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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Aug 30. 2019

프랑크푸르트 산책

25살의 유럽 배낭여행기 05_프랑스 리옹, 독일 프랑크프루트

*이 글은 2015년 25살 시절에 2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며 썼던 일기를 그때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그때의 생각과 감성을 존중하기 위해 맞춤법 외에 큰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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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스마트한 아이를 사용하여 글을 쓴다. 어딜 가나 wifi님의 존재는 엄청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나의 오타 유발 엄지손가락은 아주아주 고생을 하지만 사진을 두장 나란히 놓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오늘은 요즘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요런 하늘로 마음을 환하게~하며 글을 시작하련다. 한국 가면 이곳의 기후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고 싶다.

프랑스 리옹의 하늘
나의 자랑할 것 _ 2015년 7월 27일

 오늘은 사랑하는 슬기와 눈누난나 데이트를 했다. 케밥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먹고 먹고 먹다 각자의 길을 갔다. ~로 오늘의 일기가 끝이 날 리가 없지. 난 나를~~ 버리고 멋진 동생을 만나러 가는 슬기를 뒤로하고 보자르 박물관을 갔다. (아마 평생 다닐 박물관을 유럽에서 다 다니는 듯하다) 어렸을 때 숨겨진 취미였던 박물관 탐험이 되살아난 듯 이상하게 박물관만 보면 발걸음이 동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더 귀여운 어린이였을 땐(자기애 충만) 친구들이랑 틈만 나면 박물관을 갔다.  그리곤 석기시대 아저씨들과 여러 도구들을 보며 그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놀기도 하고 박물관 주변의 춘향이 그네를 타며 어디 있을지 모를 몽룡이를 찾았더랬지.

 그렇게 보자르에서도 홀로 여러 그림들과 조각 앞에서 내 나름의 상상을 펼치고 있는데....! 한 언니가 다가와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난 당당하게 외쳤다. 'I'm from Korea' 그제야 그 언닌 환하게 웃으며 자기도 한국인이라며 소개했다. 난 어딜 가나 누구에게나 맘 편하게(?) 다가오게 하는, 또 다가가는 복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디에 쓰라고 주신 건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아무튼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리옹에 아주 오래 산 사람 행세를 하며 내가 다닌 이곳저곳을 잘 설명해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 내 마음속에서 선교사님께 들었던 리옹의 선교역사에 대해, 그 복음의 값에 대해 소개하고 싶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언니는 방금 보고 온 그 그림이 내가 이야기해준 그 순교의 이야기인 것 같다며 흥미로워했다. 그렇게 나의 매력 발산(?)은 성공했고 놀랍게도 내가 곧 이동할 프랑크프루트에서 산다고 하는 언니는 내가 그 도시에 가는 그날 언니도 도착한다고 했다. 우린 당연히 프랑크프루트에서의 재회를 약속했다.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 가장 귀한 것을 더 많이 자랑하고 싶으니까. 

어디 가서나 살아남을지 _ 2015년 7월 28일


 엄마가 보면 꽤나 슬퍼할 것 같지만 엄마가 내 일기를 보지 않기 때문에 맘 편히 나의 힘과 일꾼 자질을 자랑해보련다. 엄마에겐 사랑스럽고 연약한 막내(?) 딸이니.

  오늘은 내가 리옹에 온 최대 목표! 선교사님 가정의 이삿날이다. 우리는 장비를 챙겨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선교사님께서 왠지 내가 그런 거 딱딱딱 파트 나누고 잘할 것 같다며 나에게 위임을 해주시어 나는 역시 내 집처럼 함께한 사람들에게 파트를 주고 노동요를 세팅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선교사님과 도와주러 오신 집사님은 우리의 청소 실력을 보고 조금 과장되게 느낀 대로 표현해보자면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난 원래 칭찬 과대포장 흡수 쟁이니까) 오전에 시작해 이사 짜파게티를 먹고 4시 정도가 되어서야 끝난 우리의 용역 Kim팀은 환상의 조합이었다. 죽이 잘 맞아 나를 용역 Kim 보스로 따라 준 슬기와 지혜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유럽에 와서 어디서나 잘 살 거라는, 살아남을 거라는 말을 참 자주 듣는다. 그만큼 생활력 강하고 붙임성이 좋다는 거겠지?! 오늘도 칭찬을 과대 해석하여 흡수해본다. 흐흣

  저녁은 공동체 교제의 날이어서 모두 살롱에 모여 위 게임을 했다. 테니스-권투-볼링.
웃음이 끊이질 않는 이 공동체가 참 좋다. 목사님과 우리 단기선교사의 접전 영상을 올리고 싶으나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 소장하기로 했다:) 글이 길어질까 다 쓰지는 못하겠으나 리옹에선 내가 세우고 싶은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공동체'로서 어떠해야 하는가 참 많이 배웠다. 기도나 말씀 시간 이외에 또 꼭 필요한 것을 몇 가지만 나열해보자면, 매일이나 전부는 아니더라도 함께 먹는 것, 함께 일하는 것, 함께 노는 것. 지난 4년간 해왔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제야 그것이 공동체를 세워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왜 현재 세워져 있는 공동체들이 저런 부분들을 지키는지 조금을 알 것 같다.

