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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May 17. 2020

공간은 기억을 갖는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기억

공간 독후감#2 전일빌딩 245.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SoulCheck라는 모임에서 '일' 혹은 '공간'을 주제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지금의 기쁨곡간(*창신동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 기쁨을 보관하고 흘려보낸다. 돈을 벌어 돈을 쓰는 신비로운 투잡의 개념이다.)과 곡간지기(곡간 주인장인 나)를 있게 한 그간의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의 시작은 '전일빌딩'이었다.


 "사람들이 저에게 자주 물어요. 어쩜 그렇게 실행력이 좋고 열정적이냐고. 저는 웃으며 대답하죠. 광주 사람이라 그래요. 좋은 DNA를 받았거든요."


 나에게 영감을 준 전일빌딩이 몇 년 만에 새 모습을 갖추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에 아시아 문화전당이 지어지며 주차장으로 쓰이려던 공간이 시민들에 의해 잘 지켜져 안전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쳐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현재의 흐름을 이어가는 컨텐츠 복합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희소식. 기쁜 소식에 바삐 발을 옮겨 광주로 내려갔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에 빠질 수 없으니.


/ 목격자 1.  전일빌딩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전일빌딩. 내가 좋아하던 문구 'LOVE LIFE'

 전일빌딩 전남 도청과 분수대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호남 언론의 중심지였다. 5.18 당시에는 전남일보(광주일보의 전신)의 편집국이 있었고 맞은편 YWCA 건물엔 투사회보팀과 시민군이 있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받은 전일빌딩의 흔적. 총 자국 위에 표시가 되어 있다.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철거가 논의되던 전일빌딩에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받은 흔적들이 발견되면서 광주의 역사를 지닌 이 건물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전일빌딩은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고 지켜질 수 있었다.

전일빌딩 245 1층 내부

 전일빌딩 1층은 역사 속에서 살아간 전일빌딩의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2~3층에 올라가 보니 디지털 정보 도서관이라는 시민 공간이 있었다. 5~7층은 광주콘텐츠 허브로 각종 창작 기업들이 들어가 있다. 5.18 민주화운동의 총탄 흔적과 관련 내용은 9~10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일빌딩 245 옥상정원

 옥상을 보고 내려와 10층, 9층으로 이동하라는 친절한 해설사 선생님의 말을 따라 옥상으로 먼저 올라갔다. 사직공원 전망대부터 조선대학교, 무등산 그리고 구 전남도청과 상무관, 분수대 광장이 한눈에 보인다. 광주에 또 이런 광경이 있을까 싶은 곳이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전일빌딩 245 검은 하늘 그날

 옥상에서 9층을 내려가는 계단을 지날 때 헬기의 사격 준비 소리가 들린다. 전일빌딩이라는 애통한 목격자를 맞으러 가는 실감 나는 연출이자 최소한의 공감에 대한 예의일까. 5.18 민주화 운동, 헬기와 장갑차 그리고 실탄이 동원되어 시민들을 향했던 그 날의 기억들을 전일빌딩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전일빌딩 245

 '전일빌딩 245'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전일빌딩. '245'라는 숫자는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총알의 흔적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에 관한 영상/조형물, 전두환의 말
전일빌딩 245

 지난 2020년 4월 전두환이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을 위해 광주에 왔다. 그는 여전히 헬기를 통한 사격이 없었다고 했고 그의 회고록에선 조비오 신부님의 증언을 '파렴치한 거짓말'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엔 아직도 규명되어야 할 '사실'들이 많다. 제대로 된 사실을 밝혀 내지 않고, 그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는 건강한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 여전히 찾아지지 않는 저 땅 속 아래, 바다 깊은 곳엔  우리의 미래가 침잠해 있다.

전일빌딩 245 가짜뉴스에 관한 진실

 전일빌딩 10층 전시관엔 여전히 우리의 아픈 곳을 흔드는 가짜 뉴스들에 대한 진실이 있다. 빌딩에서 사용되던 옛 문을 그대로 살려 문이 달린 박스들을 만들었고, 그 문을 열면 문 밖에 써진 가짜 뉴스들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계엄령을 철폐하라는 학생들과 시민의 목소리가 '빨갱이', '폭도', '괴뢰집단'으로 둔갑한 것은 TV, 신문, 라디오, 전화 모든 통신망의 합작품이었고 순식간이었으며 어쩌면 여전한 일들이다.

