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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Nov 02. 2020

공간, 콘텐츠, 주인장 그리고 환대 / 기쁨곡간

2년간의 기쁨곡간 곡간지기로서의 삶

끝을 생각해보지 않고 시작했던 일, 기쁨곡간의 Rejoice 넘치는 2년을 정리하는 글이다. 이번 글은 지난 1주년 '작은축제'(작은 모임들의 축제) 때처럼, 2년 동안 해온 일을 회고하는 것보단 곡간을 운영하며 배운 것 그래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끄적여 보려고 한다.

2년간 해온 일들의 summary는 인스타그램과(@soso_rejoice) 블로그를 참고해주시길!
https://blog.naver.com/soso_rejoice


*기쁨곡간: 기쁨을 보관하고 흘려보내는 공간 / 복합 창조성 공간(커뮤니티, 클래스, 이벤트 행사, 카페, 대관)
*곡간지기: 기쁨곡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

*참새: 곡간을 찾아오는 사람들



2019년 11월 처음 곡간을 열었을 때의 모습. 흙과 식물을 품을 수 있는 화단이 마음에 들어 이곳으로 자리 잡았다.

곡간은 왜 하고 싶었을까?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가치를 함께 살아내 보이고 싶었다.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 생산성, 노동에서의 자아 정체성 분리, 나를 중심으로 한 즐거움 추구, 함께 기뻐하는 것에 대한 감각의 상실..... 이러한 상황을 바꾸어 보기 위해 내가 꺼내든 카드는 '창조성'발현을 통한 '기쁨의 회복'이었다.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창조성을 회복하는 2년간의 프로젝트를 벌려 보고자 했고, 그 목적은 '연합'을 통해 가능하며, '기쁨'으로 열매 맺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을 했나?

공간을 지키고 '컨텐츠'를 만들어 사람들을 초청했다.

초청할 때는 무작정 오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할 만한 것,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한 컨텐츠(주제별 커뮤니티 모임, 스팟성 이벤트/행사,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불특정소수_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맛있는 음료_신메뉴 개발, 주인장의 이야기 등)를 미리 준비해 놓고 그들과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만남의 장소(인스타그램)에 소개했다. 컨텐츠는 그들의 현재 관심사를 비롯해 지기가 치밀하게 설계한 추천 관심사로 구성되었고, 내용뿐만 아니라 컨텐츠를 진행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곡간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녹아 있길 바랐다.

*추천 관심사: 현재 활동하거나 경험해본 주제/방식이 아니지만, 필요성을 인지시키거나 매력을 어필해 그들의 삶의 관심사 장바구니에 추가하게끔 하는 것이다. (예_작세모의 '노인'주제가 그러했다.)


2년간 곡간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래 내용은 곡간을 운영하며 참새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은 피드백을 지기의 언어로 정리해본 것이다.)

1. 개인의 정체성 회복
- 존재에 대한 고민, 가치관/세계관 정립

커뮤니티 참여, 길 가다 모여들어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꽤 자주 '태어나서 이런 질문 처음이에요.'라는 류의 대화를 했고, ('당신은 어떨 때 가장 자유한가요?', '기쁨이 가득 찬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랑, 기쁨, 나눔, 평화, 환대 등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충분하게 가졌다. 그리고 되도록 대화의 끝엔 그래서 그 가치들을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회사, 가정, 친구, 연인, 자연과의 관계 등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정리해 보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종종 새로운 커뮤니티나 프로젝트로 꽃 피워졌다.

2. 커뮤니티의 지속성

2년간 뚝심있게 곡간을 지킨 작말모(*5년차 모임은 이제 또 어디로 봇짐 들고 다녀야 하나 룰루랄라)

- 사람과의 친밀성, 함께 할 콘텐츠를 가진 커뮤니티는 지속적인 만남을 가질 '공간'이 필요하다. 가끔은 새로운 곳에서의 모임이 환기를 가져다 주지만, 매번 떠돌아야 한다면 안정감을 갖기 어렵다. 이런 커뮤니티들이 곡간과 같은 고정된 장소를 사용하며 매번 카페나 스터디룸을 찾느라 쏟았던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 지기가 함께 하는 모임일 때는 음료 한잔 값(2500원~4500원)이면 두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눈치 볼 필요 없이 있을 수 있었다. 때론 청년들에게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도 경제적 부담이니까.

3. 창조성 회복, 발현, 발전

- 인간은 모두 아주 특별하게 창조된 존재이다. 그래서 저마다 가진 창조성도 다른데,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얼마나 창조적 존재인지 모르거나, 자신만의 창조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말하는 기준만 쫒다 낙담하고 불안해한다. 혹은 '개인'의 창조성을 '우리의 기쁨'을 위해 사용할 줄 모른다(원하든 원하지 않든). 곡간에 찾아오는 참새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저도 이런 모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저도 언젠가 저만의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생각보다 제가 그림을 잘 그리는데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저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 재능을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쓸 수도 있군요!"

그렇게 우리는 곡간에서 마음껏 무엇이든 실험해 보며 각자의 창조성을 발견하고, 서로의 창조성을 발견해주었다.

4. 연합

- 곡간은 희한한 곳이다. 분리되지 않은 4평 반 공간이기 때문에 일단 곡간 문턱을 넘었다면 테이블 하나, 그 둘레로 6~8명 정도가 함께 모임을 참여하게 된다. 커뮤니티 간에도 커뮤니티별 상황과 속성에 따라 고이지 않고 접점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비슷한 영역의 사람들/커뮤니티라면 서로 더 잘 모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러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에 여기저기 잘 섞일 수 있는 박쥐 같은 몇몇 인간들이 연결 고리가 되어 이 모임 저 모임 사이에 작은 고리 하나라도 남겨 놓는 것이다. 아주 치밀하고 막무가내인 곡간지기가 한번 구멍을 내고 나면 그 벽에 틈이 생길 터이니, 당장이든 언젠가든 분명 담은 허물어질 테다.

