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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Aug 17. 2020

고통의 곁에, 당신의 옆에

치매 노인 문제를 겪는 가정과의 인터뷰 _ 작은세상모임

History. 작세모

작은세상모임.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이상현실주의자'들의 모임.
이 사회의 다양한 주제(노인, 노숙인, 환경, 외로움, 젠더, 혐오, 용서, 청소년, 빈곤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만의 방법으로 무언가 해보는 실험 그룹.

>>작세모에 대한 내용이 더 궁금하다면


작은 세상 속, 반드시 올 이야기에 대하여


 작은세상모임, 작세모가 가장 먼저 다룰 이야기는 '노인'이었다. 첫 번째 주제는 모임을 열며 미리 정해 놓았었다. 작세모를 이루는 '청년'들이 가장 와 닿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이슈면서도 반드시 겪을 일이자, 개인적으로는 '크로스디사이플스'라는 독서모임에서 매년 크리스마스에 '사랑의 상자'라는 활동을 하며 홍제동의 어르신들을 3년째 찾아뵈었던 때의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사랑의 상자 활동은 홀몸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들고 가서 말벗이 되어 드리는 활동인데(*사전에 동사무소를 통해 방문에 관한 허락을 구하고 진행한다.) 처음 보는 나에게 그간의 고된 삶을 이야기하시는 어르신들을 뵈면 어렸을 적 나를 키워 주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노년이 되어 느끼는 몸의 고됨과 재정적 빈곤 그리고 외로움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와 우리 가정의 현재이자 곧 다가올 미래인데 마냥 상관없는 일처럼 사는 것만큼 한 치 앞만 보는 어리석음이 또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늙고, 죽는데 말이다.


작세모, 첫모임. 기쁨곡간에서

 작세모의 첫 모임, 노인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었다. 작세모의 멤버들 중 가정에서 할머니의 치매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치매 당사자인 할머니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둘러싼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고통의 곁'이 겪고 있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중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사람 '정 현'으로서 D의 어머니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고통의 곁에 선 존재들의 호소를 들으며, '고통의 곁'으로서의 누군가가 아니라, 한 존재로서의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며, '어머니'가 아니라 '정현님'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정현님과의 인터뷰. 정현님께 어울릴 작은 꽃다발을 들고 갔다.


50살, 시어머니 곁에 선 정현의 이야기

01. 안녕하세요 정현님, 간단히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주부, 세 아이 엄마, 30년 시집살이를 해온, 쉽지 않았던 삶을 산 정현이라고 합니다. 요리를 잘하고 다정하고 배려 많은 아들이 있어요.
 

 02. 다정한 D가 쑥스러워하는 것이 보이네요. D를 통해 이런 인터뷰  요청을 받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노인 치매'와 이를 겪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사회의 보편적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가부장제 문화가 강했던 저희 세대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에서 정말 '어머니'라는 마음으로 대하긴 어렵죠. 30년의  세월 동안 제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어머니를 모신 제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셨던 시어머니이자 한 노인을 또다시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처음 시어머니께 치매가 왔을 때, 가족들이 이를 인지하고 인정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어머니의 이상 행동들이 가족 안에 조금씩 잡음을 일으켰어요. 모두가 정해진 시간 동안 경제활동을 하는 저희 가족 상황상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정했고 청주, 양평, 이천, 광주 등 정말 많은 곳을 직접 발로 뛰며 찾아다녔어요.


자리가 꽉 차있기도 했고, 비용적 측면에서 안 맞는 경우도 있었고, 어머니의 건강문제상 일정 거리 이상 가기 어렵기도 했죠. 고려할 것은 너무나 많은데, 저희도 처음 겪는 일이니 우왕좌왕,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서 정보를 찾아야 할지 정부의 지원금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며 해내야 하는 일이었어요. D가 없었으면 정말 어땠을까 싶어요.


03. D는 참 착하고 든든한 아들이네요. 정현님이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 정현님의 '곁'이 되어주었던 존재가 있었나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찾아다니고 든든했던 D도 있었고 또 저는 그럴 때마다 교회에 가서 털어놓고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가는 것을 아버지가 많이 반대하셨거든요. 그래도 거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도망치듯 교회로 가서 속 이야기를 했죠.


04. 그렇다면 잘 도와줬던 D 말고, 다른 가족들은 시어머니의 치매 문제에 있어서 어떤 모습을 보였나요? 잘 도와주셨나요?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의 치매를 인정하기가 오래 걸렸어요. 믿기지 않았을 거예요. 너무 고통스러우니 그런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어려운 상황을 함께 겪으며 지금은 훨씬 가정적인 남편으로 바뀐 것 같아요.


