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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Nov 20. 2023

코로나, 목욕탕, 그리고 너

코로나, 내게서 빼앗아 간 것과 오롯이 남긴 것




2019년 11월, 중국에서 새로운 바이러스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제대로 인지한 것은 그 해 12월 말이었다. 12월생인 아이의 세 번째 생일을 맞아 따뜻한 나라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나를 위협하기는커녕 머릿속에 옳은 자리 하나 내어줄 필요조차 없는 작고 사소한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우리가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의 자유가 당연했다. 2020년, 해가 바뀌고 점차 상황도 급변해갔다. 엄청난 위용을 펼치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코로나는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고, 이내 우리의 일상도 잠식했다. 아이가 네 살이 되던 해였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감염자들의 이동 경로 전체가 공개되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어도 주변에서는 누구의 경로인 지 쉽게 알아냈다. 신상정보 공개에 가까웠다.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 가까이 지내던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질병 하나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었다. 마스크 대란이 이어졌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를 집 안으로 활동 반경을 줄이기도 했다. 기나긴 가정보육이 이어졌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제대로 바이러스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보다 온라인 상에서 네모난 화면 속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익숙해졌다. 마스크 없이 밖을 나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람 얼굴을 그릴 때, 입을 그리는 대신 마스크를 그리는 아이들도 생겼다.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로 나뉘었다. 두려움을 안은 채 1차, 2차, 그리고 3차 백신 접종을 받았다. 백신 접종과는 별개로 2022년 10월, 우리 가족은 모두 차례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처음 14일 격리를 했던 감염자들에 비해 일주일 격리만 하면 되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히 여겼다. 2023년 4월, 우리 가족은 다시 2차 감염에 걸렸다. 나와 아이는 처음보다 훨씬 더 아팠고, 남편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그 사이 또 정책이 많이 바뀌어있었다. 격리 의무가 사라졌고, 우리에게 안내된 종이에는 ‘5일 간 격리 권고’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2023년 올 해 겨울, 고열과 기침이 이어지면 독감으로 분류되는 환자들이 더 많아졌다. 코로나보다 독감을 더 경계하고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중간에 여러 번 변종을 만들어내고 2차, 3차 감염자를 양산시키며 끝없이 행보를 이어가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어쩐지 급격히 꺾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약 3년 만에 일상 속 평범한 감기 바이러스 중 하나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했을 지난 3년을 그려본다. 각자 이야기 보따리 하나씩 들고 와 안주거리로 풀어내면, 3일 밤낮 쉬지 않고 기나긴 파티를 이어갈 수 있을것만 같다.      







2022년, 위드 코로나(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을 위해 실시해 온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적으로 완화하여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정책)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난 뒤, 우리 가족이 한참 만에 용기 내어 방문한 곳이 있다. 바로 “목욕탕”이다. 마스크 없이 바깥을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던 그 때, 많은 공공장소들이 한산해졌는데, 목욕탕도 그 장소들 중 하나였다.      


2년 만의 목욕탕 방문은 출발 전부터 어색하고 낯선 외출이었다. 짐을 넣어 갈 목욕 가방부터 다시 찾아야했다. 창고에서 먼지가 소복이 쌓인 목욕 가방 두 개를 찾았다. 초록색과 분홍색,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쿠리 형태에 손잡이가 달린 목욕 가방이었다. 한 때는 목욕탕 가방이기도 했고, 또 한 때는 수영장 바구니이기도 했던 그 가방 말이다. 샤워기로 구석구석 묵은 먼지를 씻어내고 탈탈 물기를 털어냈다. 늘 구비되어 있던 작은 크기의 목욕 준비물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집에서 쓰던 커다란 용기의 위생용품들을 그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몰라 서랍 안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일회용 위생용품들까지 긁어모아 세면대 근처에 늘어놓고는 짐을 꾸릴 준비를 했다.     


“엄마, 이건 어디 넣어?”     


목욕탕에서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을 양 손 가득 챙겨온 아이가 나를 가만 올려다보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초록색 바구니를 내밀며 이 곳에 넣으라고 일러주었다. 신난 표정으로 장난감을 톡, 던지듯 넣고 거실로 달려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데 마음속에 무언가가 탁, 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무겁고 탁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그 자리에서 목욕 준비를 하다 말고 말없이 두 개로 나뉜 바구니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때까지도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코로나가 빼앗아 간 일상이 하나 더 있었다.


세면대에 늘어놓았던 준비물들을 다시 분류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쓰던 투박하지만 가득 채워진 성인용 위생용품들은 분홍색 바구니에 모조리 우겨넣고, 보드라운 샤워볼과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는 탑투토 워시를 초록색 바구니에 담았다. 완성하고 보니 장난감의 지분이 더 많은 바구니였다. 목욕탕 갈 생각에 잔뜩 설레어 아빠와 수다를 떠는 내 아이는 6살, 남자아이였다. 이상하게 슬픈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겨우 준비한 바구니를 들고 도착한 목욕탕 입구. 한참의 실랑이 끝에 - 남편과 아이는 한 시간을 불렀고, 나는 두 시간을 외쳤더랬다. - 한 시간 삼십 분 뒤에 입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협상한 우리는 이내 헤어졌다. 내 손에는 단촐한 분홍색 바구니 하나만이, 남편의 손에는 초록색 바구니와 아이의 손이 함께였다.      







