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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n 03. 2022

파도 위에 기꺼이 올라타는 법 _ 6월의 함덕 서핑일지

우리들의 제주 해방일지

Day 04


•제주 구좌 당근 당근

미역을 휘감으며 수영할 수 있을 것 같은 동네 앞 바다, 평대리
평대리 카페 요요무문 진짜 참 생 당근주스

어제의 당근케이크에 이어 오늘은 당근 주스에 도전! 평대리 뱅디(뱅디는 제주말로 넓은 들판)에 돌문어덮밥 먹으러 왔다가 쉬신다길래 아쉬움은 0.5초, 눈 앞에 펼쳐진 또 다른 매력의 제주 바다에 신이 나 달려갔다. 평대리 바다는 유난히 평평하고 소담한 느낌이었다. 바다 멍을 때리다 당근주스를 파는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제주의 푸르름과 어울리는 주홍 빛 당근. 어쩜 색 조합까지 이리도 당당하게 조화로울까


•평대리 이모저모

평대리 버섯 맛집 톰톰카레

> 버섯의 향과 식감과 맛을 찬찬히 느낄 수 있었던 톰톰카레. 별 5개

제주 평대리 빈티지샵 선셋봉고

> 집 한 채를 꾸며 만든 빈티지샵 선셋 봉고. 별점 4개(살만한 것이 많지는 않았다)

평대우유차는 솔직히 강아지가 사기

> 딸기, 밤호박, 말차, 애플망고 맛 평대우유차. 별점 5개(일단 귀여운 강아지가 있다)

> 은쥬얼 리. 내 귀에 착 붙는 은 귀걸이를 6000원에 득템 했으니 별점 5개


•인생을 바꾼 서점이 있나요?

함덕 헌책방 구들책방

이렇게도 거창한 제목을 붙인 곳은 다름 아닌 함덕의 ‘구들책방’이다. 몇 평이나 될까 싶은 작은 책방이 내 삶을 바꾸었다고 하는 것은, 이곳에서 샀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 때문이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만이 아니라 일상의 성실로 지속된다는 것, 사랑과 노동은 불가분의 것임을 인정했다. 불편하나 부지런하고, 자유로우나 정돈 되었다. 오늘은 프롬 책의 옛 버전 트리오의 완성작! 자유에서의 도피를 샀다. 옛 버전이 주는 멋 못 잃으니까.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

나 알고보니 서핑 신동일지도

희수의 요가가 있었다면, 나의 제주여행 원픽은 서핑이었다. 처음 서핑에 매료된 것이 서우봉에 올라가 함덕 바다를 누비는 서퍼를 보며 시를 쓴 것이었는데 함덕 바다로 기어이 돌아왔구나.


치료 중인 손모가지는 괜찮을까 걱정이 많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함덕의 파도는 그리 매섭지 않았다. 초보자 전형(?)이라 당연한 위치긴 하지만 내 첫 서핑이 속초 바다에서, 구름이 잔뜩 긴 어느 날, 파도 주의보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신고까지 하고 들어간 때였기 때문인지라 함덕 바다의 지루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서핑의 매력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바닷속에서 보는 파도 때문일 것이다. 밀려오는 파도는 내 앞에 들이닥칠 때부터가 아니라, 그 밀려옴을 바라보며 온 몸으로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 존재한다. 안전교육을 받고 쉬는 시간을 제외해도 2시간 조금 넘게 바다에서 보드에 올랐다. 타고 타고 또 타고. 오늘은 거의 매번 보드 위에 잘 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순서를 기다리는 중엔 뒤에서 오는 파도에 보드와 몸을 맡기며 함께 넘실거리는 여유도 부렸다.


파도가 칠 때 보드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결은, 알 맞은 자세를 정직하게 배우는 것, 초보자이면서 요행을 바라지 않는 것, 두 발을 모두 디뎌 균형을 이룰 것, 일어나라는 강사님의 “업!” 신호에 두려워하지 말고 단번에 일어날 것, 발과 발 사이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할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정한 발과 흔들리는 파도가 아니라 지금 눈앞을 바라볼 것.


나는 두 번째 서핑이었고, 또 워낙 험한 곳에서 타봤던 지라 비교적 오늘의 서핑도 잘 해냈다. 강사님이 잘 타니까 좀 재밌는 파도를 타보자며 간혹 내게 맞는 파도를 찾아 주셨다. 여기서 재밌는 파도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꼭 맞는 파도가 센 파도, 더 큰 파도, 어려운 파도가 아니라 재밌는 파도라니. 썩 마음에 드는군.