05. 이런 일들을 겪기 전에 미리 대비했으면 좋을 것이 있을까요?

요양원이나 치매 치료 등 비용적인 고민이 크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부분들에 대해 서로 정보를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분명 누군가는 이미 겪었을 일이니까요. 치매노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겪는 대부분의 가족들은 여러 정신적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겪기 쉽기 때문에 함께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하는 지원제도도 있더라고요. 저는 이제 누군가에게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 정현의 이야기

06. 그럼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정현님이 아니라 원래의 사람 '정현'은 어떤 분이실까요?

제 입으로 말하긴 조금 쑥스럽지만, 저는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삶을 좋아해요. 교회 사람들이나 가족들, 어려운 이들에게 무언가 나누어 주며 살고 싶어요.


여러분과 같은 20대 때는 미대 진학을 하고 싶었어요. 가정형편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문학도 좋아했고요. 일찍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글을 썼을 것 같아요.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정되고 편안해지면 다시 글을 꼭 쓰고 싶어요. 이미 생각해 놓은 기획도 있고요. 결혼 생활에 대한 회고록 같은걸 쓰고 싶어요. 딸들을 위한! (이런 사람 꼭 만나라! 만나지 마라!) 


07. 지금 50대인 정현님이 30년 후, 80대가 되었을 때 생각하는 노년의 모습이 있나요?

저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고 싶어요. 지금 확답할 수는 없지만 며느리가 생기면(?) 참견하거나 짐이 되는 시어머니가 되기도 싫으니 조금 떨어져 사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10년 안에 아들과 스페인으로 여행도 가고 싶네요.


08.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결혼을 하고 누군가와 가족이 되고 늙어 가는 것을 곁에서 보는 것은 참 큰 일이에요. 그 속에서 그래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00으로서가 아니라 오롯한 본인 말이에요. 그리고 '만남'이란 건 하나의 인격체가 서로 다른 인격체를 만나는 것이니 서로를 귀하게 대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많고 사랑스러운 오늘의 인터뷰이, 정현님

인터뷰를 함께한 작세모 세모세모들의 말.

S: 저 또한 할머니의 치매 문제를 겪고 있고, 저희 할머니도 요양원에 계세요. 저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오늘 정현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J: 이제 상황이 조금 안정이 되어 '며느리 정현'님이 아니라 그냥 '정현'님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그리고 저라면 이제 한 고비 넘었으니 혼자 편안한 삶을 바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삶을 살고 싶으시다는 것도 참 인상 깊었어요.


작은 호소에 반응하는 오늘을 위해

내 고통이 사회의 고난으로 간주된다면 간신히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_엄기호)

 인간은 자신의 고통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족, 사회 등)에서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평가절하될 때 벼랑 끝에 홀로 선 느낌을 받는다. 고통 속에 있는,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은 적당한 언어체계를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법과 사회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 고통의 정도와 해결책에 대해 호소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젊은이'라면 반드시 마주할 '노인'이라는 시기에 대해 보다 다층적인 언어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언어를 현재에 풀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의 고통이 사회적 고난으로 간주될 수 있도록 적어도 한 마디씩은 해야하지 않을까.

고통의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_엄기호)

 고통의 곁에선 이들에게도 곁이 필요하다. 언어가 파괴되어버린 노인의 삶, 그 고통의 곁에 정현님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든든한 D가 있었다. 깊은 공감과 환대로 이어지는 '곁'은 작은 호소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경청의 능력에서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하루의 스치는 잠깐일지라도,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룰 터이니!


   


글을 쓰고 싶으시다는 정현님께 작은 부탁 하나를 드렸다. 인터뷰 후기 글을 간단히 써서 보내주실 수 있냐고. 그리고 몇 주 정도 지나 직접 노트에 적은 귀한 글을 보내주셨다. (*타이핑은 그녀의 다정한 아들 )


<또 다른 삶>

오늘도 허락하신 이 시간을 살아가게 하시어 감사합니다. 거리의 청춘도 거리의 꽃들도 모두 귀하게 여겨지기만 합니다. 또한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합니다. 숨을 쉬지도 못하고 눈물로 지내온 30년을 오늘에야 보상 받으니 이 또한 감사합니다. 작지도 많지도 않은 내 나이 지금부터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눈물이 아닌 보는 듣는 마음까지 열리는 삶의 새로운 시작, 웃는 모습의 시작, 즐거움의 시작. 나만의 소망을 이룰까 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과 여행을 갈까?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과 맛이 있는 음식을 해 먹을까?

사랑하는 나의 남편과 영화를 보러 갈까?

하나하나 나의 삶이 바뀌어 새로운 안식처가 되기를 원하며.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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