홀로 여탕에 들어섰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방문한다는 설렘과 기쁨은 애저녁에 끝난 지 오래였다. 바구니에 물품을 나누어 담던 그 순간 나는 코로나가 소리 소문 없이 몰래 가져간 나의 진짜 기쁨을 알아채버렸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전, 세 살이던 아이는 늘 나와 함께 목욕탕을 찾았었다. 목욕탕에 비치된 커다란 대야에 작은 엉덩이가 퐁당 다 들어가던 시절부터 미지근한 탕에서 제법 오랜 시간 물장구를 칠 수 있던 시절까지 나와 아이에게 목욕탕은 일상 속 포근한 데이트 장소였다. 물론 남자 아이니까 언젠가는 내가 아닌 남편과 함께 씻어야 할 때가 올 거라는 생각은 늘 했었다. 다만 우리의 그 데이트가 조금 더 오래 지속될 줄 알았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미래가 마디점프 하듯 훌쩍 눈앞에 다가온 기분이었다. 옷도 벗지 않고 멍하니 탈의실 평상에 앉아 목욕탕을 방문한 모녀를 바라보았다. 정신없고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와의 목욕이 새삼스럽게 달리 보이는 순간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탈의를 했다. 기분을 전환해보려 호기롭게 달달한 냉커피도 시켰다. 목욕탕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한참을 탕 안에서 몸을 불린 것 같은데 겨우 10분이 지나 있었다. 온 몸을 구석구석, 그것도 여러 번 씻어낸 것 같은데 겨우 30분이 지나있었다. 두 시간은 무슨 베짱으로 불렀던 건가, 헛웃음이 났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 지루해졌다. 더운 공기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얼른 몸을 헹구어내고 밖으로 나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말렸다. 다른 이들이 지켜보기에는 아마 몹시도 느리고 여유 있는 몸짓이었을 터. 그럼에도 약속한 한 시간 삼십분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얼음만 달그락거리는 냉커피를 마지막으로 흡입하고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SNS를 이리저리 기웃거렸지만 온통 신경은 시계로 가 있었다.      








시간을 겨우 채우고 밖으로 서둘러 나왔는데, 만나기로 한 쇼파에 남편과 아이가 없었다.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응답이 없었다. 기다림에 대한 짜증보다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 쯤, 저 멀리 2층 계단 위에서부터 아이의 재잘거림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뽀얗고 발그레한 얼굴의 남편과 아이가 보였다.      


“엄마! 두 시간 해도 될 뻔 했어!”     


잔뜩 흥분한 아이의 첫 마디에 김이 샜다. 막상 들어가보니 시간이 넘쳐 흘렀다고 말 할 참이었는데, 남편과 아이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낸 듯 했다. 남편은 내게 앞으로 좀 더 여유있게 씻고 나와도 되겠다고, 목욕탕에서 아이가 너무 잘 논다고, 두 시간은 거뜬하겠다며 배려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거들었다. 괜한 자존심에 솔직한 그 날의 심정은 꺼내지 못하고, 잘 됐다며 반겼지만 사실 나는 그 날 몹시도 외롭고 또 외로웠다.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운, 퍽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 사이 시간은 더 많이 흘렀다. 그 날 이후로 우리 가족의 목욕탕 방문은 계속되었다. 일본 여행에서도 나는 홀로 온천을, 남편은 아이와 함께 정신없는 온천을 경험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아이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일본 온천에서는 분명 아이가 나와 함께였고, 그 때 나는 조금 그 시간을 불평하고 힘들어했던 것도 같은데, 홀로 만끽하는 온천은 고요하고 쓸쓸했다. 주말, 특별히 할 일이 없거나 단골 목욕탕 근처에서 일정이 마무리되는 날이면 우리는 목욕탕을 자주 찾는다. 목욕탕에 가는 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평화롭고 또 그만큼 조금 더 외롭다. 아직도 나는 코로나가 앗아간 그 시간들로부터 온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듯 하다. 유유자적한 그 시간이 편안하기도, 또 어색하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어릴 때를 제외하면 나는 평생 외톨이 목욕탕 손님이었는데, 아이 덕에 외톨이 역할을 면해 본 그 짧은 경험이 생각보다 강렬했다. 번잡하고 정신없기만 했던 아이와의 목욕이었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 더는 그런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크나큰 상실감이 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아이가 훌쩍 커버린 지금, 다시 외톨이 목욕탕 손님이 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외롭다.       








다음에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나의 일상을 흔들고 지나갈까. 그 때는 나의 일상 속 당연함 중 무엇을 앗아갈까. 나의 이 상실감과 외로움이 비단 코로나만의 문제였을까. 아니었다. 껍질을 벗겨내고 남은 알맹이는 후회와 죄책감이다. 아이와 함께 목욕탕을 방문할 때면, 정신없고 귀찮은 과정들에 불평을 하기도 하고, 홀로 방문한 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때, 내 곁에서 천진난만하게 물장구치던 아이의 모습을 마음껏 예뻐하고 두 눈에 담지 못한 미련스러운 내가 있었다.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라 믿었기에 소홀히 했던 일상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나는 허망하고도 쓸쓸하다. 잠든 아이의 둥그런 이마를 슬며시 쓸어 넘긴다. 보드랍고 말캉한 볼 살을 가볍게 어루만진다. 그 언젠가 내게서 저만치 멀어지는 것이 다름 아닌 너라는 존재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덜컥 겁이 난다. 이처럼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몸집을 불리려 할 때마다 내 두 발이 닿아있는, 네가 내 곁에 꼭 붙어있는 현재로 시선을 돌린다. 이불 위로 올라온 작고 통통한 네 손을 꼭 잡는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의 너를 짙고 강렬하게 아로새긴다.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그 언젠가 네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기보다, 지난 시간 너와 쌓은 행복한 추억들로 기쁘게 배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가 내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코로나는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한 번 더 각인시켜주었다. 코로나가 지나간 자리, 나에게는 소중한 것에 대한 깨달음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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