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독후감01
회사에서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사진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고, 공간 기획자/운영자이자 마케터이자 최소한의 디자이너인 내가 카메라를 맡아 사게 되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고민하다 지인에게 추천받은 캐논 M6 mark 2를 사게 되었다. 앞으로 찍을 일이 많을 테니 주말에 조금 익혀 두기로 했다.
그리하여 찍힘 당한 나의 친애하는 동료들. 아침 10시 30분부터 1시간씩을 부지런히 움직여 모여 '질문하는 신학'이라는 벽돌을 깨고 있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땐 정면보다는 특유의 옆선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아침 책모임이 끝나고 합정으로 이동했다. 공간 독후감의 첫 타자인 <종이잡지클럽>에 도착하기 전 합정 골목 사이사이의 봄을 채집했다. 이미 매화, 개나리, 동백들이 코로나를 뚫고 그 존재를 그려내고 있으나 무엇이라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때인 우리는 지나다 볼 수 있는 작은 생명체들에도 부러 눈을 감은 듯하다.
합정역 4번 출구를 돌아 아랫길로 빠져 조금 내려오면 없을 듯한 그곳에 종이잡지클럽이 있다. 입간판이 없다면 충분히 몰랐을 법하다.
어떤 공간이든 그 공간의 가치, 정체성을 촌스럽지 않지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첫인상이라면 그 노골성을 알맞게 녹여내는 것이 '센스'가 되겠다. 스스로를 촌스럽다고 하는 종이잡지클럽은 그러므로 촌스러움을 피할 수 있었다.
벽 구석에 적당히 농익은 곰팡이마저 다분히 의도한 것 같은 입구는 이곳이 '잡지'클럽임을 입증하고 있다. 잡지 그 자체와 잡지 내지들은 멋진 포스터가 되어 인테리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얀 벽에 하얀 타공 보드에 아무렇게나 치밀히 의도된 잡지들이 걸려있다.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간다.
공간의 안쪽엔 검정 가죽 소파와 그레이 책장을 두었고 역시 잡지의 일부들이 액자를 대신하고 있다.
10평~12평 정도가 될까 말까 한 공간에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잡지들이 종류별로 알차게 놓여있다. 독립서점을 꽤나 다니며 다양한 잡지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종이 잡지는 많다.
종이잡지클럽에 들어갈 때 공간을 처음 맞이 하는 것은 이 곳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사장님이었다. 신중히 잡지를 읽는 손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종이잡지클럽이 처음이신가요?"라고 말하곤, 어떤 잡지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왔다. "공간이나 인테리어에 관한 잡지를 보고 싶어요." 혼자 몇권을 골라 읽고 있으니 품에 몇권의 잡지을 안은 주인장님이 다가와 친절히 잡지들을 소개해주었다. 그의 안목은 탁월했다.
어떤 공간을 멀리서라도 찾아가는 이들은 그곳에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 내 경우에는 그 공간의 기획과 그에 따른 인테리어 컨셉, 특히나 디테일적인 것을 눈여겨본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하게 보는 것이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파트타이머이든 주인이든, 매력적인 공간에는 그 매력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매력적인 주인장이 있다. 공간과 낯설지 않은 주인장이 주는 새로움이란.
독특하지만 계속 보고 싶은 매력을 가진 공간에 놓인 하나하나의 제품은 가치 있다.
_종이잡지클럽의 어느 잡지 중_
종이잡지클럽에서 6권 정도의 잡지를 읽고 춘곤증이 몰려와 자리를 떴다. 어디에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오묘한 마스크 사진 한 장을 찍어 놓았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가면 아주 작은 것조차 특별해 보여 지나치지 못하는 축복이 생긴다. 벽에 떼다만 테이프들을 보면 무엇이가를 목청껏 외치던 포스터들의 수고가 보이는 것 같고, 주인이 자리를 비운 리어카는 햇살을 받아도 더욱 무거워 보인다.
오늘도 빨간 어묵을 지나치지 못했다. 그리 독하게 공부했던 고3 때조차 이 빨간 어묵을 너무 먹고 싶어 조퇴를 감행했던 그때의 기억이 추억이 되서인지 모르겠다.
신발끈이 도무지 묶이지 않는 요즘이다. 한쪽을 묶으면 어느새 한쪽이 풀려있다. 공간과 적절히 어울리던 종이잡지클럽의 주인장님 처럼 신발끈 정도는 잘 걸을 수만 있으면 한동안 풀려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