•무엇으로부터 해방되려 제주에 왔을까

제주도 북스테이 서점숙소

여기서부터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진절머리를 칠 수 있는 곳이니 눈을 감거나, 브런치 밖으로 도망가시길. 이번 제주 여행에 서핑만큼이나 기대했던 코스 중 하나는 책이 가득한 숙소, 이름부터가 ‘서점 숙소’인 곳에서 북스테이를 하며 북클럽에 참여하는 것이었다.(북클럽을 2개나 하면서 또 북클럽이라니 이 지독한 책 중독자야!)

나도 회사 서가에 색별로 책 정리했는데…어쩜

사람을 좋아하니 여행 때도 시끌벅적한 파티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즐길 것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일단 밤에 파티가 있을 법한 규모라고 생각만 돼도 발 머리도 들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 저녁 모임이 책 모임이라면 지나칠 수 없지! 서점 숙소의 모임은 각자 가져온(혹은 숙소에 있는) 책을 잠깐 읽으며 필사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숙소의 주인장님이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흐름을 이끌어 냈다.


질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자 제주에 오셨나요?”였다. 누군가는 바쁜 일에서, 누군가는 어지러운 감정에서, 그리고 나는 그토록 사랑하는 ‘사유’에서 해방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지금 내가 선택한 삶을 열렬히 기뻐하지만  뇌 사용 과부하로 소중한 것들을 잘 기억해 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아쉽다고. 이렇게 뇌를 쉬어 비워 주고 멈추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그래서 이번 여행은 어떤 때보다 사유하지 않은 시간들이 많았다. 많은 생각과 질문을 뒤로하고 어제 요가 시간에서 배웠듯 자꾸만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노력하지 않아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라는 것에 뜻밖에 재능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물론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을 생각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 하실 테지만)

자유에서의 도피 책 필사

사랑에 대한 질문에서는, “진짜 사랑은 서로를 진짜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자유에서의 도피 책을 이용한 내용들이다.) 여기서 진짜 자유란, 대상의 능력을 관계에서 오는 권력으로 제한해 놓고 눈에 보이는 ‘외부에 있는’ 자유들(재정, 시간, 위치, 능력, 소유 등)을 느끼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그답게 독창적 존재로 사유하고 살아갈 수 있게 ‘내부에 있는’ 속박에서까지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궁극의 자유이고 사랑이라고. 내가 나 자신을, 신이 인간을, 인간이 인간과의 서로를 사랑을 하려거든. 그래야 할 것 같다고. 그의 불복종(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든)을 나에게 위협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자의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한 기술로서의 불복종(서로의 존재적 인정)을 허용하고 즐거워하는 사랑을 하고 싶다. 해야지 싶다. 언제나! 언제고!


자유에서의 도피라는 책에서 에리히 프롬은 묻는다. 복종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나는 참된 자유로부터(내부의 자유를 얻는 것으로부터) 도피한 인간이 만든 가짜신, 우상이 주는 위안, 소속감, 불안의 해소-라고 답해 보았다. 아, 얼른 서울 가서 북클럽 사람들에게 투척하고 싶군. 보고 있나 그대들?


자유의 문제는 다만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다. _에리히 프롬 <자유에서의 도피>


+ 다른 분들의 대화 메모

- (배우자, 반려자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같은 일을 하는, 길 위에서 만나라. 내가 행복해하는 순간을 그 사람도 행복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쉬우나 연인을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이에게) 자연을 대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랑하라.

- 모든 사랑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

- 사랑을 하기 어려운 것은, 사랑을 할 때 나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되도록 완벽한 사람에게 맡기려 해서 어려워지는 것이다.

- 연애와 사랑도 경험이다. 부단히 애쓰고 노력해서 배워보라. 시행착오 끝에 무엇이 나에게 더 좋고 싫은지 알게 될 것이다.

- 지나는 모든 연을 ‘계절인연’이라고 한다. 봄은 다시 온다.

- 안 좋은 감정에 맞서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책 모임의 마지막은 이소라의 track 3로 끝이 났다. 탁월한 선곡이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오늘의 발견>
-평대리 바다 쪽에 숙소를 잡고 함덕, 세화, 성산 쪽을 누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잔잔한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기도 좋고 주변에 재미난 곳이 많음!
-버섯은 버섯 마다의 향이 있다.
-계속 궁금해 하던 알로에 같은 큰 식물 이름은 용설란이었다.
-희수는 당근 쥬스를 좋아하지 않는다ㅠㅠ
-나 혹시 서핑 천재일지도?
<오늘 읽은 책>
•저녁(그림책)
•자유에서의 도피(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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