테러'에 대해 연대했다. 


교사들 얘기처럼 NYPD는 지난 1년 간 뉴욕 지역의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190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아시안에 대한 폭력을 신고받는 사이트인 StopAAPIHate엔 작년 한 해 380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한다. 하지만 신분상, 언어적, 문화적 이유로 리포트를 주저하는 아시아인의 성향까지 감안하면 몇 배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4살 에밀리와 함께 나온 가족들은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어>란 사인을 만들어 왔다. 그 사인의 뒤쪽엔 <침묵은 폭력>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참고 모른 척, 못 본 척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는 뜻이다. <아시안들도 똑같은 사람이야> 말과 함께 BTS 7명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을 보고 혹시 팬이냐고 물으니 웃으며 대답한다.

"그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라고. bts는 사진으로나마 유니온 광장 집회에 등장해 힘을 주었다.


이 날 내가 본 가장 파워풀한 사인은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의 얘기였다. 


<아메리카키카(AMERIKKKA)의 치명적인 세 개의 기둥

백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취약성, 여성 혐오, 기독교 근본주의>

 

범인은 남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총을 좋아했으며 왜곡된 여성관을 가진이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난 21일 일요일까지 증오범죄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21살 백인 청년이 천연덕스럽게 마사지를 받고 준비한 총으로 8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사건에 대해 혼란해하는 이들에게 주는 대답 같은 내용이었다. 


"처음 표출하는 분노, 두려움"


지난 주말 뉴욕, 애틀란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아시안 증오 반대가 집회가 열렸다. 펜실베이니아 집회에 등장한 <산드라 오>는 확성기를 잡고 시위대들에게 외쳤다. 


"우리 지역 사회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겪는 두려움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꺼이 경청해 주는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애틀랜타에서 나고 자란 Kpop 가수 <에릭 남>은 Time에 <당신이 애틀랜타 반 아시아 폭력에 놀랐다면, 이젠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한국 과자로 교사로부터 차별받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백하며 성문제로 축소하려는 애틀랜타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에 대해 강하게 질타한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을 강조한다. 


19일 유니온 스케어 집회엔 드 블라지오 뉴욕시장과 척 슈머 뉴욕 상원의원을 비롯해 수십 명의 인사들이 연설했다. 그중 가장 깊었던 대답은 중년의 아시아 여성의 투박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나서지 말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참으라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젠 소리쳐야 한다는 것을요. 우리는 주장하고 당당해져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같이 해주십시오."


광장에 모인 아시아인 흑인 백인 모두 함께 소리쳤다. 아시안 차별을 멈추라고.


















"그것은 진실 없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진짜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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