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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n 01. 2022

메밀꽃 필 무렵엔 보롬왓으로

우리들의 제주 해방일지

Day 02


•여행엔 다행이 많다

호텔에서 렌터카 회사로 가려고 카카오택시를 불렀…지만 실패했다. 앞 사람들은 잘도 타고 가던데?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니 아무래도 공항으로 가는 것은 바로 다른 승객을 태울 수 있어 같은 거리여도 잘 잡히는 것 같았다. 결국 공항으로 이동해 셔틀 버스를 타고 렌터카를 찾아 갔는데, 알고 보니 우리 가려고 지도에서 찾은 곳과 다른 위치였다.(세상에나!) 이름이 같은 카서비스 센터여서 헷갈리는 분들이 이미 많았는지 안내 방송도 나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역시 여행은 수 많은 다행들이 모여 소소한 행복을 이룬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살아요, 잘 삽니다.

제주 브런치 카페 블루모모에서 첫끼

예인님을 처음 만난 건 2019년이었으나 간간히 연락하며 알고 지낸 햇수로 4년, 만난 건 3년 만이었다. 위러브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하다 추천에 뜬 나를 발견해(당시 기쁨곡간 시절) 내 피드를 들어와 보고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해본 일들을 실제 살아가고 있는 드라마 같은 삶이 존재하는구나,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나오지!?’ 신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예인님께도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힘이 되었다는 풍문을 들었다…..(과분하고 감사한 이런 칭찬은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몇 년 간의 소식을 전하며 웃고 떠들다 보니 두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버렸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건 줄 몰랐어요… 이렇게도 친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예인님이 다정한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럴 때마다 인스타그램의 궁둥이를 마음껏 팡팡 해 주고 싶어 진다. 바다 건너 제주도에 친구를 만들어 주었으니 얼마나 기특한일인가! 알지 못했던 존재와 새로운 삶의 양태를 드러내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몇 개의 게시물이, 한 줄의 피드가 그때에 꼭 알맞게 발견되어 서로를 이어 줄 수 있으니 신기한 세상이다.

복숭아맛, 감귤맛이 있던 제주 수제 카라멜

지난겨울 막 딴 귤 한 박스를 서울로 올려 보내주었던 예인님은 오늘도 수제 카라멜 한 꾸러미를 건넸다. 마음 씀씀이가 어여쁜 사람, 육지 건너 오래 보아야지.


•메밀꽃 필 무렵엔 보롬왓으로

제주 보롬왓 살색버드나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좌보리 우메밀
보라색 유채꽃도 있다니!

제주의 계절에 맞게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자연 정원 내지는 넓은 밭이라고 소개해야 할까. 6월의 보롬왓엔 메밀꽃, 살색 버드나무, 보라 유채가 흐드러졌다.

보롬왓 실내 정원 그리고 내 맴을 휘감은 부겐빌레아

평소 길을 가다가 새로운 식물을 만나면 네이버 렌즈의 눈을 빌려 꼭 이름을 알아두곤 한다. 얼마 안 되는 지구 땅덩어리를 나눠 쓰는 동지로서, 이름도 모른 채 지난 다는 것이 미안하고, 이름을 불러 주어야 나에게로 와 친구가 돼 줄 것도 같아서 부리는 수작이기도 하다. 오늘 새로 만난 친구는 ‘부겐빌레아’ 생긴 모양이 예쁜 종이 꽃을 접어 줄에 이어 붙여 놓은 것 같았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인 덩굴성 식물이라는데 멀리까지도 놀러 왔다.

흐드러진 살색 버드나무가 나란히 놓인 길 사이를 걷는 황홀함은 정말이지 꼭 그래 본 사람만 알 것이다. 꽃이 아닌 나무의 이파리가 추는 춤은 한 여름에도 눈이 내리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제주도 보롬왓 별수국 정원

수국 비밀정원을 들어가니 별수국이 푸르른 은하수를 이룬다. 은하수 사이에 놓인 나무토막 행성에 앉아 새소리를 들으니 소행성의 어린 왕자가 된 기분이다.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답게 뇌를 파업 시키고 멍을 때려 본다. 이름 참 잘 지었네.

좌 우 1초 사이 생겼다 사라진 미확인물체!!!

하얀 잔꽃이 그득한 메밀밭 사이에 놓인 파란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는데 연달아 찍은 사진 두 장 중 사진 한 장에 정체모를 비행체(?)가 찍혔다. “희수야, 너 UFO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네?” “이것 좀 봐봐…..!!!” 그렇게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남긴 채 보롬왓을 떠나왔다. 메밀꽃 필 무렵에 다녀온 별수국 행성은 경탄을 그칠 수 없을만치 아름다웠다.


