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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Dec 11. 2021

책덕후라면, 12월엔 북스테이를.

주말 서울 근교 여행: 파주 출판단지 지지향  #1

사랑했던 시간들을 마무리할 때, 중요한 것을 시작할 때, 새로이 도전할 힘이 필요할 때 혼자 여행을 한다.


12월엔 파주로 북스테이를 떠나자.

올해는 지날 5월의 속초, 그리고 오늘의 파주이다. 이번 여행은 인생 최초로 맞이한 서른을 돌아보고 다독여 서른 하나로 잘 내보내는 시간인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멀지 않은, 뚜벅이도 충분히 입성할 수 있는 ‘북스테이’를 찾다 파주 출판단지 내 지지향이라는 곳이 선택했다. (지지향은 ‘지혜의 숲’ 위층에 있는 숙소이다.)

오후 반차를 내고 합정역으로 향하는 길. 텅 빈자리가 낯선 2호선이 재밌어서 찍어 두었다. 점심으로는 친구가 추천해준 ‘우동카덴’을 가려고 했는데, 멀찍이서 봐도 줄이 꽤 길어서 바로 눈앞의 ‘마포 우리 만두’로 들어갔다.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인가. 오랜만에 msg 향을 음미하며 (아마도)신라면을 먹었다.

파주 가는 길. 작가의 페이버릿 풍경

나는 파주를 즐겨 가는 편이다. 특히나 서울에서 파주로 나가는 길의 풍경을 좋아한다. 철새 때가 지고 남은 연뿌리처럼 떠 있는 겨울 강이 주는 느낌은 오묘하다. 날카롭게 꼬인 쇠사슬(*여기를 뭐라고 불러야할 지 모르겠다.)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평안에 안도한다. 황량해 보이나 여전히 생명이 머무를 수 있는 이곳이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버스 안내 음성으로 ‘파주 출판단지’라는 단어를 들렸다. ‘정신 팔다가 또 이상한 곳 가는 거 아냐?’라며 부리나케 내렸는데, 출판 단지가 아닌 이상한 곳에 내린 것이 맞다. 좀 걷지 뭐. 남는게 시간인데.


어린이가 뛰어놀 수 없는 어린이 책방

파주 출판단지 밀크북 북카페
밀크북 ‘어린이’ 책방

파주 출판단지 안 카페들은 대부분 북카페로 운영된다. 혼자 여행 다닐 때는 거의 휴대폰을 보지 않기 때문에 들를 곳을 고를 때도 그저 발길이 닫는 대로 가는 편이다. 여행의 첫 번째 머무름은 ‘밀크북’이란 북카페였다.

어린이책방이라고 써 놓고, 노키즈존이라니!

1층에는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들로 이미 가득  있어서(* 아버지와 아이 조합은 없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유를 몰라서는 아니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안내판이 있어 여러 번을 살펴 읽었다.


분명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들을 타겟팅한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노 키즈 존’이 존재한다니. 아이들과 함께 오지 않는 손님들도 ‘편하게’ 공간을 이용하라는 주인장의 배려라고 생각되는데, 아이들은 보기 힘든 높이로 설치된 이 안내판을 한 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물어보는 광경을 상상해보니 무척 속이 상하다. 으른들이 조금만 더 불편하면 안되는걸까.


“엄마! 이게 무슨 뜻이야?”

…”응 너는 7세 이하이기 때문에 이 위로는 올라올 수 없어. 어른들은 네가 뛰거나 소란스러운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단다. 그들의 시간이 방해받는 다고 생각하거든.”


창 밖으로 카페를 향해 뛰어오는 남매를 보았다. (부디 7세 이상이길.) 아이들은 잘 뛰어다닌다. 오직 아이만이 소리 지르고 뛰어다녀도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움을 어른들은 왜 이리도 불편해하는 것일까. 그때가 지나면 폴짝폴짝 뛰어다닐 수 없는 것을 알 텐데. 지옥철에 끼여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서 터덜터덜 맥 빠진 다리로 머리를 뉘이는 어른의 삶이 아이들의 생명력을 못내 질투하는 건 아닐까. 오늘 집에 갈 땐 와다다다 뛰어가 봐야겠다. 새 신은 아니지만, 뛰어보자 폴짝!