안녕 LYON, 넘치게 사랑받은 곳 _ 2015년 7월 29일-30일

우리의 마지막 데이트
 지난 부숑 거리의 트라우마를 싹 잊게 해 준 연어샐러드-송아지 고기-라즈베리, 초콜릿 아이스크림! 을 먹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또?!!) 손상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꽁플리옹스 박물관에 가서야 리옹의 간판이라는 OnlyLyon과 인증샷을 찍을 수 있었다. 발이 달려 움직이는 아이라 또 이렇게 만나는 묘미가 있다.

 _잠깐 지혜에게 들은 손과 혼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하자면.. (했었나? 난 원래 인상적인 것들은 계속 말하는 습관이 있다. 거기에 말하고 잊는 지우개 능력은 덤이고) 혼이 남자고 손은 여자다. 혼은 바다로 나가고 싶어 하고 손은 그런 혼을 붙잡고 싶어 한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왜 그토록 흥미로운지... 아무튼 그 혼과 손이 만나는 점에 사랑스러운 6 총사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다 그냥 공개글로 되어있어 실명 거론을 꺼리다 보니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다들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알지 애들아? 

내가 뭔지.. 이렇게 사랑받는다냐~
  감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제목 정도는 사투리로 달아봤다. 느껴지는가 나의 애절함이?

 도대체 나는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랑받는 걸까. 리옹에서 프랑크푸르트 가면 제주도에서 개마고원 가는 것 같을 거라는 내 말에 어디서 또 몰~래 예쁜 하얀 카디건을 사 와서 빨리 주고 싶어서 미리 준다며 내미는 <예쁜> 형주. (이런 건 실명 거론해도 되지? 예쁜. 을 달아야 하니까) 조용히 선물과 한 자 한 자 썼다며 황송히도 엽서까지 주신 선교사님들. 저혈압이라 잘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그 새벽에 일어나 잘 가라고 배웅 해준 지혜. 그리고 역시 저혈압(리옹엔 저혈압이 많나..)이나 일어나 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준 슬기. 그리고 이들의 편지. 만남에 즐거워하고 함께 있을 땐 충분히 사랑하며 헤어질 땐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헤어짐에 꼭 의연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헤어짐도 헤어짐대로 그 마음 그대로 다 누리는 것도 어쩌면 나와 상대방의 함께함에 대한 어떤 의리 같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넘치게 사랑받는 내가 이들의 편지에서처럼 선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고 '기적'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렇게 또 가족이 늘었다.

드디어 독일! 이상한 도시, 프랑크푸르트 _ 2015년 7월 31일
프랑크푸르트 왼.뢰머광장 오.마인강 따라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 근처 탑?교회 이름은 잘...

 12시간의 megabus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루트는 유럽 금융의 중심지답게 엄청난 고층 빌딩들과 15-18세기 건물들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상한 도시이다. 프랑스에서 어딜 가나 있는 흔한 키워드가 담배, 라벤다, 회전목마, 와인, 정말 다양한 민족, 쇼핑, 바게트... 였다면 여기는 입천장이 헐릴 것 같은 딱딱한 빵, 맥주, 고기와 소시지, 자전거 그리고 프랑스 친구들이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던 게르만족! 골족(프랑스)과 게르만족의 차이에 대해 자세히 쓰고 싶으나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 역시 오프 더 레코드로 남긴다. 


  작정하고 나선 나 홀로 프랑크푸루트 탐방의 날, 혼자 뢰머 광장을 지나 본능적으로 강 쪽으로 가게 됐다. 이 날이 축제 날이라서 광장 사진을 제대로 찍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내가 담긴 사진 하나는 찍어야 하니 늘 그랬듯 누가 봐도 관광객인 외국인 가족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내가 본 곳들의 지식적 설명을 굳이 생략하는 것은 그건 내가 말 안 해도 네이버 친구가 다 알려주니까. 그것까지 다 적으면 안 그래도 긴 일기, 읽다 지친다) 마인강은 세느나 혼, 손 강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뭔가 더 아담하고 맑지도 않은 물이 낭만적이게 느껴진다. 아마도 처음 마인강을 만난 것이 다리에 걸린 수많은 자물쇠들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유럽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자물쇠 걸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무엇을 확정해주는지는 모르겠으나.

