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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한 기쁨주의자 Jun 04. 2022

제주 검은 바다 앞 LP바의 노래

우리들의 제주 해방일지

Day 05


•받고 싶은 호의를 베풀라

게스트하우스 방을 같이 쓴 분이 이동해야 할 방향이 같다는 걸 알게 됐다. 희수에게 어차피 지나는 길, 혹시 태워다 드리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었고 희수도 좋다고 했다. “혹시 저희가 그쪽 지나가는데 태워다 드릴까요? 저도 뚜벅이로 다녀봤는데 버스로 멀리 가기 쉽지 않더라고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준비 중이라) 나갈 수가 없어서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호의를 받기도 하고 또 베풀게 되기도 한다. 내가 받고 싶은 호의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누군가에게 전하면 어떨까. 봇짐이 무거운 뚜벅이 여행자가 갖는 환상, 문득 나타난 히치하이킹의 은인 같은.


•한라수목원을 산책하자

한라수목원은 연꽃이 피기 시작했다
한라수목원 대나무숲. 대나무도 탈피를 하더군.

한림수목원 아니고, 한라수목원이라고 들어보셨나. 이 정도면 수목원 아니고 그냥 숲 속에 길을 내놓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곳이었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리해서 나무를 베어내지 않은 진짜 수목원, 제주의 숲이었다.

좌 송엽국, 우 물레나물. 제주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뭔가 꼬불꼬불 들에 핀 바다 미역 같았던  밤일엽

반년을 살아갈 피톤치드가 걷는 내내 살갗에 새겨졌다.(저장 완료!) 오늘도 나무와 꽃의 이름을 새로 알아가는 일이 설레는 한 발 한 발이라 늘 몇 걸음 못 가 주저앉는다. 길을 가다 곤해지면 벤치에 누워 쉬거나 잠들었다. 누구는 그 비행기 값 내고 휴가 쓰고 와서 연꽃잎 앞에서 낮잠이냐 잤느냐고 하겠지만 아마도 이 부요함을 더 부러워하는 것이렸다!


•검은 제주 바다에 가 본 적 있나요?

제주 몽돌해변 알작지. 내도의 파도
좌 이니스프리 생각 나는 화산송이. 우 아리랑 부르며 어깨춤 추는 나

제주에도 조약돌 몽돌 해수욕장이 있었다. 검은 모래 앞에 앉아 한참 동안 노래를 불렀다. 나는 흥이 핫껏 오를 때 민요를 부르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 호랑수월가를 완창(?) 하고 뱃노래, 군밤타령, 아리랑, 풍년 노래, 사랑가 등을 메들리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들어준 희수천사 고마워!

아차차 제주는 화산섬이지

새삼 해변가를 내려다보다 여기가 화산섬이구나 싶었다. 용암은 흐르고 흘러 바다를 만나 까맣게 얼어붙었다. 지구 저 아래 있다 만난 바다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바다를 사랑하기 위해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남기로 택했다. 그리고 매일 같은 파도를 견뎌내고 부서진다.


•이호테우 해변에서 노는 게 제일 좋아. 나도

나도 노는게 제일 좋은데…

해변에서 신나게 놀다가 노는  제일 좋아!”라고 말하며 뛰어가는 아이를 봤다. 새하얀 진심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흔한 직장인들이 뽀로로 모드로 전환하며 하는 말과는 차원이 다르달까.

바닷가에서 금방 쓰러질 모래성을 쌓는 것은 어린이들의 특권이다. 어른이 돼서는 좀처럼 하지 않을 일이니까. 없어질 것 혹은 위태로워 보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시간을 쓰며 즐거워하는 것은 나이가 들 수록 어려워진다.


 다른 아이가 이야기한다. “00 이리 와바 같이 놀자! 우리 여기   파보자.” 오호라 여행을 마친  다음 대사는 이거다. 친구에게 같이 놀자고 불러내야겠다.(혹은 이 대사로 불러내 주시길) 여기 모래   파보자고, 모래성을 함께 쌓지 않겠냐고. 우린 노는  제일 좋으니까!


•내도음악상가 오픈런

5 오픈이라서 4 50분에 갔는데도  앞에 줄이 있었던 내도의 LP. 어쩌다 보니 바다가  보이고 스피커가 심장을 후두려패는 좋은 자리에 앉을  있었다. 신나 신나 노는게 제일 좋아!

음악을 듣는 일은 신비한 힘이 있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베이스가 심장과 동일해진다. 가만히 눈과 귀를 여는 일이다. 연필로 종이에 적어 신청했던 노래, ‘Hey Laura’_Gregory porter  나오는 순간 황홀함에  몸이 전율했다. 살면서 ’ 순간은 잊지 못할 거야라고 되뇌일 , 그래서 사랑하는 이가 생각나는 때가 있는  오늘의 이호테우  바다가  그랬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혼자 여행 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무엇을 찾으러, 혹은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을까. 어쩌면 무엇을 잃은지도 몰라 일단 찾으러 나서보는 것일지도. 우리 안의 돈키호테는 언제나 가야 할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니까!


•멍

여행 내내 새로 발견한  모습은 ~~ 멍을  때린 다는 . 오늘도 숲에서, 바다에서, LP바에서  시간씩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요가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어렵지도 않았다. 멍은 때릴수록 쉬워졌다.  혹시 타고난  아닐까. 멍천재! 멍수저! 생각 없는 시간이 제일 쉬웠어요! 계몽인의 반란!

이러다 턴테이블 사겠네 사겠어. 문세 형님 노래 듣는 중

멍을 때리는 시간은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다. 나는 느리게 흐를 만큼의 시간을 가진 부자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같은 양의 시간  다른 밀도를 살아낸다.


•생의 불꽃

문득 지금  앞의 생이 불꽃같다고 느낀다. 종종 생의 불꽃이 사그라진 때를 지나는 이들, 혹은 그렇다고 말해오는 사람들을(내부적인 것인지 외부적 상황 때문인지 이유는   없다.)만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번의 생이라면, 타올라야 하지 않을까. 크기나 모양은 다르더라도 심지로만 남아 있는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 저마다 지닌 독창적인 불꽃색이 궁금할 . 모두 불꽃같은 생의 춤을 추자!

제주도 해변  LP바 내도음악상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내도음악상가에  것은 제주의 붉은 노을을 만끽하기 위함도 있었는데 구름이 잔뜩  탓에 해를 보지 못했다. 사실 그곳에 도착한 5시쯤부터 이미 노을을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오지 않을(혹은 있는지도 모르겠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림의 시간을 각자 그리고 함께 보냈던 이다.  오롯하고 하염없는 시간을.


<오늘은 나에 대한 발견>
-생각보다 멍을 잘 때린다.
-어디서나 잘 잔다.
-자꾸만 당이 필요하다.
-(운전, 변화된 상황 등) 정말 화를 안 낸다, 안 난다, 타고난 낙천성인가
-굉장히 차분하다.(서핑 선생님이 “평소에도 엄청 차분한 성격이시죠?”라고 함)
-지독한 책 덕후다.
-서핑 신동일지도
-은근히 대화 없는 묵음의 시간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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