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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an 29. 2019

진리가 모습을 드러낼 때

25살의 유럽 배낭여행기04_프랑스 리옹 대학교, 비유리옹, 페흐쥬

나의 첫 유럽 길거리 인터뷰

 인천지구에서 대학생 단기팀이 와서 수원, 광주팀에 이어 또 귀한 시간을 가졌다.

공동체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한 후, 리옹의 포항공대 같은 곳으로 향했다. 프랑스에서는 공개적 전도가 불법이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는 없었고, 우리는(벌써 원래 비전트립팀이었던 마냥 합류한 나, 원래 그러려고 간 거니까) 팀을 나누어 캠퍼스를 탐방했다.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고등학교 때 보통 책을 300권 정도 읽고, 수능 철학 문제로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가 나오기도 한다. 이성과 논리가 지배적인 프랑스에서 종교는 가장 하위 학문취급을 받는다. 


 프랑스에서는 복음주의 개신교들이 약 0.7%이고 WCC나 자유주의 신학자까지 포함하면 약 2%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 캠퍼스는 똘레랑스(*자신과 다른 종교, 신앙을 '관용'하는 일) 정책으로 학교에 무슬림들이 많아지자 종교 활동에 대한 우려들이 생겨났고, 기독교 단체들을 다 내쫓았다고 했다. 프랑스는 기독교에게만 유독 똘레랑스의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설명을 들으니 더욱 캠퍼스의 학생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내가 유럽에서 하고 싶었던 여러 리스트 중 하나에 인터뷰가 있다는 것을 그분께서 이미 다 알고 계셨기에 이런 기회를 주셨지 않았나 싶다. 대놓고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인터뷰를 해서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지체들과 함께 걷는데, 방학이라서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간혹 지나가는 교수님 나이 때의 어른들이 몇 사람 보였을 뿐. 아!


 비전트립이나 제자행전에서 그러하였듯,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한 명의 영혼이라도 만나게 해 달라고. 그렇게 사람이 있을 것 같은 건물에 들어갔다가 아무도 없어서 도로 나가려고 하던 중, 저 반대편에서 한 학생이 들어오고 있었다. 무엇인가 마음에 '이 사람이다' 싶은 마음에 화장실에서 나가는 것을 다가가가 붙잡았다. 우리는 한국에서 종교에 대해 인터뷰를 하려고 온 학생들인데 아주 잠깐 시간을 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대답은 어땠겠는가? 내가 이래 봬도 한 미소 하는데, 웃는 낯에 침은 못 뱉을 터이니 당연히 오케이였다. 


 나는 한국 및 아시아의 사람들은 어쨌든 '신'이란 존재에 대한 인식이 강한데 유럽 사람들은 무신론자가 많다고 들었다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그 친구는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신을 믿는다고 했고, 다른 프랑스 친구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기 사람들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걸 삶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그것이 차이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존재를 아는 것과 믿음의 삶은 또 다르다. 귀신들도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따르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군중들도 그와 같았다. 그분을 만나 나음을 얻고 기적을 보았다. 하지만 그 '무리'는 그저 군중들로 끝난다. 제자가 되지 않았다. 경기를 바라보고 좋아하며 박수를 치는 군중이 될 것인가, 경기를 함께 수고하여 뛰는 제자가 될 것인가. 

 

 짧았지만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대화였다. 나의 첫 공식 유럽 인터뷰를 마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라고 써져있는 캘리그라피를 선물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지체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비록 우리가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만난 저 영혼과 이 캠퍼스를 위해 기도하자고. 내가 선물한 그 글처럼 저 삶이 십자가를 알고 지게 될 수 있는 삶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같은 곳을 보아도.. 우리는 달라야 한다.

 캠퍼스를 둘러보고는 선교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리옹 곳곳의 기독교 유적지를 탐방했다. 혼자도 와본 곳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절대로 듣지 못할 이야기들을 선교사님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동행했다. 우리는 에펠탑을 만든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가 만든 시청 앞의 유명한 분수대에서 당장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은 말과 그 말의 콧김 효과를 칭송하지만, 그 자리엔 훨씬 더 대단한 순교의 피가 서려있었다. 


