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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Sep 02. 2018

좀 쉬영갑서예

제주도 여행 #3_수마포, 성산일출봉, 오조리

8월 31일

 

#숨고르기

오조리 마을을 바라보는 외로운 너의 옆태.


 아침 아.아를 게스트하우스 카페에서 들이키고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내가 참 애정 하는 펭귄북스 출판사의(표지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든다.) '월든'이었다. 소박하고도 철학적이며 저항적이기까지 한 이 책은 제주도의 나와 찰떡이었다. 월든을 읽으며 폭풍 같았던 지난 5개월을 돌아보았다.


 4월, 5월, 6월, 7월, 8월. 봄에서 여름이 끝나기까지 나는 3개의 회사를 다녔다. 3번의 입사 준비(서류와 면접), 그래서 왔다 갔다 했던 월급. 교회 사역 이외에도 찬양집회, 말씀 소그룹, 통독 모임 등의 사적인 크리스천 모임을 가졌다. IAA(국제광고인 자격)을 올해 안에 끝내기 위해 몇 달간은 월, 화, 수, 목 저녁마다 강의를 가는 고통을 견디며 No Pain, No Gain을 실감했다. 아담의 창조성을 시대의 채널로 발현하기 위해 유투브 채널을 하나 파놓았고, 20대 때의 어설픈 마음을 모은 책 한 권도 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로 인해 홀로 우는 시간들을 보냈다. 새로운 만남에 설레기도 하고 여전히 어리숙한 나의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했다. 그리고 제주도를 왔다.


 제주도는 나에게 지난 반년을 돌아보고 감사하며, 현재에 경탄하고, 미래에 나아갈 숨고르기를 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주는 상이었다. (나는 원래 스스로에게 상을 잘 주는 사람이니까.) 이러한 모든 면에서 제주도는 걷고 생각하고 기록하기에 적절했다. 아주 많이.


 어쨌든 지금은 눈물 나게 기쁜 고로, 모든 것이 괜찮고 또 괜찮을 것 같다. 그가 살아계시고 나는 이 땅에 살아 그의 자녀 됨으로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기뻐하는 것. 끊이지 않는 영원의 소망을 지니는 것으로 인해서.


#이상한 나라의 잡화점

 선교관 한 곳과 제주 43 평화공원에 들르기 위해 서쪽 나라를 가려했던 야심찬 나는 제주도 뚜벅이의 운명을 인정하고(첫날의 소중한 경험을 통해) 동쪽에 머무르기로 했다. '그래 그냥 걷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오늘도 예쁜 쓰레기 수집가는 게스트하우스 주인분이 같이 운영하고 있는 잡화점에 들렀다. 이 요상하고도 발칙한 곳은 결국 나를 소소한 탕진의 길로 이끌었다.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을 것 같은'의 참신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이 공간은 내 등짝을 내리칠 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 혼족의 지갑에 아주 관대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나도 여행하며 모은 엽서나 소소한 것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맥북을 켜고 앉아 있는 저 그림을 그려보리라. (사실, 내 방은 이미 그러하다..)

그 중에 제일 위트 있었던 존재는, 눈썹을 그린 성산포 앞바다의 강아지. 짱구

#쉽게 쓰이는 시

바다를 보고 나란히 앉게끔한 의자는 언제나 훌륭하다.

 이왕이면 그래도 제주 바다가 보이는 곳에 가서 쉬자는 마음으로 수마포의 조용한 카페에 성경책과 책 한 권(월든)을 가지고 자리를 잡았다. 빛나는 순간을 나누고픈 이들이 생각나 영상을 찍어 별그램에 올려놓고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제주도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

 햇빛에 파도는 춤을 추고, 그 노래에 맞춰 연필을 든 나는 시가 절로 쓰였다. (바다를 보며 단숨에 써 내려간  '춤', '사랑'과 같은 시는 '나의 친애하는 그대에게' 매거진에서 확인해주시길!)


시가 참 잘 써지는 이곳.

말은 산 위에 고요히 풀을 뜯고,

그 아래 누가 그렸는지 모른 세월의 자국이 남은 절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은 바다가 있는 이곳을

난 참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아니 이미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이제.



**창 밖을 보며 써 내려간 메모 하나를 공유하련다. 그 유명한 투머치 인포메이션으로**

"그래서 돌아가면 어떻게 살거니?"

1.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낼 것

2. 몸과 마음의 자세를 바로 할 것

3. 부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다정할 것

4. 옷을 많이 사지 않을 것(환경문제)

5. 연필과 지우개를 더 자주 사용할 것



#제주도 워킹 홀리데이(Walking Holiday In JEJU)

 어제 성산일출봉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은 탓에, 나의 친애하는 아이폰님은 일찍이 퇴근을 하셨다. (주인 닮아서 칼퇴를 좋아한다;;) 그러다 결국 불빛 하나 없는 동네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던 나는 오늘은 해가 떠 있을 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리라 결심했다.

워킹홀리데이의 시작, 오조리 입구에서.

 해가 있고 없고일 뿐인데, 오늘은 길을 잃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빛을 역시나 힘이 있다.


 매일 동네 어귀를 타박타박 걷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제주의 작은 꽃들을 찍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다른 색의 다른 향기의 꽃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제 조금 더 대 놓고 사진을 펼쳐봐야겠다.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있으니까.


#다 같이 돌자 오조리 한바퀴 JPEG.

홀로간 여행에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나를 상상해보아야하는 부분 jpeg.
제주도의 흔한 가로수(?). 서울에도 길가에 과실나무를 많이 심었으면...
조금 비뚤어진 벤치에는 조금 가지런하지 않은 글씨가 어울린다.  그래서 나같은 뚜벅이들이 부담 없이 쉴 수 있을런지도
제주의 하늘을 닮은 파아란 트럭.


#본격 제주 꽃 박람회st JPEG.


#조용한 곳을 찾아 오는 이들의 아지트

 "우리 게스트하우스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많이 안돌아다니고 주변 산책하고 자연 속에 있고 싶다고 하니까, 제주도에 살던 언니가 추천해줬어요."

 "누가 똑같이 말하면서 추천하는 사람이 있나봐.. 다 그렇게 오네?"


 비슷한 이유로 찾아오는 이들이 모여서인지 내가 다녀본 여행지 숙소 중 가장 고요한 곳이었다. 누구하나 서로의 평온함을 방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제주도 작은 집들의 지붕이 보이는 다락방이 사랑스러웠던 이곳에, 내가 남겨두고 온 메모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무 힘 없어 보이지만, 정말 주의하여 다루지 않으면 무서운 얼굴을 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걸 먹냐고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나게 만들어 주신 야끼소바(from 게스트하우스 주인분)
여기 어딘가에 나의 흔적도 있다.


Epilogue.


육지의 화려함보다 반짝이는 바다가 좋았고,

반짝이는 바다보다 바닷물이 조금 밀려들어와 생긴 작은 물길이 좋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보다

그 옆에 난 조그마한 흙길이 좋았다.

내가 이 지극히 사적인 글들을 계속 적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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