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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Oct 21. 2024

온 마음 다 해 캣키스

너와 나의 눈이 마주할 때


눈을 맞춘다는 건 뭘까. 뜨거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서로의 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아무 말도 필요 없다. 둘만 아는 공간 속 다정하고 끈적한 눈길이 얽힌다. 친밀한 응시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지도 모른다. 밀접한 관계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눈의 대화,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감정들을 끌어낼 수 있느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확고하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혹시 몰라 첨언하자면 실제 그러한 사실들을 확인한 연구도 있다.)


비언어적 단서 중에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바로 '눈'이다. 때문에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을 특별히 애정한다.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 찰나의 순간 마주 닿은 응시가 길어 올리는 마음들을 믿는다. 무수한 일상 속에서도 그대들을 향한 나의 눈 맞춤은 계속된다. 다만 부러 기교 부리듯 눈을 맞추기 위해 애쓰지는 않는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코와 입으로 숨을 쉬는 것처럼 몹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내가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맞추기 위해 애써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는 때가 있다. 

바로 경찰서에서 만난 아이들 앞에서다.







낯선 사람이 보내오는 시선 앞에 아이들은 비교적 솔직한 반응들을 보인다. 처음부터 또렷하게 눈을 맞춰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눈이 마주칠 새라 다급히 시선을 피하는 아이들도 있다. 죄 지은 사람마냥 내 눈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아이들도 있고, 어딘지 모를 내 뒤편 허공만을 주시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뿐이랴. 2시간이 넘는 면담 시간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우리 눈 한 번만 마주볼까?' 하며 억지로 내가 바닥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어야만 겨우 한 번 눈 맞춤을 할 수 있는 아이도 있다. 물론 안다. 이렇게까지 눈 맞춤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눈 맞춤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시선이 상당히 불안정했다] 등으로 면담 태도를 기록하면 그만이고, 굳이 눈을 맞추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내가 묻는 질문들에 답을 할 테니까. (준비된 여러 질문에 답을 해야만 면담이 끝난다.)


그럼에도 눈 맞춤으로 관계를 시작하려는 것은 아이와 '마음'으로 마주하고 싶어서다. 표면적으로는 내 앞에 앉은 아이의 새카만 눈을 응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그 고유한 눈망울 너머의 것들을 만나는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눈을 바라본다. '나는 지금 너의 곁에 있어.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 다정한 눈길에 이유 없는, 무조건적인 믿음들을 실어 보낸다. 처음 만난 고양이에게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며 캣키스로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지그시 마음을 건넨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2시간이 아이의 하루 아니 반나절이라도 포근히 덥힐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 이 세상에 너의 눈을 이렇게 올곧게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소한 사실이 아이의 미래를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지난 10년 간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켜켜이 쌓인 기록들을 들추면 유일무이한 아이들이 한명 한명 반짝이며 빛난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추억이 된 아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길어올릴 수 있는 것은 단연 '눈'이다. 다른 모든 것은 시간에 묻혀 흐려졌어도 올곧게 마주했던 그 눈망울들만큼은 방금 전 헤어진 것처럼 또렷하고 또 선명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기만의 세계로 숨고 싶어했던 아이,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고는 있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잔뜩 화가 나 있었던 아이,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뿜어져 나와 끝내 엉엉 목 놓아 울던 아이, 반듯한 자세로 앉아 정갈하게 나를 바라봐주던 아이,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운동 틱 증상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지더라도 끝내 눈맞춤을 포기하지 않던 아이, 장난스러움 가득한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를 내내 탐색하던 아이, 멍하니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할 때가 많았어도 나의 채근에 수줍게 웃으며 눈망울을 보여주던 아이 ... 모든 아이들은 그저 그 존재 자체로 빛났다. 나와 눈을 맞춘 모든 아이들은 내가 건네는 마음을 참 잘 담아내 주었다. 친밀한 응시가 오가는 동안 꼭 해야만 하는 질문과 답 말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과 마음이 오갔다. 아이들을 둘러싼 알 같은 세계가 오롯이 내게 다가온다. 파르르 떨리기도 하고 뭉근하게 늘어지기도 하는 눈망울들은 그 무엇보다 솔직하고 아름답다. 


온 마음 다해 캣 키스.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한 눈길을 보낸다.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꼭 필요한 과정들이 아니어도, 비교적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해도 꼭 친밀한 응시를 완성한다. 아이들 앞에서 유독 지독히 꽃피우는 나만의 이유 있는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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