 헨리 10세가 종교 분쟁을 완화시키기 위해 개신교 우두머리와 가톨릭 왕가의 결혼을 진행시켰고 이를 위해 개신교의 많은 지도자들이 파리로 왔다. 그런데 가톨릭의 제독이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다 모였을 때 그 안에 군대를 풀어 그들을 죽였다.(이것이 성바돌로매 사건이다) 일부러 멸시와 모욕을 주기 위해 그 시신들을 방치했고 세느강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날의 사건은 다시 가톨릭이 개신교를 핍박하는데 불을 지폈고 리옹에도 8월 31일, 리옹에 남아있던 두 명의 목사님을 단두대에서 처형했다.(이 두 명은 칼뱅의 제자라고 한다) 


 순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간에 들렸던 다른 순교지가 있었는데, 처음 보면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조금 작게 만들어 놓은 곳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은 16세 소녀가 황소의 뿔에 찢겨 죽은 피의 고백이었다. 그 소녀의 신앙을 부정시키게 하기 위해 많은 고문을 행해졌다. 쇠를 달궈 옷을 벗겨 그곳에 앉혀 놓기도 하고 여러 고문을 했지만 그 소녀는 고문 후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러다 결국 자루에 넣어 던져져 성난 황소들에게 찢김을 당하게 된 것이다. 소녀는 그날 그곳에서 왜 죽었는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 그 질문이 게으른 내 가슴을 때렸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면 내가 가봤던 vieux Lyon이 나오고 더 올라가면 푸비에르 성당이 나온다. 멋진 야경과 리옹 시내를 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성당 꼭대기에는 마리아가 리옹 시내를 향해 서있다. 리옹 사람들은 마리아의 영을 섬긴다. 흑사병이나 여러 정복 전쟁에서 마리아에게 기도해 살아남은 기억들이 리옹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촛불을 밝히며 마리아에게 기도한다. 리옹에 여행을 오면 멋진 구 시가지와 강 그리고 성당을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부디 그것이 전부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과 왜 그것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 


 참 감사하고 과분한 말이지만 선교사님께서 인천지구 지체들에게 이야기해주신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난 그 말을 닮아 살아가고 싶다. "그냥 유럽을 여행 와서 이것저것 보고 와~하고 가는 것보다 이렇게 은지처럼 선교지를 들러 선교사의 삶을 보고 공동체를 만나고 이런 것들을 배우고 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의 기도는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그래 정말 그래야 한다. 나에게 조금 다른 여행을 선물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선교사님이 해주신 과분한 칭찬에 부끄럽지 않은 기도의 동역자가 되고 싶다. 


하나님이 데리고 다니는 사람_7월 22일, 25일, 2

하나님이 데리고 다니는 사람_프랑스 농장체험_7월 22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옥수수를 따러 갔다. 이곳에서 다양한 기회들을 누리는 중인데 오늘은 프랑스 농장에 가볼 수 있었다. 오늘 받을 옥수수는 탈북하시고 중앙아메리카 쪽 다른 섬에 계시다가 현재는 프랑스에 와서 정착해 계신 한 성도님의 섬김이었다. 풍성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것을 먼저 구하는 삶이었다. 그분이 사시는 곳은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집 근처에 갔더니 그 성도님이 집 밖으로 나오시기도 전에 우렁차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서 그분의 삶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유독 이민자와 이민자들의 삶을 보게 되는 데, 이에 관하여서도 언젠가 글을 써보고 싶다. 지식과 생각이 짧아 어려울 것 같긴 하다만은.


 성도님의 안내로 프랑스 농장에 도착했다. 특이한 것은 자기가 직접 리어카나 바구니를 가지고 들어가 먹을 만큼 따오고 kg으로 재서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캄보디아 스피릿을 반년이나 받아온 나는 들판과 풀과 꽃만 만나면 집 밖으로 나온 디에젤(여기 공동체에 사는 나만한 개다. 종은 잘 모르겠고 굉장히 크고 잘생겼는데 순둥이. 바보. 애교쟁이다. 특유의 개 냄새가 그 큰 몸에 가득한 것을 빼면 매일매일 안아주고 싶다. 하지만 주로는 발로만 배를 쓰담쓰담해주고 있다... 미안해 디에젤)처럼 좋아서 뛰논다. 성도님께서 과일을 맛보고 골라도 된다 길래 어쩌다 보니.. 멜론을 맛보게 되었다. (오해하지 마시길 절대로 서리는 아니다.) 열쇠로 쓱쓱 긁어 딱 잘라 나누어 멜론은 정말로 꿀맛이었다. 난 그렇게 수렵 채집 생활이 잘 맞는 것 같다. 캄보디아에 있을 때도 나무에서 그린 망고를 따먹거나 바나나를 따먹었던 생활이 정말 재밌었는데 유럽, 프랑스에 와서도 수렵은 아니나 채집 생활을 하는 것이 적성에 맞다.


 그렇게 한참 프랑스 농장을 즐기며 돌아가는 길에 신이 난 날 보며 선교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경험하길 기뻐하고 도전하는 사람을 더 데리고 다니고 싶지 않으시겠어? 그래서 너가 이렇게 특별히 더 여러가지를 보나보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계속 길을 열어 주시나 보다. 그래, 도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 계속. 그러면 누림에도 멈춤이 없을 것이다. 그분은 나에게 늘 길을 열어주신다. 