- 나와 나 자신, 나와 타인, 우리와 우리, 우리와 이 땅, 나와 하나님, 우리와 하나님..... 곡간은 마음을 녹이는 주황 조명 빛의 기적을 꿈꾸며 언제나 연합을 소망했다.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어 다시 사랑하길 기대했다.

5. '생명력'을 주는 공간에 대한 중요성

- 코로나 19,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펜데믹 상황. 법적 규제에 따라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나 공간의 운영 방식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나 사람이 직접 만나는 접촉점, 물리적 공간 자체가 소멸될 수 있을까? 짧은 견해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자책 아이디 하나면 수천수만 권의 책을 패드 하나에서 읽을 수 있는 시기에도 동네 책방과 중고 서점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기술이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있다.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간'다운 무언가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고, 그것이 생성되는 곳에 모이려고 한다.  

- 곡간은 애초에 8명 이상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라 평균 4~6명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하지만 곡간도 코로나가 막 터졌을 때와 단계가 심할 때는 곡간을 열지 못하거나 모임의 횟수나 인원을 줄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참새들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절실히 느낀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혼자서는 건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집콕, 휴지기를 가졌다가 곡간에 모인 참새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역시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해.", "여기 오니까 좀 살 것 같아요.", "이런 대화, 이런 시간이 필요했고 그게 나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알겠네요."

당연히 국가와 사회적 합의로 정한 법규를 지켜야 하고 억지를 쓰며 무리하지 않아야 하지만, 생동감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창조적으로 공급하는 공간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지혜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한다.



After 기쁨곡간.

2년을 감사하고 기뻐하기 위해 홀로 찾은 뷰티풀하우스, 가평 필그림하우스에서.

2년간 곡간을 운영하며 살아있는 현장에서 배우고 실습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모아져 새롭게 던져진 미션은 이렇다.

문턱부터 환대가 가득한 공간
환대할 줄 아는 주인장
환대의 능력을 길러주는 컨텐츠


곡간엔 처음 보는 사람, 정치/젠더/인권/환경/과학/경제 등의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 눈빛만 봐도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 서로가 궁금해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 누가 봐도 극과 극인 사람, 다시 볼일 없을 것 같은 사람, 종교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이제 갓 성인이 된 사람, 세상 일에 정신 뺏기지 않는 나이인 사람 등 굳이 분류하기도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곡간지기로서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하면 이 다채로운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마음을 편하게 꺼내어 놓을 수 있을지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각자의 빛깔을 발견해 줄지, 어떤 좋은 질문을 던질지, 어떻게 위로하고 도전 할지, 함께 이런저런 것을 해보면 어떨지 손 내미는 것이었다.


사실 곡간지기는 이미 누군가의 엄청난 환대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다.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여 직접 인간의 몸이 되어 환대를 나누고, 예수님의 삶에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무시받던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김으로 주의 환영을 베풀며 하나님 나라를 보이신 것이 그러하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원서에는 '주의 환영의 해'로 되어있음)를 선포하게 하셨다. (눅. 4:18-19)

종교적 경험뿐만이 아니다.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배낭 하나 메고 유럽을 두 달간 돌아다닐 때, 갈 곳 없는 나그네를 2주간이나 받아준 내 프랑스 친구와 가족들이 있었기에 나는 '안전'하고 '평화'를 보장받고 유럽의 재미난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이 나라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준 것이다. 자신의 생활의 일부를 감내해준 것이다.


아직 인간, 공동체, 콘텐츠, 공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영역 속에 '환대'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녹이고 엮어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받은 환대를 기준으로 '환대'를 잘하는 존재가 돼볼까 한다. 그리고 그다음엔 그런 가치가 묻어나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그러한 컨텐츠를 채우고(프로그램, 커뮤니티, 굿즈, 먹을 것 등), '환대'를 함께 공부하고 연습해서 '잘 환대하는 사람'이 될 사람을 모아 봐야지. 이제 피리 아니고 나팔쯤은 불어야지.


자, 그래서

기쁨곡간 곡간지기가 던지는 마지막 말은

‘환대 잘하는 우리가 되자!’


단단하고도 유연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느껴질 것.

그래서 내 이야기를 왠지 꺼내놓고 싶게 만드는 존재일 것.

어렵게 꺼내진 이야기가 충분히 공감받았다 느껴지고 흩어져버렸됬다고 생각되지 않게할 것.

눈을 맞추며 웃으며 잘 들어줄 것.

아파하는 마음에 함께 울고 위로할 것.

적재적소에 좋은 질문도 던질 것.

내 지식이나 가치 기준으로 틀을 씌워 상대를 판단하지 않을 것.

누구든 언제든 환영할 줄 아는 사람일 것.

먼저 다시 만나자고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일 것.

그러나 공동체를 파괴하고 의도적으로 해하려는 위험요소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그런 환대 잘하는 내가, 우리가 되어

환대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공간과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

다시 그 길과 그 문 앞에 서서!

Rejoice!


+환대가 덕지덕지한 공간은 희희컴퍼니, 희희 세자매와 내년 봄쯤 뚝딱이 해볼 예정

(인스타_ @heeheeco)

/

2020년 11월 2일

곡간의 계약상 진짜 마지막 D-day에

가평 필그림 하우스, 순례자의 길에서.

2년간 기쁨곡간과 곡간지기 참새들과 모든 작은모임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마음껏 감격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며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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