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글쓰기 10일차
얼마 전 아빠와 대화를 하다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단정하게 삼베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탬버린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나의 유치원 운동회 때 사진이니까 벌써 30년보다 더 오래된 과거의 할머니다. 아빠는 묵묵히 그 사진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꼭 그렇게 보면 뭔가 더 볼 수 있는 것처럼) 조용히 사진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도 얼마간 아무 말씀이 없었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지금의 할머니와 다르다. 나에게 할머니의 심상은 오래전에 찍힌 사진 속 할머니에 가깝다. 나만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빠도 그렇지 않을까. 혹 우리가 각자의 기억 속에 살아계신 그 무수한 할머니를 놓지 못해 현재의 할머니는 요양 병원의 네모난 침대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현재가 아닌 과거를 들추는 것이 못내 서글프고 아쉽다. 수천 년 전에 죽었을 지도 모를 별을 보며 아름답다고 찬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기억을 잃은, 그래서 아빠와 나를 정확히 기억하는 순간이 24시간 중 1분도 안 될 가능성이 높은 할머니에게 지금의 생은 또 무슨 의미일까. 할머니 역시 과거의 우리를 붙잡고 살아가고 계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