지지향으로 북스테이를 오려는 그대에게

라이브러리스테이 지지향

라이브러리스테이 지지향은 ‘북스테이’ 계의 호텔쯤이랄까.(시설이 엄청나게 좋아서라기 보단 규모의 측면에서) 파주 지혜의 숲에 올 때마다 저 위에 한 번쯤은 묵어봐야지 생각했는데, 내 돈 내고 트윈룸쯤은 예약할 수 있는 서른이 되어야 꿈을 이루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활자 냄새가 가득하다.

“문자는 문화가 담긴 파노라마이자 영감이 가득 찬 예술이다.”

“가슴속에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

추사 김정희 선생님, 제 가슴속에는 언제쯤 만권의 책이 들어찰까요. 1세부터 30세까지 일평생 해마다 100권씩을 읽었어도 아직 3,000권쯤인걸요.

지지향의 숙소. 트윈룸

여기까지 글을 읽으며 ‘나도 가볼까?’라는 생각으로 이미 지지향 숙소를 찾아보고 있을 그대에게 숙소 설명을 친절하게 해 드리겠다.


*트윈룸 기준 가격 92,000원(1박)

+방 인테리어가 우드&화이트라 깔끔함

+숙소 바닥, 엘리베이터 바닥까지 우드로 해버린 광기

+방마다 책상과 책이 꽂혀 있음.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tv 없음. 원래 wifi도 안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생김. 타협하신 듯

+1층 ‘문발살롱’이라는 북카페에서 24시간 책+가벼운 대화 가능. 책을 대여해 방으로 가지고 올 수 있음.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다고 무료 조식 쿠폰을 줌!

-바닥은 우드고 벽은 얇고 건물이 오래돼서 방음이 최악임

-침대가 정말 좁음. 잘 때 몸을 많이 뒤척이는 분은 팔다리가 침대 밖으로 나가 불편을 겪을 수 있음.

^팁 1. 비교적 한산한 시기를 골라 예약하고, 방을 받을 때 양 옆에 투숙객이 없는 방이 있는지 문의한다.

^팁 2. 지지향은 크게 두 개의 뷰를 가지는데, 지혜의 숲 건물 쪽이 보이는 곳보다 출판단지 쪽 뷰를 추천한다.



노을과 산책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순간

파주 출판단지 지혜의 숲 서가

방 구경을 마치고 지혜의 숲으로 내려와 책을 읽었다. 지혜의 숲은 높은 층고에 빽빽이 책이 들어차 있어서 다양한 촬영(드라마, 화보, 광고 등)으로 유명하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의 숲의 매력을 꼽자면, 기증받은 책들이 있어서 희귀한 책이나 고서들도 편히 꺼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물섬 기증 칸에서 1960년대에 나온 ‘요한 웨슬레’를 꺼내 읽었다.

책을 읽다 묘하게 공간 내 빛깔이 바뀌었음을 느껴 고개를 들었다. ‘노을이다!’ 읽던 책을 서둘러 자리에 꼽아 놓고, 노을을 보러 뛰쳐나왔다. ‘저녁노을의 루’라니.


동그랗고 붉은 해, 저녁노을은 삶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준다.

