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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정 Hyunjung Choi Nov 20. 2024

[단편소설] 단골 세탁소

오늘은 통 손님이 없다. 30분 전에 길을 묻는 사람 하나가 들어왔던 것 외엔 몇 벌의 셔츠나 바지를 한 아름 들고 들어오는 손님은 하나도 없다. 화요일이란 시간이 그런 거 같다. 어젠 주말 외출을 마치고 벗어놓은 아웃도어 쟈켓과 신발을 맡기는 사람들이 어젠 이어졌는데 하루 지난 오늘은 딱 끊겼다. 


점심 후 자꾸 미끄러지는 눈꺼풀에 힘을 주고 가게 안쪽 옷걸이 쪽으로 들어가 본다. 일주일이 넘게 가져가지 않는 옷들은 자꾸 뒤로 밀쳐져 여기 한쪽 구석에 쌓이게 된다. 새로 생긴 세탁소는 직접 수거와 배달까지 해서 이런 공간 따위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벌써 15년이 넘은 우리 가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길가가 아니다 보니 오래된 단골들이 출퇴근하며 들고 가면 된다. 대신 다른 가게보다 1시간 빨리 열고 1시간 늦게 닫는다는 특징은 있다. 


'어, 이 양복이 왜 아직 여기 있지?'


아마도 올봄에 맡겼던 것 같은 양모 외투와 새끈 한 하늘색 스키복이 사이에 드라이를 마친 감청색 슈트 한벌이 눈에 띄었다. 일 년에 세네 번은 들리니 단골이라 하기는 뭐 하지만 그래도 늘 우리 세탁소를 이용하는 청년의 옷이다. 그러니까 이 옷을 맡긴 게 한 달은 된 것 같다. 원하던 은행에 취직이 됐다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누르며 슈트를 맡기던 기억이 난다. 출근길에 입으려나보다 하고 다림질에 더 힘을 줬는데 아직도 안 찾아가다니. 


셔츠 가슴에 매달린 이름표에 적혀있는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꽤 오랫동안 벨소리가 울린다. 곧 앤서링 머신으로 넘어간다는 기계음이 나오겠다 하는데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중년의 여자다. 


"앤디 전화 아닌가요? 여기 세탁소인데 이 번호가 적혀 있네요."

나는 황급히 변명을 하며 번호 하나를 잘못 눌렀나 보다 생각하며 바로 끊으려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황급히 대답한다.

"세탁소라고요? 네 앤디 전화 맞아요. 어디 세탁소죠?"

아 아들이 출장을 갔나 보군. 엄마가 찾아가 주려는 건 아니겠지 했지만 나는 늘 머릿속에 들어있는 주소를 불렀다. 


"253 서더랜드 스트리트, 저지시티, 뉴저지 07304. 워싱턴 스트리트 파네라 뒤쪽 골목입니다." 


곧 올 것 같은 분위기라 그 감색 슈트는 앞쪽 옷걸이에 옮겨 걸었다. 그리고 다시 몇 개의 먼지 쌓인 옷들을 한참 정리하고 있는데 문 열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앤디 옷 찾으러 왔어요."


나보다 다섯 살쯤 많아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들어선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동자도 불안하다. 봄기운이 완연한데도 아직 겨울 외투를 입고 있는데 보풀이 일어있고 낡은 옷단의 하얀 실이 드러나 있다. 


"아 빨리 오셨네. 이거예요. 가격은 $15."


여성은 급히 지갑을 뒤져 10달러 하나와 5달러를 찾아 건넨다. 난 돈을 받아 금고에 철컹 소리 나게 넣고는 번호표만 떼서 비닐에 쌓인 슈트를 크게 한 번 접어 건넸다. 여자는 비닐소리가 반딱이는 슈트를 성당 성체를 받는 신자처럼 정성스럽게 받아 든다. 그리고는 세탁소를 나가는 대신 얼굴에 갖다 대고 눈을 감는다. 나는 낯선 여자의 동작을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여자는 슈트를 고이 접어 꼭 껴안고 목례를 한다. 나도 목례를. 나가려던 여자가 주춤하더니 숨 한 번 크게 쉬고는 내게 다시 인사를 건넨다.


"고마워요. 앤디는 한 달 전 교통사고로 숨졌어요. 직장 근처로 간다고 모든 물건을 버려서 유품이 없어 더 힘들었어요. 이 양복이 앤디에겐 마지막 유품 같아요."


때릉때릉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여자는 세탁소를 나갔다. 감청색 양복을 보물처럼 꼭 끌어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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