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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n 02. 2022

어울렁 더울렁 제주 해녀의 삶

우리들의 제주 해방일지

Day 03


바당요가

“잘 잤다! 잘 잤니?”를 외치며 힘차고 기쁘게 하루를 시작했다.(여행 텐션 아니고, 평상시에도 이렇다.)


나름의 요가 복장을 챙겨 입고 제주 바람을 가르며 섭지코지 해변으로 향했다. 여행 전 제주에 오면 가장 하고 싶은 1가지씩을 이야기했고, 오늘은 희수의 요가데이였다.

세상에나, 처음 가 본 신양 섭지코지 해수욕장

바다 앞 언덕 위에 펼쳐진 매트에 몸을 뉘이고 요가를 시작했다. 제대로 요가 수업을 들어본 것은 처음인지라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초짜 티가 물씬이다.


수업은 지금 눈앞에 있는 바다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른 생각들(오늘 뭐 먹지, 돌아가면 해야 할 것들, 생각나는 사람들 등)이 많겠지만,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들어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흐트러지면, 또 알아차리고 돌아오면 된다고. 오늘의 요가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많은 순간들에 적용해봄직한 배움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염려와 지나친 계획, 과거의 미련을 곱씹는 것, 지금 내 앞에 있지 않은 누군가의 감정과 상황을 홀로 상상하며 빠져드는 모든 것 상념들이 나를 사로잡을 때, 다시금 돌아오자. 돌아오고야 말자.

제주도 바다 앞 요가. 핫요가 아닌데 핫한 햇볕 아래 잘 익는 중

“지금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 보세요. 차가 지나가는 소리, 새소리, 바닷소리.. 오늘은 파도가 세지 않아서 바닷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지만, 집중해서 귀 기울이면 들린답니다. 아무리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서울에서 결코 입지 않을 복장, 바다 바람에 온 어깨를 드러내고 마음껏 몸의 감각을 익혔다.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생경한 냄새가 들숨과 날숨의 존재를 일깨울 때 내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늘은 높고 팔뚝은 타고!


악취

미리 준비해 간 비닐봉지를 펼쳐 본격적으로 봉그깅(바다 플로깅, 제주 방언)을 했다.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바다의 양끝을 향해 나아갔다. 도대체 왜! 왜! 왜!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걸까. 흘린 거라고 할 수 없는 쓰레기들에 눈을 흘기게 된다.

제주도의 시글라스 모음집. 탐나면 연락 달라. 포유-

바다에 오면 플로깅 말고도 꼭 하는 일이 있는데 시글라스를 줍는 것이다. 인간이 버리고 간 날카로운 유리조각조차 바다는 깎고 깎아 부드럽고 빗나는 시글라스를 보란 듯이 만들어 보내 준다.

쓰레기를 한가득 줍고 손목이 저려 희수에게 갔더니 바닥에 앉아 땅을 파고 있다. 조금만 파면 나올  알았는데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네요.” 모래사장에 박힌 비닐 심을 캐는 끈덕짐에 무릎이 절로 꿇어진다. 희수의 인내심에 박수를.

죽음을 담은 병. 터지기 5초 전

“언니 이것 좀 봐바요.” 희수가 내민 병엔 수십 마리의 게가 담겨있었다. 물론 죽은 채로. 희수는 아무래도 여기에 다시 풀어주고 가야겠다며 뚜껑을 열었고 “펑!” 소리와 함께 사방이 설명할 수 없는 악취로 가득해졌다. 이유 없이 사람 손에 잡혀 병에 넣어지고 서로를 물어뜯다 죽음을 맞이 했을 생명들의 마지막 흔적, 소리 있는 아우성이었을 테다. 악취는 이후로도 우리의 머리끈, 가방의 한 구석, 옷의 한 자락을 붙들고 따라다녔다.

제주도 섭지코지 플로깅 봉그깅

주운 쓰레기는 1L 정도가 되었는데 마땅히 버릴 곳이 보이지 않았다. 요즘엔 어딜 가도 쓰레기통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져온 쓰레기를 ‘무단 투기’ 하지 말라는 팻말이 버젓이 있는 화장실 문 앞을 지킨다. 남들이 가져와 아무 데나 버린 쓰레기를 다시 모아 온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까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성산 스테이션 숙소에 전화를 걸어 방법을 물었더니, 양이 엄청 많지 않다면 숙소 분리수거하는 곳에 와서 버려도 좋다고 하셨다. 숙소 공간도 구석구석 섬세하고 좋더라니, 주인장 분 마음씨는 더 좋은 곳이었구나. 성산 일출봉 근처로 게스트 하우스을 찾는다면 강력 추천합니다!


•어울렁 더울렁 해녀의 삶

해녀 박물관

예전 자급자족자주 북클럽에서 ‘명랑 해녀’라는 책을 읽고 제주 해녀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구좌읍에 해녀박물관에 가면 무언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경: (물질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하는 공동체 문화-불턱: 해녀들이 모여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는 . 할머니와 딸의 수련의 이자 의사소통의 

-애기바당 할망바당: 아이와 어른이 물질할 자리를 배려하는 해녀 사회의 미덕 규약


해녀 공동체의 주체성은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하나의 공동체는 생업의 공동체이자 생존의 유기체가 되어 움직인다. 단순히 “우리는 하나야!”라는 맹목적 폭력으로 순종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책임지고 보살피며 길러내기 위한 단단한 약속들을 실천해 낸다.