공원, 글, 눕기

 리옹에서 가장 큰 공원에 갔다가 아주 사랑스러운 담비(동물)에게 침 세례를 맞았다. 하..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거니.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과 식물들이 많은 그곳은 나에게 정말 낙원이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신기하게 생긴 생물들이 많았다. 그곳에서도 여지없이 잔디밭에 누워 자다가.... 추워서 깼다. 난 왜 이렇게 아무데서나 잘 자는 것인가.


 공원에 가면 몇 시간이고 걷고 뛰고 잔다. 그리고 글을 쓴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하나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가로이 자연에서 글을 쓰고 사람 구경을 하는 시간들이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유럽여행의 3분의 1 정도 되는 것 같다.


_프랑스에서 어딜 가나 있는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면, 라벤다, 회전목마, 담배 피우는 여자들, 공원, 정말 멋있는 하늘, 그리고 나 같이 공원에 누워있는 여행자들.._



페흐쥬 길에서

 선교사님께서 내가 곧 리옹을 떠난다고 좋은 데를 데려가 주셨다. 페흐쥬라는 12세기 마을이었다. 하지만 좋은 곳을 가서 좋은 것들을 본 것보다 나는 사실 선교사님 내외와 나눈 대화들이 가장 값지고 좋았다. 그래서 그 증거로 그곳이 얼마나 이쁜 곳인지 사진을 제시하는 바이다! 내가 얼마나 값진 대화를 나누었을까 느껴보라고!(맞다, 대놓고 자랑하는 거다.) 돌아와서 청소를 하며 이곳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선교사님과의 대화에서도 또 하나를 배웠다. 여행은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난 이렇게 늘 배움의 기회가 많다. 어떻게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좋고 선하고 배울 것들이 많은가 모르겠다. 또 하나 최근에 선교사님이 해주신 마음에 남았다. 내가 난 참 인복이 많고 늘 참 많이 배워서 너무 좋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것도 너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려 하는 태도와 또 그렇게 세세한 부분에서도 배우고 느끼도록 해주신 거야. 그 은사에 감사해야해."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이곳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귀한 은사를 하나 더 알아간다. 배울줄 아는 인간이라는 것. 




 내가 이곳에 온  이쯤에서 내가 유럽에 온 목적을 정리해놓을까 한다. 내 일기가 다 물에 젖을지 내 글을 남몰래 흠모하는 누군가가있따거나..(있을지 모르겠으나?) 언제 값이 올라 훔쳐갈지 모르는 노릇이니 이렇게 온라인에 또 정리해놓아야 안전하겠다. 이번 주에만 유럽에 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5번 이상은 받은 것 같다. 그만큼 내가 그 목적을 돌이키며 내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과 목표가 꼭 한 가지는 아니다. 하지만 간단히 도시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파리(프랑스): 고등학교 때 불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후부터 파리는 내 평생의 꼭 해야 할 로망이었고 넓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 미술작품을 많이 보고 싶었다.
*리옹(프랑스), 프랑크푸루트(독일): 선교사님들과 지내면서 선교지를 돌아보고 함께 기도하고 공동체로 지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
*인터라켄(스위스), 베네치아(이탈리아): 하나님 지으신 멋진 자연과 도시에서 보고 먹고 즐기고 쉬고.

큰 틀에서의 나름의 캐치프레이즈는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이고,

그리고 어떤 여행자이고 싶냐 물으면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위로하고 도전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대답해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말 세밀하게 나의 기도를 이루고 계신다. 너무 감사하게도 이 곳에서 교제하는 지체들에게 ‘위로’와 ‘도전’이 되었다는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빈말(?)들도 난 진심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정말로 그저 지나가는 말이었을지라도 정말로 내가 하나님과 또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늘 위로와 도전을 받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정말 정말 감사하다. 


이곳에서 본 두 번째 영화에 나온 대사를 소개하며 세 번째 일기를 마친다.

(첫 번째 영화는 500일의 썸머!,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영화다. 누구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에서 나온 마지막 대사다. 


때론 사랑 때문에 균형을 깨는 것도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편안하고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용기가 생겼을 때, 그것이 집이든 감정의 응어리든 외면의 것이은 내면의 것이든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을 때,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여기고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인정하기 힘든 자기 모습을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면
진리는 당신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 진짜 끝은 이 센터에서 내가 가장 귀여워 죽겠어하는 두 존재의 사진으로.. 훈훈히 그 귀여움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미안해 애들아. 너네 아니야. 혹시 이 글을 읽더라도 실망하지 마. 너희가 얘네들보다 귀엽긴 좀 힘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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