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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n 21. 2023

우리 엄마, 오늘 경찰서 가요.

경찰서에 출근하는 엄마, 범죄 심리사 엄마가 흔히 겪는 상황




아이가 서너 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오후 4시, 여느 때처럼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아이 손을 맞잡고 현관으로 나오는 담임선생님의 안색이 평소와 사뭇 다르다. 아이가 신발장 근처에서 혼자 낑낑대며 신발을 신는 동안, 내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담임선생님이 마치 중요한 비밀이라도 건네듯 몹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게다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주저하는 모양새였다. 


“어머님, 실례지만 그..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1초 정도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우리 집에?


“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오늘 아이한테 무슨 일 있었나요?”


지나치게 평범한 하루였다. 혹 아이가 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실은 어제 할머님이 아이 하원 시켜 주셨잖아요. 아이 말이, 엄마가 경찰서 가야 되는 날이라고. 그래서 오늘은 할머니가 오는 거라고 해서...”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그제야 어린이집 입구에서부터 불안해 보였던 선생님의 표정과 눈동자의 의미를 이해할 것도 같았다. 웃음을 억지로 참는 내 얼굴에 오히려 선생님이 물음표 가득한 얼굴을 던진다. 처음이 아니다, 이런 오해를 받는 일.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안심하라는 듯, 편안한 목소리로 익숙한 답을 내민다. 


“아, 경찰서는 일을 하러 간 거예요. 아이들 면담할 일이 있어서요.”


대답을 듣자마자 선생님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오른다. 평소 내가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다. 경찰서에서 전공을 살려서 할 일이 있겠거니, 어슴푸레 연결점을 찾아내신 듯했다. 


당시 아이는 어렸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여러 번 설명을 해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단순히 엄마가 오늘 가는 곳이 학교인지, 경찰서인지만을 인지할 뿐이었다. (가끔은 내가 경찰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제 딴에는 오늘 엄마가 가는 곳이 경찰서라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아무 맥락 없이 그 말만 전해 듣는 입장에서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응? 당황하고 놀라는 일이 잦았다. 그렇지 않은가. 보통 경찰서는 무슨 일을 저질렀거나,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찾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살면서 경찰서는 어떤 이유에서건 아예 갈 일이 없는 편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 날처럼 아이가 끼어들지 않더라도 이런 식의 시선을 받거나 오해를 풀어야 하는 상황들은 허다했다. 가깝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설명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께 했던 것처럼 최대한 심플하게 답을 하는 편이다. 굳이 ‘저는 범죄 심리사입니다.’라고 설명하지는 않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몹시도 낯선 직업, 범죄 심리사라는 명칭 때문에 오히려 더 오해가 커지는 상황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럼 프로 파일러냐고 되묻기도 하고, 아니면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로 시작하는 끝없는 질문 공세가 이어진다. (당연한 답이지만 범죄 심리사는 프로 파일러가 아니다.)


2010년, 범죄 심리사 1급 수련생 신분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범죄 심리사 1급이 되었다. 수련기간까지 합치면 10년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 일을 이어왔다. 사실 범죄 심리사에 대해서는 심리학과 학생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요즘은 강의실에서 관련 주제를 다룰 때, 넌지시 학생들에게 범죄 심리사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전달하기도 한다. 그럼 관심이 있는 몇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또 그 중에 몇은 실제로 범죄 심리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도전을 하기도 한다. 


심리학과 학생들에게도 낯선 이 직업은 일반 대중에게는 당연히 생경한 직업일 터. 한 편으로는 이 직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음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곧 적어도 당신 혹은 당신의 주변인이 어떤 연유에서건 경찰서에서 우리를 만날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범죄 심리사는 한국심리학회 산하 학회인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에 소속되어 있다. 학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다음과 같은 소개 글이 나온다. 


[범죄심리사라 함은 한국심리학회와 그 산하 학회의 회원으로서, 한국심리학회가 인정하는 법 및 범죄심리 관련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소정의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현장실습과 수련을 거친 후 한국심리학회에서 그 자격을 인정한 자]


안다. 소개글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좀 더 실무적인 차원으로 접근하면 쉬울 지도 모르겠다. 범죄 심리사는 경찰서에서 실시하는 전문가 참여제의 주요 인력이다. 경찰서에 입건되는 많은 청소년 범죄자들 중 제각기 나름의 이유로 단순 조사를 넘어 보다 심도 있는 면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청소년들은 전문가 참여제에 투입된다. 더 쉽게 말하자면, 범죄 심리사는 경찰서에 입건된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심리 검사와 면담을 통해 해당 비행 청소년이 재비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판단한다. 판단한 내용을 정해진 양식에 따라 보고서로 작성한 뒤 경찰 측에 제공한다. 우리가 제공한 재비행 위험 예측 보고서는 비행 청소년이 검찰로 송치되거나 혹은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되었을 때 중요한 참고 자료 중 하나가 된다. 재비행 위험성만 판단하면 되겠거니, 단순하게만 받아들이기에는 한 편의 보고서에 꽤 많은 책임감이 뒤따른다. 






그렇다. 경찰서에 간 내가 하는 일은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이다. 지난 10여 년 간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 모든 얼굴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많은 아이들이 당면한 복잡하고 불편한 현실들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고 짙은 발자국을 남겼다. 처음 범죄 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할 때만 해도 이 일을 이렇게까지 오래 할 줄은 몰랐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학생이었던 나는 박사 수료생이 되었고, 대학에서 시간 강사 일을 하게 되었으며,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양육하다 보니 마주하게 되는 비행 청소년들에게 이전과는 달리, 조금 더 관심 어린 시선으로 다가가게 된다. 


비행 청소년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 아이들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모습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일치하지 않는 모습들이 더 많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대부분의 비행 청소년들에게는 나름의 상처들이 쌓여 있다는 것. 물론 그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이 저지른 죄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곧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퍽 안타까운 순간들이 많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약속해 줄 수 있지?" 평생, 다시는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자는 약속으로 이별을 맞는다. 비행 청소년을 면담하는 범죄 심리사인 나와는 결코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들의 미래가 보다 밝기를 바라는 뜨거운 응원이 실린 인사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 오늘 경찰서에 가요. 라는 말로 많은 이들을 당황시켰던 내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의 말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엄마가 경찰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엄마가 경찰서에 가면, 범죄를 저질러 잡혀 온 형이나 누나를 만나 중요한 대화를 나눈다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게 되었다. 여전히 '범죄 심리사'라는 명칭은 입에 착 붙지 않는지 우물우물거리다가 말을 돌리곤 한다. 그래도 좋다. 내 아이가 나의 직업을 인정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참 멋있는 일이라고 여기며 반짝이는 두 눈으로 말하는 그 모든 순간에 감사한다.


아이 말이 맞다. 나는, 경찰서에 가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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