5.18 민주화 운동의 기록

 10층을 따라 9층으로 내려와 그날의 기록들을 더욱 찬찬히 살폈다. 어렸을 때부터 무심코 다니던 수많은 곳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곳들이었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아렸다. 사진 위, 누가 놓고 갔을까. 하얀 국화 세 송이가 놓여있었고, 누구도 전시물에 해가 간다는 명목으로 놓여진 마음을 치우지 않았다.


/ 목격자 2.  5.18 민주화 운동 당시의 고3, 59세의 어머니


 어머니는 광주에서 문화해설사를 하고 계신다. 5.18 민주교육지도사 자격증을 따셨고 이번 전일빌딩도 해설사로 신청해 가게 되신다고 들었다.


 종종 부모님이나 친척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어 왔다. 지금은 지식과 글 수준의 깜냥이 안되어 역사에 관한 내용은 자신을 내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내 광주, 우리 광주에 대해 짤막한 글이라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일빌딩을 다녀오고, 40주년을 맞이해서야 그 날이 오늘 이어야 함을 느꼈다.


 탁월한 해설사인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가 느꼈던 그때는 어땠어? 또 해설사로 그 당시를 설명할 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 어머니는 기다렸단 듯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엄마는 그때 고3이었어. 학교를 마치고 오는데 사람들이 끌려가고 총을 든 군인들이 돌아다녀서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와보니, 할머니가 이불로 문들을 막고 계셨지. 총알이 들어올까 봐. 그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A삼촌도 죽을까 봐 무서워서 총을 들고 집으로 왔지 뭐야.

.......

 엄마가 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아.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했는데(부상자가 많아서) 그중 박금희라는 한 고등학생이 헌혈을 하고 돌아가는 바로 그 길에 총을 맞았데. 그래서 조금 전 자신이 피를 빼주었던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당시 간호사의 증언은 그 헌혈을 하지 않았다면 출혈이 덜해 살았을 거라 하더라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동호'로 나오는 인물인 문재학 학생의 이야기도 있지. 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상무관에서 시민들의 시체 닦고 번호를 붙이는 일을 하다가 '내일 돌아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어느 소년의 이야기.
아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노래 알지? 그 노래의 주인공인 윤상원 씨의 이야기도 꼭 알아야 하지. 서울에서 은행에 다니다가 광주의 소식을 듣고 내려와 민주위원회의 대변인이 되고 시민군의 주요 인사로 활동했지. 그는 외신 기자들도 왔던 마지막 기자회견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 '우리는 질 것이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자로 기억할 것이다.' 이때 왔던 기자들이 기억하는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은 이렇데. 자신의 끝을 준비하는 이의 표정이 참으로 평화로웠다고 해. 윤상원 열사는 도청 함락 이후 27일 새벽에 돌아가셨어. 후에 주변인들이 518 민주화 운동 전에 야학 운동을 하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신 박기순 씨와 윤상원 씨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지. 그 후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운동들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졌어.

........

 5.18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며 엄마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동체'야. 계엄군과 시민군의 접전, 고립, 총성이 난무하던 그때에 광주 내부적으로는 '대동세상'을 이루었어. 금방이 털리지 않았고, 서로에게 피를 나누었고, 어머니들은 주먹밥을 날랐지. 그래서 지금도 광주의 7 미 중 하나로 주먹밥이 들어가는 거야.

........

 이 모든 일들을 꽤 오래도록 말할 수 없었어. 고통 속에 침묵해야만 했지. 그들이 재판받기 전까지 이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간첩 신고를 받을만한 일이었거든.


엄마는 해설할 때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해.

"They are not victim but victor."

우리의 역사는 헛되지 않았어. 결국 민주화를 이겨냈고 승리했으니까.


/ 옳은 것을 위한 믿음

 전일빌딩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됬다. 생각해야 했으나 잊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이 땅엔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다. 영화 속에서만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에도 일어난다. 아니, 현실을 기반으로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니 컨텐츠의 자극성이 심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굳이 희망을 노래하라는 그 상투적인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옳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선을 향해 가는 나에겐 절망과 두려움과 증오가 가득할 지라도 선을 향해 가는 우리는 결국에 승리의 노래를 부를 테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5.18을 주제로 전시 중인 아시아 문화전당 (ACC)


보다 자세한 5.18 민주화 운동의 타임라인은 아래에서.

http://www.518.org/sub.php?PID=0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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