뛰쳐나온 김에 산책을 좀 하기로 했다. 산책은 목적지로 가기 위함이 아닌, 것은 걷이 목적인 행위이다. 여기서 저기로 가지 않고, 여기에서 시작해 여기로 돌아오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비효율의 순간이다. 오로지 그때의 관찰과 느낌에만 발을 맡긴다. 모든 것이 분명한 목적과 산출물을 가져야 할 것 같은 때, 이런 무용함의 때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무용지용, 무목적의 유희 그 자체로서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의 두 번째 식사는 산책 중에 발견한 ‘푸켓 테이블’이라는 태국 음식점이었다. 파주 롯데아울렛 쪽이 아닌, 지혜의 숲 근처에는 밥집 자체가 많지 않은데 그래서인지 식당끼리의 맛 경쟁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보암직하였으나, 먹음직 하진 않았달까. 맛에 신중한 그대라면 조금 더 신중한 선택을 하시길!


그대와 문발살롱에 오고 싶어요.

저녁을 다 먹고 ‘걷고 싶은 책방 거리’를 더 걸어볼까 싶었지만 ‘산책을 해야 한다.’라고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저항으로 발길을 돌려 숙소로 들어왔다. 해야 할 것이 없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것이 여행이니까!-라고 외치며.


지지향 1층은 게스트들을 위한 ‘문발살롱’을 24시간 오픈한다. 책과 사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진열된 책의 권수도 지혜의 숲 내부만큼 많지는 않아도 하룻밤 읽기엔 충분하다. 물론, 여행이라고 예외를 두어 밤을 불태우지 않는 바른 생활인 1은 9시가 되기 전에 몇 권의 책을 대여해 방으로 올라왔고, 마스다미리의 그림 에세이를 읽다 잠이 들었다.


여행지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루틴이 있나요?

메세지 성경 <이사야>

토스트, 맥반석 계란, 샐러드, 소시지를 챙겨 먹고 아침 큐티를 했다. 여행지 아침 필수 코스. 누구랑 가든 예외는 없다.


“유다의 남은 백성이 뿌리를 내려 새 출발할 거이다. 예루살렘에 남은 백성이 다시 움직일 것이다. 시온 산의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일어설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의 열심히 이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다.” (사. 37)

하룻밤의 지지향을 떠나며 아쉬워 사진 한 장을 남겨 보았다.(아, 이 한 장을 위해 얼마나 많이 휴대폰을 바닥에 떨구었는가!)


파주에 왔다면, 문발리헌책방골목에 머물러 주세요.

안개만 가득한 출판단지 길을 산책하며 문발리 헌책방 골목, 블루박스에 도착했다. 헌책을 판매하는 곳이자 카페여서 오후의 카페모카 한 잔과 독서를 즐길 생각이었다.


드디어 네이버 지도라는 최신 문물을 활용해 카페에 도착했는데 운영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외관을 보고 실망하려던 찰나! 문 뒤로 주황빛 빛이 보였다.

파주 문발리 블루박스 카페

책방 내부는 생각보다 컸고 계단식 좌석까지 갖춘 미니 극장도 있었다.

문발리헌책방골목 내부
북카페라면 이정도 책 속엔 파 묻힌 자리여야지.

공간은 입구에서부터 안쪽까지 탐험하듯 들어가야 하는데, 책과 책 사이를 걷는 내내 행복감에 가득 차 탄성을 내뱉었다. ‘여기야, 여기! 이곳이 천국이로세.’ 기쁨의 눈물까지 찔끔 났다고 하면 오버스럽다고 할려나.

새로 산 오아 블루투스 키보드야, 열일해라!

공간의 안쪽, 샛강의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카페모카를 받아 들며 주인분께 “공간이 정말 멋져요. 너무 좋네요.”라고 부러 말했다. 공간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의랄까. 이런 한마디가 좋은 공간을 지켜내는데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아, 그런데 ‘여행의 목적이라던 2021년을 돌아보고, 2022년을 준비하는 계획은 그래서 뭔지 언제 알려주는 건데?’라고 글의 말미가 돼서 정신을 차린 독자가 있다면 걱정마시길. 내용이 많아 다음 글에 모아 쓰려고 한다. 서른의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 것들과 서른 하나의 나는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에 대해 잊지 않고 나눌테니.


_여전히 파주, 문발리헌책방골, 책 냄새 가득한 오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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