  늘 그랬듯 강가 햇볕 좋은 곳에 앉아 글도 쓰고 사람 구경도 했다. 나는 사람 구경을 하면서 그들의 모습에서 묻어나는 삶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러다 문득 슬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내가 사람을 잘 파악하고 이해해주는 것 같다고. 또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런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의 촉은 은근히 발달되어있다. (나 자신의 일들에 대해선 좀 둔감할지라도..) 그리고 내가 슬기에게 떠나기 전 했던 미니 강의가 떠올랐다. (나에게 2년 인생을 더 산(?)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묻길래 크게 4가지로 요약해 전해주었었다. 이 또한 참 분에 넘치게 감사한 일이다.) 모든 피조물(자연도 인간도)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사랑하라고. 사랑하는 만큼 보이니까.

부모가 되는 것에 관하여 _ 2015년 8월 1일

   5시 30분 정도에 일어나 선교사님과 새벽기도를 갔다 와서 IKEA를 갔다. 한국에서도 못 가본 IKEA를 여기서 가다니!! 이케아는 정말 정말로 컸다. 내가 쇼핑 카트를 밀고 선교사님께서 유모차를 미셨는데 오늘 새벽에 깨서인지 하루 종일 생떼만 부리던 아가는 이케아에서도 생떼+애교를 부렸다. 진짜 며칠 있지도 않았지만 아이를 키운 다는 것은 엄청난 일임을 몸소 깨닫고 있다. 지난밤도 우리 귀여운 아가가 우느라 ( 난 아가 침대 옆에서 잔다) 안아 달래다 내 침대에서 재웠다. 아직 17개월 정도인 아가는 몇 시간 간격으로 깨고 악몽을 꾸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몸을 뒤척이며 칭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아가 전문가가 아닌 나는 그저 괜찮아 괜찮아하며 토닥토닥 쓰담 쓰담해주고 안아 주고 기도해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냥 쪽쪽이를 입에 물리면 좀 더 괜찮아진다고 하셨다. 그러나 밤마다 약 2시간 반 간격으로 칭얼거리거나 울며 깬다.) 


 아가들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거나  원하는데 그중 대부분의 것은 부모가 보았을 때 아가에게 위험하거나 좋지 않은 것이다. 넘어지고 떨어지고 떼쓰고 또 그러다 헤~하고 천사의 웃음을 짓곤 하는 아가에게 부모란 절대적 존재이다. 도무지 부모라는 위대한 존재들은 언제 자고 언제 먹을까. 지난 이틀간 나의 관찰에 따르면 아가가 태어나서 최소한 어린이가 될 때까지 부모라는 존재는 정말로 아가를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아가는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존재니까. 하지만 재밌는 것은 이 아가들이 조금만 컸다 하면 양치질이든 숟가락질이든 혼자 하고 싶어 한다는 것. 이를 구석구석 닦지도 못하고 딸기 맛만 맛있어 느끼고 싶어 하고, 온 음식을 다 흘리고 아뜨 아뜨 데어서 다쳐도 자꾸만 고집을 부린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그렇지 않을까.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으면서도 자꾸만 혼자 하겠다고 우기는 모습. 순간의 맛과 흥미에 이끌려 위태 위태가는 모습. 지금도 선교사님은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나가 결국 엄마가 보고 싶어 울며 전화한 딸을 데리러 이 밤에 나가셨다. 

  나에게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엄마라는 자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책임이 따르는 걸까. 나는 지금 어렴풋이 참 좋은 기회를 통해 그려보지만 분명한 것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 것 같다. 생명과 사랑이란.


 아! 이케아를 돌아다니며 나중에 가정이 생기면 이렇게 요렇게 집을 꾸며야겠다고 혼자 흐뭇한 상상을 하며 다녔다. 한국 가면 자수를 좀 해볼까나~♬ 그러다 오늘도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소소한 쇼핑을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케아에서 산 저 쥬키니, 빨간 무(?), 당근 씨앗을 심어서 무럭무럭 키워~잡아먹고 재 파종까지 하리라!! 이번엔 제발.. 제발.. 죽이지 않길. 다행히 손만 대면 죽이는 나에 비해 우리 엄마는 손만 대면 살리니까.  그리고 마리당 0.99유로에 분양(?)한 저 하트 곰 두 마리는 언제 어디로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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