해녀의 삶에 관한 영상을 보며 새로운 단어와 문화를 익히고는 박물관 곳곳을 돌아보았다. 누군가에겐 볼 것 먹을 것 많은 제주에서 무슨 박물관이냐 싶겠지만, 박물관 덕후는 그 지역에서 난 이야기들을 수집할 때 두 손 모아 희열을 느낀다. 많은 이야기를 모아야 겨우 시 한 줄을 시작할 수 있다.

해녀들의 생명이자 친구, 태왁

문득 얼마 전 봤던 kbs다큐 <붉은 지구>가 떠올랐다. 기후위기로 제주의 바다도 많이 변해서 다시마 군락지가 사라졌다고. 제주 바다의 풍성을 비는 제를 올리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며, 바다가 더 이상 풍성함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그녀들이 탓이 아니란 걸 알까. 이 척박의 이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거늘, 일평생 가족들과 제주 땅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왔던 이들이 마주해야 할 척박이 한짐 가라 앉아 있다.


•소담한 풀무질 서점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 같은 마음인갈까. 시를 쓰는 것보단 삶이 시인인 엇이 중요하지. 암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서점 사장님이 쾌활하게 “어서 오세요오오~~”라고 맞이해 주신다. 그리고 발 앞의 문장 한 줄에 마음이 열려 ‘여기선 꼭 책을 사서 나가야지’ 결심했다. 어디를 여행 가든 서점 위치부터 파악하는 사람이자만 매번 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책 큐레이션이 정말 마음에 들거나, 아니면 주인장과 공간이 마음에 들어 이 서점이 오래도록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산다.(오늘은 후자)

6월이 오면, 인생이 아름다워!

월별로 주제를 잡아 시와 명화가 함께 있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시집 하나를 샀다. 6월을 위한 시집 한 권을 서점 벽에 기대어 나비를 바라보고 다 읽어 버렸다. 책은 6월에 나랑 놀아줄 그 누구에게 선물할 예정!


•구좌 당근 케이크는 카페 한라산

여러분 이것 보게요! 이게 바로 당근 꽃이라구요!

“언니 이 꽃 뭐예요?” 오늘도 스마트한 눈을 빌려 검색해보니, 당.. 당근?!!! 아 맞다 우리는 지금 당근이 유명한 구좌에 와 있었다. 수국만큼 화려하게 주목받지 못할 테지만, 나는 너의 뿌리가 당근인 것을 알고 있을게. 꼭 기억할게.

구좌읍 카페 한라산
서울까지 들고갈 뻔한 구좌읍 당근케이크. 치즈가 특히 최고.

오래된 창고를 개조한 것 같은 분위기의 카페, 구좌읍에 왔으니 당근은 당근당근 먹어야지. 미리 찾아두었던 ‘카페 한라산’에 와서 치즈가 사이사이 들어간 당근케이크와 한라봉 에이드를 마셨다. 순간 서로를 쳐다보며 “유레카!”

처음 그려본 펜 드로잉. 볼펜은 역시 모나미

옥빛을 띄는 세화 해변을 바라보며 희수는 조금 전에 산 책을 읽었고, 나는 눈앞의 장면을 펜으로 그리고는 예레미야를 묵상했다. 중간중간 멍 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하릴없어도 되는 걸까. 사실 늘 그래도 됐을 텐데.

물멍을 좋아한다. 그 중 제일은 윤슬멍이다.
옥빛 세화해변 앞 하트는 못 참지

제주는 바다마다 물 색깔도 해 질 녘의 빛깔도 조금씩 다른 것 같다. 6월의 세화 해변은 하얀 물감을 조금 탄 것 같은 옥색 물빛!


•오늘의 맛집

(점심)

맛집(만나식당) 옆집을 노려라!  먹을   서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는 가려던 곳을 빠르게 포기하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제주도를 가는 우리에게 회나 성게알 미역국 등을 추천해 주셨다면  살뜰한 마음은 감사하지만 사실 우리   비린 것을   먹는다. 빨간 조림이나 구이 정도만 소화할  있다. 오늘의 메뉴는 고등어 묵은지 조림이었고 일기를 쓰는 늦은 시간, 사진을 다시 보면서도 침을 흘릴 만큼  익은 묵은지와  속에서 야들야들 퍼지는 정말 맛있었던 곳이다.

(저녁)

양이 적어 아쉬웠지만,  0.8인분 정도를 소화하는 우리에겐 충분했던  소바  그릇과 흑돼지 등심 돈가스. 곁들인 열무김치와 유자 드레싱이 환상적인 곳이었다.  이러다    되는  아닌가 몰라?


•심야 프렌치 디스패치

웨스 앤더슨 감독. 역시 장면마다 하나의 미술 작품을 보는 듯한 놀라운 영상미와 연출! 하지만 밤늦게 보기엔 조금 졸릴 지도 모름.(결국 약 20분을 남기고 자기로 결정)


<오늘의 발견>
-당근 꽃은 잘잘한 수국 같다.  키가 크다
-(바다  때의 명칭) 조금이 시작됨을 알리는  ‘쳇조금’… 조금 귀엽네
-제주도에서 자주보는 동네 길의 분홍  이름은 ‘분홍 낮달맞이이다.
-나는 ()생각보다 코어 근육이  좋다. 요가할  후들후들..
-어깨가 속으로  좋은 (근육이  뭉치고   풀어지고)치곤 보기엔 탄탄하걸?
- 자몽향 오일 좋아하네
-아무리 작은 소리도 들으려고  기울이면 들린다.
-싱잉볼을 머리 가까이 대고 치면 뇌가 반응하며 우주를 유영하는  같은 신비한 느낌이 있다.
<오늘 읽은 책>
-메세지. 예레미야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시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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