•저는 삼겹살.. 을 감싼 고사리를 좋아해요

성읍칠십리식당 고사리 제주 오겹살

희수에 대해 새로 안 사실. 나물 고사리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고기 불판 위에서, 돼지고기 기름이 적당히 흘러 들어가 약간 바삭하게 익혀진 고사리는 아주 좋아한 다는 것. 10년을 알고도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지 않을까 싶다. 새롭다 새로워 이 녀석.


평소 여행 다닐 때 음식을 최우선으로 하진 않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감각아 깨어나라!’를 외치고 있기 때문에, 밥을 먹으며 새로운 맛에 오롯이 집중해 보려고 했다. 적당히 구워진 고사리와 통통한 식감의 콩나물을 살짝 바삭한 오겹살에 덮어 멸치젓에 콕- 찍어 먹었다. 요리왕 비룡에서 만두를 먹다 판다곰이 나오는 장면에 필적할만한 상상을 펼쳐보고 싶지만, 내 부족한 상상 속에선 고사리에 휘감긴 불쌍한 꿀꿀이 뿐인지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밭에서도 바다에서도 봉그다

표선해수욕장에 놓인 투명 카누. 호객용이겠지?
어디서나 봉그깅!

보름왓 흙길에서는 플라스틱 컵, 표선 해수욕장에선 종이컵 하나와 비닐 쓰레기 하나를 주워왔다. 지나가는 곳곳마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이 아름다운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쓰레기는 참을 수 없지! 아, 봉그다는 제주 방언으로 줍다는 뜻이다.


•밤바다로 도망가자

성산쪽 노을

두 번째 숙소,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성산 스테이션’을 찾아 들어오는 길. 동쪽 바다 끝에서 본 서쪽 하늘을 유난히도 붉었다. 홀린 듯이 숙소에 짐을 팽개쳐 두고 나와 제 갈길을 성실히 가는 주황빛을 쫒아갔다. 준비성이 뛰어난 희수 덕분에 사라지는 노을을 돗자리 위에서 잠시 붙잡아 볼 수 있었다. 노을은 사람을 불러 세우는 힘, 지금 우리의 수 많은 고민과 염려들이 실은 별 것 아니라고 느끼게 하는 최면 효과가 있다.

제주도 스타벅스에만 있는 치사하고 특별한 것!들!

제주도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은 먹킷, 제주 스타벅스의 특별 메뉴들이 있다. 마케팅의 성지 별다방 답게 제주도스런 각종 아이템들과 디저트, 음료들이 가득했다. 눈 돌아간다 눈 돌아가!!! 나는 당을 충전할 겸 흑임자가 듬뿍 들어간 까망라떼를 마셨다. 한가지 신기한건 제주의 모든 스타벅스는 ‘해피해빗’이라 적힌 리유저블컵을 사용한다는 것. 오호라!

광치기해변의 밤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이 밤의 끝을 부여잡고 광치기 해변에 정박했다. 제주의 밤바다는 오징어 잡이 배들이 수평선을 메우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 앞에 앉아 우리만의 작은 음감회를 했다. 스텐딩에그-little star, 짙은-역광, 그리고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까지. 도망가자고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자고 말해주는 노랫말에 기어이 울고 말았다.(희수 몰래..?) 이건 내 탓이 아니야. 제주의 바람과 온도와 습도가 모두 적당한 탓일거야 엉엉.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정아 언니는 아무 생각 말자고 했지만,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니 시 한편이 쉬이 써진다.


•시. 제목은 미정

파도를 소리로만 듣는다면, 얼마나 멀리서 다가와 어떤 마음으로 부서지는지 알 수 있을까. 부서진 채로 다시 뒷걸음쳐 기어이 기어이 밀려오는 마음을 나는 알까. 결코 알 수 있을까. 긴긴밤, 무엇을 잊지 못해 지새울까. 파도가 밀려오는 것만이 아니라, 뒤로 가기도 한 다는 것을 이제 알아 미안한 밤이라 괜히 고개를 별로 돌린다.


<오늘의 발견>

- 어린이 보호구역 처럼 속도를 줄여 지나야 하는 ‘노인보호구역’이 있다.
- 보롬왓의 뜻은 ‘바람 부는 밭’이다.
- 동쪽에서 보는 노을도 멋지다.
- 희수는 구운 고사리를 매우 좋아한다.
- 수국은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꽃잎 색 뿐만 아니라 모양이 완전 다르다!)
- 제주 방언으로 “너 뭐하멘?”은 “너 뭐해?”라는 뜻이다.
- 김영갑 갤러리는 수요일에 쉰다.
- 제주도 드라이브에 (밴드)엔분의 일의 ‘Fever’는 반칙이다.

<오늘 읽은 책>
- 메세지.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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